삶의 중심이 되었던 신의 사라짐. 예속 끝, 자유 시작일 줄 알았던 그 사건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 속으로 내몰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쯤 있는 건지 확인해주는 지표는 어디에도 없다. 나침반 하나 없이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떠 있는 상태랄까.
이 막막함을 뚫기 위해 우리가 붙잡은 것이 ‘욕망’이다. 그런데 욕망, 이게 만만치가 않다. 좀 곤란한 상대다. 그 이유는 욕망이라는 놈에는 본래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힘에의 의지를 떠올려 보자. 그 근본적 욕망은 약자의 방식이든, 강자의 방식이든 개의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자기를 실현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반면 삶의 의미는 어떤 방향으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강자의 길인가, 약자의 길인가, 이 중 어떤 길인가에 따라 삶은 고귀해지기도 하고, 비천해지기도 한다. 요컨대, 삶에 의미를 주는 가치의 요체는 ‘어떻게’다.
그런데 욕망 그 자체는 방향이 없다. ‘어떻게’를 모른다. 만족을 준다면 이것이든 저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욕망은 이곳저곳을 떠돈다. 이것이 괜찮은가 싶어 이것을 해볼라치면 저것이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저것을 해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욕망은 자연스레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자극적인 만족을 주는 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것이 내 존재를 망가뜨리고, 삶에 해로운지는 중요치 않다. 의미 있는 삶?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이제 욕망에게 남은 가치 기준은 하나다. 지금 당장, 그것도 가장 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