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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클래식]신은 죽었다. 고로 허무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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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4-12 19:59 조회1,8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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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고로 허무하다. (2)



2부 약자가 살아가는 법 - 1)

근영(남산강학원)

허무의 세계, 어디로 가야 하지?

잠시 ‘신’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 보자. 신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한다. 삶에 있어서 무엇이 가치로운지,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고 덜 가치가 있는지 모두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가치들의 정해진 서열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삶? 그건 죽음이다.

그런 신이 죽었다.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했던 가치체계의 몰락. 더 이상 미리 결정되어 주어지는 위계화된 가치들은 없다. 이제 각자 제 마음에 드는 삶을 살면 된다. 해방이다! 자유……다?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 족쇄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한 가지를 놓쳤다. 신과 함께, 예속과 함께 사라진 그것. 바로 삶의 나침반! 적어도 신은 분명하게 말해줬다.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과 무가치한 것들을. 우리는 그저 신이 가리키는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의미 있는 삶이 펼쳐질 것이었다.

그런데 신이 죽어버렸다. 가치의 위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들의 가치가 다 엇비슷해져 버린 것이다. 구별되지 않는 가치들. 우리는 이제 어떤 것들이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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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가판대 앞에 서 있다. 거기에는 동일한 상품들이 각기 다른 상표를 달고 일렬로 늘어서 있다. 가격? 비슷하다. 정보? 없다. 사기 전에는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도 없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을 고르겠는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랬다. 신에게서 풀려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자유의 광활한 길이 열릴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단 너무 광활하다. 광활해도 너무 광활해서 황망할 지경이다. 너무도 길이 많아서 마치 길이 없는 것처럼 돼버린. 삶의 중심은 사라져 버렸고, 그와 함께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어쩔까나, 이 막막함!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3부, 125번 광인, 안성찬, 홍사현 역, 책세상, 199쪽)

삶의 중심이 되었던 신의 사라짐. 예속 끝, 자유 시작일 줄 알았던 그 사건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 속으로 내몰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쯤 있는 건지 확인해주는 지표는 어디에도 없다. 나침반 하나 없이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떠 있는 상태랄까.

이 막막함을 뚫기 위해 우리가 붙잡은 것이 ‘욕망’이다. 그런데 욕망, 이게 만만치가 않다. 좀 곤란한 상대다. 그 이유는 욕망이라는 놈에는 본래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힘에의 의지를 떠올려 보자. 그 근본적 욕망은 약자의 방식이든, 강자의 방식이든 개의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자기를 실현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반면 삶의 의미는 어떤 방향으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강자의 길인가, 약자의 길인가, 이 중 어떤 길인가에 따라 삶은 고귀해지기도 하고, 비천해지기도 한다. 요컨대, 삶에 의미를 주는 가치의 요체는 ‘어떻게’다.

그런데 욕망 그 자체는 방향이 없다. ‘어떻게’를 모른다. 만족을 준다면 이것이든 저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욕망은 이곳저곳을 떠돈다. 이것이 괜찮은가 싶어 이것을 해볼라치면 저것이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저것을 해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욕망은 자연스레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자극적인 만족을 주는 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것이 내 존재를 망가뜨리고, 삶에 해로운지는 중요치 않다. 의미 있는 삶?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이제 욕망에게 남은 가치 기준은 하나다. 지금 당장, 그것도 가장 세게!!

이쯤 되니 조금 알 것도 같다. 욕망은 왜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지. 행여 욕망을 만족시켜도 왜 그 뒤에는 헛헛함이 남는지. 그 이유는 욕망 그 자체로는 삶의 의미를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여 그 욕망이 이끄는 것은 정처 없는 삶, 의미 없이 떠도는 삶이다. 허무한 삶!

신의 죽음, 그것은 자유의 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자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무너진 가치들 사이에서 막막함을 느끼며 서성거릴 뿐이다. 무턱대고 어디로든 가보지만 결과는 매한가지. 허깨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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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고로 허무하다.

신의 죽음 그 후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대에 있다. 폭력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권력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또한 풍요롭다. 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삶은……허무할 뿐이다.

삶의 막막함과 허무함으로 인해 우리는 길을 잃었다. 이 속에서 자유의 조건은 우리를 전에 없던 예속의 상태로 내몰고 있다. 우리의 자유는 마치 스스로 노예가 될 자유, 자발적으로 예속의 길을 갈 자유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약자가 될 자유!

이 허무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약자의 길로 쉽게 빠져드는지를 살펴보자. 어떤 두려움 속에서, 어떤 게으름 속에서, 그리고 어떤 기만과 탐욕 속에 우리는 약자가 되어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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