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의보감』엔 평범하지 않은 약재들도 많이 나온다. ‘벼락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뽕나무에 자란 사마귀알집’,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 ‘임질 있는 사람의 오줌에서 나온 돌’ 등. 신화 속 주인공이 부모를 위해 몇 년씩 헤매어야 겨우 구할 듯한 약재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하나의 약재로만 이루어진 단방(單方)들이 많고 대개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단풍나무 버섯을 먹으면 계속 웃다가 죽게 만드는데 이럴 때는 지장(地漿水)을 마시는 것이 제일 좋고 사람의 똥물은 그다음이다. 다른 약으로는 구할 수 없다.’(1601쪽) 버섯의 독이 사람을 웃게 만든다 하니 우습다가도 웃다가 죽는다 하니 심각해진다. 증상은 이처럼 심각한데 약은 구하기 쉬운 것이다. 지장수와 똥물. 지장수란 비온 뒤의 흙구덩이에 고인 물이다. 한의학에서 웃음은 심장이 주관하는 양기(陽氣)의 활동이다. 계속 웃는 것은 양기가 치성한 상태다. 비 온 뒤의 흙탕물은 음기(陰氣)가 녹아 있는 물. 양기에 음기를 섞어주면 치료가 된다. 똥물도 얼마나 구하기 쉬운가.
어떤 경우엔 심지어 사람의 비듬이 약이 되기도 한다. ‘저절로 죽은 새나 짐승의 간을 먹고 중독된 때는 사람의 비듬 1돈을 뜨거운 물에 풀어 복용한다.’(1604쪽) 이쯤 되면 ‘천지 만물이 다 약이다’라고 할 만하다. 그 약재들은 우리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약으로 쓰는 순간 약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병으로 고통받다가도 자연의 축복인 양 감사하게 된다. 병 주고 약 주는 자연, 병과 약의 궁합. 이 좋은 봄날 꽃 나들이 갔다가 봄나물 캐러 갔다가 불시에 자연으로부터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사공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독을 쏘아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을 방문해보시기를. 병에 대한 설명 바로 밑에는 병보다 많은 처방들과 약재들이 촘촘히 등장한다. 거대한 ‘원더랜드’의 세계이다. 별별 독에 별별 해독제가 궁합을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몸에서 그들의 인연이 펼쳐지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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