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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에이해브, 광기의 이단아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5-14 21:23
조회 : 234  





에이해브, 광기의 이단아 (1)



오찬영 (감이당 장자스쿨)

에이햅스 커피 AHAB'S COFFEE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대명사, 스타벅스Starbucks는 『모비딕』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창업주들은 에이해브 선장의 날뛰는 광기에 맞서는 차갑고 침착한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게 마음을 뺏긴 게 틀림없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삶의 폭풍을 견뎌야 할 당신에게 한 잔의 고요한 위안과 평화를 안겨줄 “스타벅 커피”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그의 이름이 고려 선상에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에이햅스 커피”, 내게는 이쪽이 훨씬 더 끌린다. 이왕 어렵고 복잡다단한 게 인생이라면, 그에 맞서 더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이 커피 브랜드의 네이밍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풍에 맞서는 또 하나의 폭풍 되기!

대부분의 독자들 사이에서 에이해브라는 캐릭터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언급될 만한 유쾌한 캐릭터가 절대 아님을 커피 브랜드 이름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책이 다시 재조명되었던 1920년대 이후부터 그는 배격의 대상,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악인에 빗대어져 왔다. 여기서 슬쩍 고백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장자스쿨을 막 시작했던 작년 이맘때쯤, 에이해브의 사악함을 재조명하는 새로운 글을 쓰겠노라는 야심에 차 있었던 나를 말이다. 어찌나 에이해브에게 꽂혀 있었던지, 1학기와 2학기 에세이 모두 ‘사악함’이라는 그의 키워드를 필두로 한 글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곰샘이 “누가 찬영이 도덕 교육 좀 다시 시켜라.”고 말씀하시며 혀를 차셨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뒤늦게 중2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그토록 에이해브와 그의 사악한 광기에 꽂혔던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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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에 맞서는 또 하나의 폭풍 되기!

No의 철학

철학에 대한 화두가 떠오르자 내게는 전과 다른 질문이 찾아 들었다. 태중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와 달리 절대자를 상정하지 않고 살아온 다른 이들의 삶과 세계관이 정말 처음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한의사 사촌 오빠는 명절 때마다 드리는 예배와 찬송에 늘 코웃음을 쳤다. 어렸을 때는 오빠가 저러다 지옥 갈까 봐 현기증을 느꼈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오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러니까, 주말마다 교회에 가지 않고, 기도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절대자의 시선을 단 한 번도 담지 해 본 적이 없는 삶 말이다. 오빠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일까? 살면서 찾아오는 온갖 사건들의 원인을 뭐라고 생각할까?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불행과 고통, 죽음과 상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기도하는 손을 잘라버린 이후의 내게 찾아온 질문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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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불행과 고통, 죽음과 상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따라서 앞으로 열릴 철학의 길은 그동안의 삶의 방식에 어떻게 “아니오!”를 외치고 반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늘 품어왔던 전제를 싹 밀어버리고, 그에 관련된 모든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고 반대하기. 추측건대, 철학이란 이렇게 반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사촌 오빠가 보여줬던 그 대담한 코웃음처럼 말이다. 『모비딕』을 읽으며 에이해브에게 유독 끌렸던 이유다. 흰고래에게 우주와 삶의 모든 비의를 투영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선장. 잠을 잘 때조차 해도(海圖)를 노려보는 장면은 철인의 힘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짐작하게 한다. 거대한 고래를 향해 진격하는 거침없는 용기와 생명을 건 담력이야말로 혈기왕성한 청춘이 본받아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신앙과 믿음 체계를 철학이라는 자기 탐구적 방향성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에이해브가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에이해브의 사악함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까? 『모비딕』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지점에 에이해브와 그의 흰고래가 있다는 걸. 이 사악함이 그저 통속적인 악으로만 머물게 된다면, 이 책이 고전일 수 있는 이유와 철학적 무게감은 사라져버린다. 도전하는 반역자, 에이해브에 대한 탐구가 여기서 시작된다.

리바이어던에 도전하는 자

“여기,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백발노인, 증오심에 가득 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노인이 있었고…”

(허먼 멜빌, 『모비딕』, 작가정신, 245쪽)

그(리바이어던)가 어찌 너와 계약을 맺겠느냐? (…) 보라, 그를 잡으려는 소망은 헛되도다!

(욥기 41장 4절, 9절)

『모비딕』의 주요 모티브인 구약 성서의 욥기에서는 욥 앞에 강림한 신이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고래(리바이어던)를 내세운다. 압도적인 크기와 경이로운 힘, 자연의 불가지(不可知)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절대자의 현신. 이 정도의 스케일을 넉넉히 담아낼 수 있는 동물은 지구를 통틀어 고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에이해브는 절대자를 상징하는 고래에게 감히 도전하는 자다. 어떻게 인간이 절대자의 힘과 대치할 수 있을까? 이 말도 안 되는 ‘무한도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것이 바로 광기다. 그는 광기의 선장이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진화 불가능한 폭발적 화염과 내리치는 번갯불로 계속 묘사된다. 에이해브는 외친다. 절대자가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놓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둘러싼 모든 질문들, 운명을 좌우하는 키를 누가 쥐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내가 풀고야 말겠다고. 어떻게? 뱃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저 거대한 모비딕을 잡아 죽이고 정복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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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올바르게 숭배하는 방법은 도전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허먼 멜빌, 『모비딕』, 602쪽)

성경의 욥은 운명에 대한 질문을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고이 덮는다. 반면에 에이해브는 극한의 도전으로 모든 미스테리를 파헤치려는 자다. 그의 항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심상치가 않다. 벌건 피와 술로 세례를 베풀며 흰고래를 향한 적의와 복수를 선동하는 장면은 기독교 이단, 배사교(拜巳敎)의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결코 예전 같지 않은 광기로 몰아넣었을까?

“다시 말할 테니 잘 듣게. 자네는 좀 더 낮은 층을 볼 필요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야. (…) 그 엉터리 같은 가면 뒤에서 뭔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합리적인 무엇이 얼굴을 내미는 법이야. 공격하려면 우선 그 가면을 뚫어야 해!”

(허먼 멜빌, 『모비딕』, 217)

태초부터 생명을 움직이는 내재적 힘이 있어왔다. 존재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사랑하도록 매 순간 추동하는 힘, 이것이 에로스다. 에이해브가 말하는 ‘좀 더 낮은 층’이란 자본, 관습, 도덕, 가치체계 같은 가면 뒤에서 나타나는 존재의 본질적 생명력인 에로스다. 그는 존재 자체가 위험한 에로스로 작동하는 모비딕의 잔인무도한 힘을 온몸으로 인지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 정제되지 않은 힘은 에이해브를 통과하며 제멋대로 그를 휘두르고 괴롭힌다.(허먼 멜빌, 『모비딕』, 217) 마침내 발칙한 흰고래는 에이해브의 숨겨진 에로스를 자극하고, 그의 세계를 완전히 헤집어놓는다. 그로 하여금 운명 탐구라는 가장 본질적 질문을 갈구하게 만든 것이다. ‘고래=돈’이라고 생각해왔던 그동안의 공식이 완전히 깨지고, 운명과 삶에 대한 수수께끼를 고래에게 대입하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항해가 처음으로 시작된다. 이 독특한 흰고래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눈 뜨게 한 ‘흰 벽’으로 에이해브의 코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가면을 뚫고 싶다! 그게 설령 절대자에 대항하는 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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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해브의 이런 느닷없는 깨달음과 화두에 장악된 신체는 사실 철학을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된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불현듯 눈을 뜬 네오처럼, 갑작스런 흰 벽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눈치챘을 때, 그것을 뚫지 않으면 길이 없음을 자각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비딕과 마주쳤었던 다른 선장들은 그대로 배를 돌리고 항해를 중단한다. 오직 에이해브만이 스스로의 항로를 따라 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철학은 이렇게 자신만의 에로스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전에 없던 길을 개척한다. 그의 광기는 순정한 에로스, 즉 삶과 운명에 대한 존재적 화두를 품은 에로스적 광기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정점을 찍은 뒤 바로 하강하는 선분이다. 물마루의 정점에 선 자는 반드시 추락한다. 초인간적 도전을 시도한 에이해브의 결말은 배를 포함하여 모든 동료와 함께 바닷속으로 절멸하는 것이었다. 이 흐름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왜 펄펄 들끓는 에로스는 타나토스의 검은 재로 무심하게 산화하고 마는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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