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하는 게 ‘결핍’인데, 결핍은 언어를 통해서 결핍이라고 하는 정의가 있고, 그 다음에 그 결핍감을 느끼는 감각 지각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누가 만들어주느냐 하면 좌뇌가 만들어줍니다. 근데 이 부분이 사라지자 방금 같은 영역들이 사라지는 겁니다. 크게 이야기해서 뇌는 좌쪽과 우쪽, 그리고 뇌간 깊숙한 곳에 작용처가 있는데 좌뇌는 주로 분별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결핍됐냐 결핍되지 않았느냐, 이것도 지극히 비교 등등이나 학습 그 다음에 광고 등등을 통해서, 학습된 것을 통해서 판단합니다.
우뇌로 가면 방금처럼 시공간의 분별 영역이 사라지면서 무분별이 사라지는데 주로 많이 느끼는 것이 우주와 합일된 전일적 자기 존재성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딱딱하게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갖는 자기가 아니고, 우주를 유동하는 그런 자기로 느낀다고 합니다. 이 책에 그렇게 써놨습니다. 그 다음에 이 두 부분의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도록 뇌간에, 여기 뇌간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 뇌간에 각성 스위치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뇌간의 각성 스위치가 켜져야, 그 다음에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여러 정보들을 통합해가지고 최종적으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시상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여기서 각성 스위치가 꺼지면 각성된 정보를 시상으로 전부 보냅니다. 여기는 우체국과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편지를 부치면 전부 다 중앙우체국에 모이듯이 우리 몸과 외부에서 오는 감각자료들을 뇌간에서 각성을 해가지고 스위치를 켜줘서 시상이라고 하는 우체국에 다 보냅니다. 그러면 우체국에서 이것을 주소에 따라 분리를 해요. 분리할 수 있는 신피질 영역이 한 180군데가 됩니다. 즉 180군데마다 다른 주소를 가지면서 다른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이리 보내면 주로 언어를 통해서 분별하는 영역이고, 방금처럼 이리 보내면 이 분별영역의 스위치가 꺼지면서 무분별의 합일된 자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때 어떤 걸 느끼게 됩니까? 여기서는 자기를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그 자체가 경계 없는 오류가 된 것처럼 되기 때문에, 그리고 방금처럼 시간의 양분된 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있는 자기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여기서 느끼는 감각의 가장 큰 느낌은 ‘기쁨’입니다. 그 다음에 신체적으로 심장이 뛰듯이 쿵쾅대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참선 수행을 할 때 욕망의 세계에서 욕망을 내려놓은 세계로 들어가는 첫 단계로 느끼는 상태를 갑관극친이라고 부릅니다. 갑은 여기서 보면 거의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보기입니다. 전체적인 조망. 그 다음에 관은 그 가운데서 일어난 세밀한 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것 가운데서, 즉 몸의 전체적인 것을 좌우하고 있으면서 그 가운데 일어난 미세한 것들을 통찰하고 있으면 갑자기 이 부분이 사라지면서 이런 부분으로 들어간 느낌처럼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이 때 느끼는 기쁨을 인생살이에서 어떤 경우에도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라고 해서 극친라고 합니다. 지극한 최고의 기쁨을 맛보는 단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