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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선물강좌]결핍이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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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5-22 18:55 조회1,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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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란 무엇인가 (1)


정화스님 2월 선물강좌 중

좌뇌와 우뇌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세계

아마 이 책을 혹시 보신 분들이 계신가 모르겠습니다. 제목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입니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어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좌뇌에 뇌졸중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피가 터져가지고. 그래서 한 팔년쯤 지나서 지금은 생활하는 데 거의 불편이 없는데 그 때 겪었던 이야기를 써놓은 이야기입니다. 거기에서 두 군데만 제가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뇌졸중은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뇌졸중이 자기 존재를 알게 하고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알게 해준, 선택하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뇌졸중을 갖기 전에는 내가, 자신이 뇌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판단하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다 이미 거의 뇌의 결정된 기능에 의해서 그렇게 결정되어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줄로만 생각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뇌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가지고 그 프로그램대로 반응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살았었어요. ‘그러나 뇌졸중을 겪고 난 이후 나는 새로운 눈을 떴다. 내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뇌의 기능을 자기 의지로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따라서 자기 삶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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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기 혹시 왼손잡이가 계십니까?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들은 한 95퍼센트 정도가 좌뇌에 언어 중추가 있습니다. 반면에 왼손잡이들은 우뇌의 한 45프로가 언어 중추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왼손잡이 분들도 적고 왼손잡이라 하더라도 한 55퍼센트가 좌뇌에 언어 중추가 있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서 사건을 분별하는 것은 좌뇌가 훨씬 많기는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분도 좌뇌 한 쪽 부분에서 피가 터져가지고 몇 시간 지나면서 피가 점점 커져갑니다. 근데 그 피들은 신경 세포 표면에 닿으면 드디어 신경 세포가 제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점점 가면서 좌뇌의 언어를 통한 세상과 접속하는 불이 딱 꺼지자 갑자기 우뇌가 굉장히 활성화됩니다. 그러면서 유동하는 자기와 만나기 시작합니다. 유동하는 자기와 만나기 시작한다는 건 무슨 말이냐면 자아의식과 신체와 시간의 경계 의식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제가 가끔 참선하다 경험할 때 신체의 감각 지각이 사라진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저는 여기에 보면 ‘최선 감각 영역’이라고, 신체에서 오는 정보를 해석해서 이런 경계를 만드는 큰 부위가 있기 때문에 그 부위의 스위치가 전환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는 보니까 더 세밀한 부분이 있더군요.

좌뇌와 우뇌 양쪽에 다 있는데, 좌뇌에 ‘정의 연합 영역’이 있습니다. 이치를 결정해주는 것이죠. 좌뇌의 정의 연합 영역에서는 자의식과 시간과 공간의 경계, 신체를 중심으로 해서 나와 외부를 구별하는 경계의 지각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뇌에도 정의 연합 영역이 있는데 우뇌는 그렇게 발생시키는 게 아니고 이 전체를 보면서 이렇게 구분되어있는 내가 이렇게 갈 때 어디로 갈 것인가, 따라서 이 전체를 살피는 방향성과 유동성, 그것은 진짜 우뇌에서 하고 있고 좌뇌는 이 공간과 이 시간에 온전히 자기로 존재하는 의식을 낳게 하는 것이에요. 근데 그 부분의 스위치가 점점 피가 커져가지고 그 부분의 신경 세포를 적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의식이 사라집니다. 그 다음에 공간과 시간의 분별이 사라집니다. 가끔 참선하면서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하면서, 또는 공간의 구별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곤 했었는데 그런 것들을 거기에서 거기 스위치가 꺼지는 순간 누구라도 ‘그것을 느끼세요’라고 합니다. 근데 그걸 느끼는 순간 지금까지 언어 표상을 통해서 세상을 보던 지각이 사라지면서 자기 존재 가치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뇌의 스위치가 만들어내는 결핍

오늘 말하는 게 ‘결핍’인데, 결핍은 언어를 통해서 결핍이라고 하는 정의가 있고, 그 다음에 그 결핍감을 느끼는 감각 지각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누가 만들어주느냐 하면 좌뇌가 만들어줍니다. 근데 이 부분이 사라지자 방금 같은 영역들이 사라지는 겁니다. 크게 이야기해서 뇌는 좌쪽과 우쪽, 그리고 뇌간 깊숙한 곳에 작용처가 있는데 좌뇌는 주로 분별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결핍됐냐 결핍되지 않았느냐, 이것도 지극히 비교 등등이나 학습 그 다음에 광고 등등을 통해서, 학습된 것을 통해서 판단합니다.

우뇌로 가면 방금처럼 시공간의 분별 영역이 사라지면서 무분별이 사라지는데 주로 많이 느끼는 것이 우주와 합일된 전일적 자기 존재성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딱딱하게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갖는 자기가 아니고, 우주를 유동하는 그런 자기로 느낀다고 합니다. 이 책에 그렇게 써놨습니다. 그 다음에 이 두 부분의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도록 뇌간에, 여기 뇌간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 뇌간에 각성 스위치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뇌간의 각성 스위치가 켜져야, 그 다음에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여러 정보들을 통합해가지고 최종적으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시상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여기서 각성 스위치가 꺼지면 각성된 정보를 시상으로 전부 보냅니다. 여기는 우체국과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편지를 부치면 전부 다 중앙우체국에 모이듯이 우리 몸과 외부에서 오는 감각자료들을 뇌간에서 각성을 해가지고 스위치를 켜줘서 시상이라고 하는 우체국에 다 보냅니다. 그러면 우체국에서 이것을 주소에 따라 분리를 해요. 분리할 수 있는 신피질 영역이 한 180군데가 됩니다. 즉 180군데마다 다른 주소를 가지면서 다른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이리 보내면 주로 언어를 통해서 분별하는 영역이고, 방금처럼 이리 보내면 이 분별영역의 스위치가 꺼지면서 무분별의 합일된 자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때 어떤 걸 느끼게 됩니까? 여기서는 자기를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그 자체가 경계 없는 오류가 된 것처럼 되기 때문에, 그리고 방금처럼 시간의 양분된 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있는 자기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여기서 느끼는 감각의 가장 큰 느낌은 ‘기쁨’입니다. 그 다음에 신체적으로 심장이 뛰듯이 쿵쾅대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참선 수행을 할 때 욕망의 세계에서 욕망을 내려놓은 세계로 들어가는 첫 단계로 느끼는 상태를 갑관극친이라고 부릅니다. 갑은 여기서 보면 거의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보기입니다. 전체적인 조망. 그 다음에 관은 그 가운데서 일어난 세밀한 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것 가운데서, 즉 몸의 전체적인 것을 좌우하고 있으면서 그 가운데 일어난 미세한 것들을 통찰하고 있으면 갑자기 이 부분이 사라지면서 이런 부분으로 들어간 느낌처럼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이 때 느끼는 기쁨을 인생살이에서 어떤 경우에도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라고 해서 극친라고 합니다. 지극한 최고의 기쁨을 맛보는 단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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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무분별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끝에 보면 기도 생활 오래하신 수녀분들이나, 그 다음에 명상 상태에서 무분별의 의식 집중이 뛰어난 티벳 스님들을 모시고 ‘그런 상태에 들었을 때 신호를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럼 그런 상태에 딱 들어가 있는 동안 무언가 신호를 줍니다. 뇌를 관찰하면 전부 다 이 부분의 스위치가 딱 꺼지면서 이 부분의 스위치로 옮겨가 있습니다. 이 옮겨가는 순간 자기 존재 자체가 그야말로 축복받은 존재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쪽으로 가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 어렵습니까? 언어를 도구로 너무나 많은 분별의 경향성을 우리가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쪽에서 작용하고 있는 자비심과 사랑과 평화와 기쁨과 고요한 마음과 접속하고 있는 부위의 작용 채널들이 점점 약해져 있습니다.

반면에 분별의 영역의 채널은 점점 강화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별은 방금 말한 대로 자의식을 기반으로 해서 자기를 설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일어난 모든 단어들은 단어 그자체가 갖는 개념 구조로 포함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비교를 통해서 파악됩니다. ‘길다’ 옆에 ‘짧다’라고 개념 구조가 서 있지 않으면 아무도 길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짧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있는 파랑색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색깔과 구별되는 파형이 존재할 때 파랗습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파랑색인지 빨간색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일들은 사건들을 단위화해서 잘 파악하는 데는 대단히 성공적이지만, 반대로 자기 삶의 존재 양상 중에 거의 3분의 1밖에 중요하지 않는 겁니다. 지각명령에서는. 특히 우리는 빈 마음도 그리고 무분별 영역도 자주 경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사는 데 그렇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그냥 학교 등등의 교육을 통해서 사실이다 사실 아니다를 떠나서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더 많은 지적인 변별력을 갖기 위해서 좌뇌를 이용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핍이라는 감정과 결핍이라는 언어 의미 체계도 거기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근데 그 부분이 작용을 내려놓기만 하면 우뇌에서 자기 존재의 결핍성이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 상태가 된 사람 중에서 결핍을 느낀 사람은 책에 거짓말을 썼거나, 그런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하는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부분 다 어떤 이치에 있었든 그런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존재의 경이감을 느끼고 자기의 삶의 가치를 다 이해하면서 마음이 평화롭게 됩니다. 이 두 영역은 훨씬 더 근본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높여주는 영역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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