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뜻밖이다. 이래서 서술자가 작품 첫머리에서, 얼핏 보기에는 여느 상업 도시들과 흡사하지만,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원도 없어서 새들의 날개 치는 소리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도시”(같은 책, 15쪽) 오랑을 어떻게 설명하면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나 보다. 오랑은 흔히, ‘지중해’ 하면 떠올리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날씨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사막’과 ‘고원’을 연상케 하는 도시다. 높은 언덕바지에 달팽이 모양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바다와는 거의 등을 지고 있어서 바다를 보려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 게다가 헐벗은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키 큰 나무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그해 오월의 아테네에서도 크레타에서도 차를 타고 달리며 본 들판이나 야트막한 언덕엔 작달막한 올리브나무, 포도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풀과 덤불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가지를 넓게 드리운 아름드리나무를 찾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오랑처럼 이렇게 삭막하진 않았다.
사막에 내리꽂히는 불볕, 헐벗은 고원지대에 불어 닥치는 거센 바람과 흙먼지가 재처럼 벽을 뒤덮고 있는 도시. 오랑의 봄은 억수 같은 소나기, 푹푹 찌는 더위에 차라리 한여름의 열기를 그리워할 정도로 짙은 안개와 높은 습도로 우리의 무더위를 연상케 하고, 여름은 흙바람에 뒤덮인 벽들, 뜨겁게 달구어진 ‘솥뚜껑’을 덮고 있는 듯한 하늘이 상상만 해도 목에 무언가 걸린 듯 숨쉬기가 힘들다. 9월과 10월에는 안개와 더위와 비가 차례로 하늘을 가득 채우다가 겨울이 되어야 겨우 맑아지는 도시. 오랑은 그해 5월에 만난 ‘지중해’와도 너무 다르고, 그 동안 내가 살아온 우리나라의 그 어느 도시와도 다른,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척 멀게 느껴지는 낯선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