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공부란 걸 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까지 되었으니 나의 공부 이력은 나름 길다. 대학원 과정 7년을 보내는 동안 내 삶의 모든 일상은 학교가 중심이었고, 무엇보다 이 과정이 재미있었다. 당연히 정해진 과정은 잘 완수했다. 이에 덧붙여 전공 내에서 때론 전공을 넘나들며 이런저런 세미나도 열심히 했고 학회 참석도 열심이었다. 내 공부를 완성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실에 들어온 예쁜(?) 후배와 연애도 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내 인생에서 많은 걸 얻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쟤들은 별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선후배들과 현장의 다양한 실천가들이 모여 학교 밖에 연구소도 만들어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것이 지금 내 삶에서 쓸모가 있든 없든 그 힘으로 20년 이상을 살았다. 그러니 내 인생 전체로 보아 이 시절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기에 과거의 내 공부와 일을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꼭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내가 니체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극복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이고, 그것은 글쓰기와 관련된 나의 냉소적 태도와 관련된 문제이다.
대학원 공부에서 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경우 글쓰기가 기본인 인문학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글쓰기의 중요성이 다를 바는 없다. 대학원 공부도 결국에는 논문이나 책이라는 형식의 결과물이 있어야 하니 글쓰기는 최종적으로 넘어야 하는 관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이런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논문 뭐 하려고 자꾸 써”, “조잡한 글이나 책을 쓰는 것보다 잘 쓴 글이나 잘 쓴 책 한 권 사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아?”, 심지어 “라면 받침으로 쓰일 책을 왜 또 써?” 등등. 이런 말은 당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에게도 먹혔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고, 당시 우리들은 이런 우리의 태도를 겸손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했다. 내심 우리들만은 글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겸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투에 숨겨져 있었던 글쓰기에 대한 나의 태도가 진정 겸손이었을까? 니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어리석은 겸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