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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이 망할 놈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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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7-19 18:11 조회1,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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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놈의 쥐”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당장에는 특별한 주의도 하지 않은 채 그 동물을 발로 밀어치우고 층계를 내려왔다. 그러나 거리에 나서자 쥐가 나올 곳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발길을 돌려 수위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까뮈, 『페스트』, 책세상, 2017, 21쪽)

흔히 재앙의 시작이 그렇듯이, 194*년, 오랑을 1년 가까이 공포로 몰아넣었던 기이한 사건 역시 이렇게 죽은 쥐 한 마리를 목격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건물 계단 한복판에 쥐가 죽어 있지? 하는 느낌이 슬쩍 스쳐갈 정도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절대로!’

리유가 이층 층계참에 쥐 한 마리가 죽어 있다고 말하자, 수위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리유가 분명히 죽어 있다고 재차 말하자, 자신이 지키고 있는 이 건물에 쥐라니! 그런 일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기에 있어서도 안 되고,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2020년, 지금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신종폐렴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소위 유럽의 선진국들과 세계 최강국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태도가 그랬다. 그건 야생동물을 비위생적으로 잡아먹는 후진적인 나라에서나 일어날 일이지 자기들 나라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고 설사 일어난다 해도 전염병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이후 코로나가 전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까지 급속도로 번져 나가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여전히 그것이 내 문제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코로나19 부정하는 미국인들… 

19일(현지시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미국 캔자스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 크리스트가 페이스북에 올린 밈(meme.인터넷상의 재미있는 이미지)에는 “통계적으로 우리 중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도, 콘서트와 토너먼트 경기가 취소되고,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면서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2020.3.20.연합뉴스)

“우리 중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 “콘서트”며 “경기”를 취소시켜서 자신들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게 불만이다. 죽은 쥐가 눈앞에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어가고 엄청난 숫자로 나타나도 그걸 인정하기 어려운 마당에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숫자로 만나는 확진자와 사망자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디 전염병만 그렇겠는가. 일반적으로 흉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은 일단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류머티즘 증세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건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불편한 자세로 밤을 보냈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니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런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자기 앞에 닥친 사태를 정확하게 보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부정하도록 만든다. 우리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수위 미셸의 반응도 특별한 게 아닌 것이다.

“나쁜 놈들”

의사는 그에게 혹시 또 쥐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아, 천만에요.” 하고 수위가 말했다. “제가 지키고 있단 말씀에요. 그래서 그 나쁜 놈들이 감히 가져오질 못하는 겁니다.” (같은 책, 24쪽)

의사 리유가 죽은 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쥐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게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위는 리유의 질문 속에 그런 염려가 들어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다. 쥐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가 관리하는 건물에서 쥐가 나오느냐 아니냐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런데 죽은 쥐가 나왔다는 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면서 그건 ‘밖’에서 누가 가져다 놓은 것, ‘나쁜 놈’들이 자기를 골탕 먹이려고 장난을 친 것이어야 한다. 큰 사건이 터지면 빠짐없이 음모론이 등장하는 이유다. 내게 이런 재앙이 닥칠 리 없기 때문에 그건 누군가의 음모여야 하는 것이다.

처음 우한에서 폐렴이 시작되고 난 뒤 지금까지도 무수한 음모론들이 돌아다닌다. 우한 연구소에서 화학전에 대비하여 비밀스레 배양하던 바이러스가 실수로 유출되었다거나, 빌게이츠가 백신을 개발해서 돈을 벌려고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거나. 며칠 전에는 내몽골에서 페스트 의심환자가 발생하자, 코로나19가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이건 분명 미국이 한 짓이라는 또 다른 음모론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또 각국의 지도자들은 서로 남 탓을 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나라에 확진자가 300만을 넘어선 그 시점에도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면서 중국이 초기 대응을 잘못해서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고 연일 비난을 퍼붓기 바쁘다. 중국의 시진핑 역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중국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 작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도 이미 보고가 있었다는 걸 강조하며 중국이 진원지가 아니라는 근거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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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또 나타났다고 알려주자 그는 리유에게 말했다. “이젠 아주 두세 마리씩이나 나타나는군요. 하지만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책, 29쪽)

다른 건물들에서도 죽은 쥐가 나오자 수위의 ‘나쁜 놈들의 소행’ 논리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 나쁜 놈들이 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그러자 우리 건물만 그런 건 아니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코로나를 겪고 있는 트럼프나 시진핑 역시도 그런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비단 그들뿐이겠는가. 지금도 인터넷에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했다는 기사가 뜨면 정부 탓, 특정 집단 탓을 하는 댓글들이 수도 없이 달린다. ‘나’는 페스트, 코로나19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쥐들!”

우리 건물만이 아니라 집집마다 죽은 쥐가 나오는 게 누구에게 이로우며, 서로가 ‘너 때문이야’를 외치는 게 코로나19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진원지를 아는 것이 현재 코로나 확산을 늦출 수 있거나 앞으로 올지도 모를 재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그 분야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할 일이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연구를 아낌없이 지원하면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고, 확진자가 늘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오로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살지 못하는 게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나쁜 놈들’이 저지른 이 사태가 하루빨리 종결되어 다시 예전의 습관대로 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운 좋게 사태가 어느 정도 선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법. 무서운 재앙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시기의 문제고 강도의 문제일 뿐. 결국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가 되고 만다. 아니 처음부터 ‘모두’의 문제였다. 페스트 역시 처음부터 오랑 시민 전체의 문제였다.

하여간 그날 저녁 수위는 헛소리를 해댔고 열이 40도나 오르는 가운데 쥐를 원망하고 있었다. (…) 테레빈이 들어가자 살이 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수위는 고함을 질렀다. “아! 이 망할 것들 때문에!” (…) 과연 아침이 되자 열은 38도로 떨어져 있었다. (…) 그러나 정오가 되자 열은 대번에 40도로 올라갔고 환자는 끊임없이 헛소리를 해댔고 다시 구토가 시작되었다. (…) 두 시간 후 구급차 속에서 의사와 마누라는 환자를 굽어보고 있었다. 해갈이 된 환자의 입에서 말이 토막져서 튀어나오곤 했다. “쥐들!” 하고 그는 내뱉었다. (…) 마누라가 울고 있었다. “이제 그럼 가망이 없는 건가요, 선생님?” “죽었습니다.” (39~40쪽)

감히 자신이 관리하는 건물 층계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었던 죽은 쥐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힘겨워하는 동안, 그 쥐로부터 옮겨온 페스트균은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것 같다. 감염 초기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정신적으로 괴로운 것 같다”며 “그놈들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훨씬 나아질 것”(29쪽)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 페스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길거리며 집안 구석구석 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단 하루 동안 6천 2백 31마리의 쥐가 수거, 소각되었다고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바로 그날, 수위의 몸에 페스트 증세가 확연히 드러났다. 오랑의 쥐들이 어지간히 죽고 나자 현장을 잃어버린 페스트균이 사람들로 무대를 옮겨 그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멍울이 생겨 나무공이처럼 딱딱했다. 의사가 상태를 묻자, 그는 “종기가 났나 봐요” 아마도 “과로했던 모양이에요”(33쪽) 라며,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죽으면서 내뱉은 마지막 말 “쥐들”이 그걸 말해 준다.

페스트 상황에서 수위가 겪은 이 며칠간의 삶이 그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거꾸로 말해 죽은 쥐를 발견하고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그 며칠간을 길게 늘여놓으면 그대로 그의 생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일상에서 어떤 습관을 들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이런 되풀이되는 습관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 가운데 불쑥 뛰어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은 습관이 매너리즘으로 전락하지 않고 다시 생기를 띠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랜 습관에 달라붙은 찌든 때나 이런저런 병균들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위에게서 보듯이 어지간한 사건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굳은 ‘신념’이 사건의 진상 파악을 가로막는다. 이 신념은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을 눈으로 목도해도 누군가의 음모거나 무능력, 실수 ‘탓’으로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없고, 그것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된다. 습관을 바꿀 이유도 없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일은 “망할 놈의 쥐”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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