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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습관, 이것이 궁금해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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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7-31 17:18 조회1,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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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이것이 궁금해진 까닭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만약 모든 일이 거기에 그쳤더라면 아마도 그 일은 습관 속에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 중에서 그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그것도 반드시 수위나 가난뱅이가 아닌 사람들이 미셸 씨가 먼저 밟은 길을 따라 가야만 했던 것이다. 공포가, 그리고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까뮈, 『페스트』, 책세상, 2017, 41쪽)

지난 번 ‘이 망할 놈의 쥐’를 쓰고 나서 ‘습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나쁜 습관 때문에 일상에서도 수없이 같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그럭저럭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또한 비교적 큰 문제를 일으킨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은 습관 속에 묻히고” 만다. 우리에게는 늘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나 수위의 죽음을 통해 그 습관이 바로 삶이자 운명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어질 거라고 믿고 있는 ‘긴 시간’ 덕분(?)에 습관의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자신 앞에 일어난 사건을 보는 수위의 태도(생각, 행동, 말 등등)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 하더라도 일생에 걸쳐 반복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페스트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재앙이 닥쳐서 순식간에 사건이 사태로 번지고 페스트의 빠른 전염력과 높은 독성 때문에 미처 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촉박한 시간’을 감안하면, 그런 의심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 주인공이 수위가 아니라 나였다면 당연히 전적으로 동의했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나’는 절대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작품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일로 그려 놓으니, ‘나’의 일일 때보다 그 현장이 조금은 넓게 객관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 의구심이 부당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자기 글에 대해 코멘트를 하실 때, 처음에는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아직 나를 잘 몰라서 오해했다는 생각, 내 글쓰기 실력이 모자라 전달이 제대로 안 되어서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 설명(이 아니라 결국에는 변명이라고 판명이 나버린)을 하게 되더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글을 놓고 코멘트를 하실 때는 평소 자기가 그 사람의 태도나 말, 행동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너무도 정확하고 명료하게 짚어 주시는 게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 잘못 보실 리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옳다는 걸 믿게 해 준 결정적인 사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처럼 생각한다는 것. 그걸 알고부터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짧은 글 속에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결국 오늘 하루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기억과 생각들이 일생 동안 반복될 것이고 죽음 역시 그 반복 안에서 맞이하게 될 것임이 명백해졌다.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서는 보이는데 내게서는 보이지 않는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기를 보는 게 어려우니, 오랜 시간 갈고 닦여 몸이 되어버린 습관을 어떻게 눈치 챌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습관이라는 것이 내 운명을 결정한다니! 더군다나 페스트와 같은 재앙 상황에서는 지금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이며 내가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니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이 습관이란 놈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센 것이기에 “수위나 가난뱅이가 아닌 사람들이” 수위처럼 그렇게 죽고 나서 즉 죽음의 공포가 덮치고 나서야 비로소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되는 걸까.

 

* 앞으로 두어 편의 글은 습관에 대해서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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