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의 정액에 홍사류가 생기는 것일까? 의사는 신장에 화가 잠복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자의 정은 신장에 간직된다. 신장은 팥 두 알이 마주 보는 형상인데 등 아래 허리 위쪽에 붙어 있다. 오른쪽 신장을 특별히 명문이라고도 해서 ‘좌신(左腎), 우명문(右命門)’이라고도 한다.
신장은 오행으로 볼 때 수(水)기운을 지닌다. 물에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물은 생명의 토대이고 지혜의 근원이다. 태아에게 오장 육부가 생겨날 때 가장 먼저 생기는 것도 신장이다. 그런데 신장은 가슴에 있는 심장과 호응한다. 신장은 심장과의 관계로 존재한다. 심장은 화(火)의 장부다. 신체의 말단까지 혈액을 보내서 사람을 살리는 군주지관(君主之官). 화 즉 불은 본래는 위로 타올라 연기로 사라지는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몸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혈액을 아래의 말단까지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이 타올라 사라져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신장의 물기운이다. 물은 본래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몸에서는 심장과 관계하기 위해 위로 올라간다. 등에 있는 동맥을 따라 위로 올라가 뇌에 이른 뒤 임맥을 따라 앞으로 내려와 심장에 이르러 불이 활활 타지 않고 은근히 타도록 제어한다. 이를 오행이론에서는 수극화(水剋火)라 한다. 이제 불은 비로소 정미롭게 탈 수 있다. 물기운을 머금은 심장의 불기운은 혈액에 실려 우리의 사지 말단까지 보내진다. 이와 같은 순환을 물이 올라가고 화가 내려온다하여 수승화강이라 한다. 이 수승화강 덕분에 몸의 체온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수승화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다. 바로 명문의 화이다. 명문은 신장이면서도 특이하게 불기운을 지녔다. 이 불은 심장의 물과 섞이지 않고 홀로 타는 강한 기운이다. 주로 우리가 희노애락등의 감정을 쓰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성행위를 하는 등 순간적으로 쓰는 에너지다. 이 명문화의 활동은 우리의 삶을 생동감 있게 하고 활력을 준다. 그러나 지나칠 때가 문제다. 불기운이 강한 나머지 우신의 물기를 졸여버리기 때문이다. 신장의 물기뿐 아니라 몸 전체에 있는 물기들까지 없애버린다. 심지어 ‘원기, 곡기, 진기를 탈취해간다’고 까지 하고 있다. 좌신장에는 심장으로 올라갈 물기가 없어져 수승화강도 무너져 버린다. 오죽하면 정액의 물기도 없어져서 붉은 홍사류가 생기겠는가. 이를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 한다. 신장의 물의 기운을 음(陰)으로 보아서 ‘음이 허하고 화만 망동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