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유식은 구체적으로 식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고, 또 어떻게 세상을 인식한다고 할까? 그걸 알려면 유식에서 말하는 식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한다. 유식은 총 여덟 개의 식을 얘기하는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말나식(末那識) 그리고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간단히 1식, 2식, 3식, 4식, 5식, 6식, 7식, 8식이라고도 한다. 안식에서 의식까지는 많이 들어봤지만, 말나식과 아뢰야식은 명칭부터가 생소하다.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인들이 발음 나는 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들 중 안식에서 말나식까지(1식에서 7식까지)는 현실의 표층에서 작용하는 식이고, 아뢰야식은 표층 뒤에서 작용하는 심층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식이란 ‘알다’, ‘분별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안식(眼識)은 ‘보는 것을 통해 앎이 일어나는 식’이란 뜻이다. 그런데 식의 뜻이 참 놀랍다. 대상을 보고 인식하는 수동적인 것으로만 식을 생각했는데, ‘앎이 일어나는’ 것이 식이라니. 그렇게 보면 우리가 자각을 하던 하지 않던, 보는 데서도, 듣는 데서도, 냄새 맡는 데서도, 맛보는 데서도, 감촉하는 데서도, 생각하는 데서도 끊임없이 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나의 식들은 수많은 앎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이식(耳識)은 듣는 것을 통해 아는 작용, 비식(鼻識)은 냄새 맡는 것을 통해 아는 작용, 설식(舌識)은 맛보는 것을 통해 아는 작용, 신식(身識)은 감촉하는 것을 통해 아는 작용, 의식(意識)은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을 통해 아는 작용, 말나식은 ‘나’라고 아는 작용, 마지막으로 아뢰야식은 이 모든 식들(안식에서 말나식까지)을 생겨나게 하는 근본(根本) 식이자 이 식들이 안 것을 저장하는 저장식이다.(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연재 글에서 계속된다.)
유식의 여덟 개 식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아뢰야식이다. 근본인 이유는 다른 모든 식들이 아뢰야식에서 변하여 나오기(이를 ‘전변(轉變)’이라고 한다) 때문이다. ‘아뢰야’는 ‘저장하다’, ‘보존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뢰야식엔 무언가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을 저장하는가? 안식에서 말나식까지의 아는 작용을 통해 안 모든 것을 저장한다. 한마디로, 식이 ‘경험하여 안 모든 것’을 저장한다는 것이다. 종자(種子) 형식으로 저장하는데, 종자는 씨앗이라는 뜻이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바로 그 씨앗이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조그마한 것(因)을 땅에 심어 물과 햇빛(緣)을 주면 어느새 콩이 되고 팥이 된다(물론 유식에서는 콩 심었다고 콩 그대로 팥 심었다고 팥 그대로 나오진 않는다.^^). 그러니 종자를 잠재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뢰야식에는 이와 같은 잠재에너지 형태의 종자들이 저장되어 있다. 아뢰야식의 종자를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프로그램들로 비유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뒤편에 존재하면서 언제든 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 뭐… 똑같진 않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