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말한다. “위대한 목표를 지닌 사람은 그의 행위나 심판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의보다도 더 높은 곳에 서 있다.(위와 같은 책, 250)”고. 이제 나는 트럼프와 전광훈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쉽게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남자-되기는 내가 예전에 나름 애썼던 자신의 개인적 행위의 개선, 세상에 대한 심판자 역할, 나아가 지금 세상에 대한 정의로움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틀 안에서 나 자신의 행위를 아무리 개선한들, 세상에 대해 아무리 예리한 분석과 판단을 한들, 아무리 정의를 갈구한들 그것으로 위대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니체의 ‘위대한 남자!’를 다시 생각해본다. 니체는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로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위와 같은 책, 251)이라 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이를 위해 내딛어야 할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세상에서 위대함을 외친 남자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하고 반생명적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삶과 공부에 대한 비전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세상과 접속하고 나의 일상을 돌아보며 매일매일 겪어나가는 사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결국에는 “공부를 통해 ‘위대한 비전과 접속하는 것’, ‘천지자연의 이치와 교감하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위대한 남자-되기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니체를 읽고 난 후 나는 최근 나라는 존재를 다시 볼 때가 많다. 한때 남자였던 나는 더 이상 남자를 욕망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 욕망하는 것은 ‘어린아이’이고,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이다. 물론 ‘마법에 걸린 여자’도 예외일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진정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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