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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클래식]대중 – 다들 그렇게 살잖아 (2)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9-23 11:23
조회 : 239  

2부 약자가 살아가는 법 - 2)

근영(남산강학원)

2. 신문, 여론과 대중의 이름으로 말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상성은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보이고 들린다. 하지만 니체가 살던 시대만 해도 그것은 새롭게 출현한 현상이었다. 바꿔 말해, 정상성이 한 사회의 지표로 여겨지게 된 것은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

니체가 정상성의 현상으로 주목한 것은 신문의 저널리즘이었다. 17세기 말 독일에서 최초로 발행되기 시작한 일간신문은 19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기술력의 발전에 힘입어 놀라운 제작속도와 보급률을 보인다. 신문은 그렇게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신문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여론과 대중이다. 여론이란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이고, 이 의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대중이다. 신문의 글들은 이런 여론과 대중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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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글들은 이런 여론과 대중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니체가 보기에 이것은 매우 이상한 관점이었다. 어떤 것이 단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유로 가치있는 것인 양 다루어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해, 혹은 왜곡이었다. 가치로운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는 사실이 그것이 가치로운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신문은 대중과 여론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동력 삼아 움직인다. 여론을 읽고, 여론을 전달하기 그리고 여론을 만들어내기!! 이것이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신문의 기능은 단지 일어난 일을 전달하는 데 있는 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신문의 기사나 논평들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들. 국민의 뜻이 어떻다든지, 혹은 시민들의 생각이 이렇다는 식의 이야기들. 이런 언급들을 읽다 보면, 종종 내 생각이 그런 국민이나 시민들의 흐름과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래서 의아해지곤 한다. 국민의 뜻이라는 게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 기사의 시민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이와 비슷한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어떤 고등학교에 한 선생님이 있었다. 이 선생님은 3학년 전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1반 수업을 하는데, 애들이 너무 떠들더란다. 그래서 선생님 왈, 다른 반은 다 말을 잘 듣는데 너네 반만 떠드는구나! 그리고 이번에는 2반 수업. 거기서도 애들이 떠들자, 다시금 말하길, 다른 반은 다 말을 잘 듣는데 너네 반만 떠드는구나! 이렇게 선생님은 3반, 4반…9반, 10반까지 쭉 이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음…3학년은 열 개 반이 전부다. 그렇다면 그 말 잘 듣는 ‘다른 반’은 어디 있는 걸까? 학교 괴담?

사실 다른 반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이 노린 효과는 다른 것이었으니까. 너네 반만 지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그러니까 이쪽으로 와, 라는. 그런데 여기서 이쪽이란, 바로 선생님이 바라는 방향이다. 실재적으로 다른 반은 없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이런 식의 말은 ‘다른 반’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괜히 우리 반만 밉보여 좋을 거 없잖아, 그래봤자 우리만 손해지, 그 ‘다른 반’이라는 곳에 가서만 시험 힌트 주면 어떻게 해. 그러니 우리도 ‘다른 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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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반은 다 말을 잘 듣는데 너네 반만 떠드는구나!

신문이 하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어떤 것을 여론이라고 얘기함으로써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 이런 면에서 여론이란 객관적 지표라기보다는 하나의 권력이다. 지금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 아닌,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

신문은 그 신호를 ‘여론’이라고 표현한다. 여론! 다수의 공통(!)된 생각. 굉장히 중립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그걸 주장하고 있는 거라는 식의 화법. 이런 언표에는 그 일로부터 한 발 살짝 빼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지점이 니체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니체는 신문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신문이든 뭐든,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 경우란 없다. 오히려 그런 방향은 분명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신문은? 솔직하지 못하다. 속임수를 쓴다. 여론이라는 말 뒤에 숨어, 그 말의 힘에 기대어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음험한 마음.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요즘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들은 신문의 이런 속성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는 듯하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그 덕분에 자기 말에 꼭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여론이 그렇다는 거에요,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여론과 대중이 만들어지는 것은 신문의 일방적인 작업의 결과가 아니다. 신문의 여론몰이를 실재하는 여론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우리다. 여론에 우리 생각을 맡기고, 여론이라는 것의 방향에 따라가고 싶어하는 우리,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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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에 우리 생각을 맡기고, 여론이라는 것의 방향에 따라가고 싶어하는 우리, 약자.

3. 무리본능에 이끌리다

지금 우리는 여론과 대중의 시대 한복판에 서 있다. 포털 사이트들에서 쏟아지는 뉴스들, 거기에 SNS와 유튜브까지, 온갖 미디어들은 열성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를 따라 해봐요, 이렇게~. 우리는 또 거기에 혹한다. 그래서……유명 연예인이나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입은 옷은 왠지 끌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맛집이라면 나도 가서 인증샷 하나는 찍어와야 할 듯 하며, 누가 이런저런 살림을 장만했다면 나도 그 정도는 집에 갖추고 있어야 덜 뒤처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비트코인, 주식 대란이, 부동산 광풍이, 비정상적인 입시 열풍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우리는 하나의 귀! 언제나 여론이 들려오길 기다린다. 그렇게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존재적 기반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다. 존재의 유일무이성 말이다.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각각의 존재는, 앞으로도 뒤로도 다시는 없을 그런 존재들이다. 물론 우주라는 광대한 시공간과 비교하면 우리는 참으로 작디작은 존재다. 가끔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우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아무리 억겁의 시간을 자랑한다 해도, 나나 당신 같은 존재는 이 우주에 딱 한 번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참으로 경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적 유일무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가꾸고 뽐내면서 보란 듯이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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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아무리 억겁의 시간을 자랑한다 해도, 나나 당신 같은 존재는 이 우주에 딱 한 번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우리는 그 유일무이성을 쉽게 내팽개친다.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부끄럽다는 듯이 그것을 숨기려 든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과 엇비슷해지려 한다. 우리 자신의 독특성 대신, 여러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서 살기를 택한다. 요컨대, 대중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무리본능’이라 했다. 현대의 미디어들이 건드리는 것도, 이 사회의 가치를 정상성에 두게 하는 것도 이 무리본능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언제 무리본능이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게 되느냐이다. 왜 무리본능에 이끌려 우리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서 대중이 되어가는 것인지. 묘한 것은 이것의 단서 역시 우리 자신의 존재적 기반인 그 유일무이성에 있다는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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