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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 그 어떤 ‘팬데믹’에서도 살아남을 인간형, ‘그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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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9-29 14:06 조회1,6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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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팬데믹’에서도 살아남을 인간형, ‘그랑’ (1)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그는 페스트의 와중에 휩쓸려 있는 그를 상상해 보았다. 그것도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닐 듯한 지금의 페스트가 아니라, 역사상의 어떤 대대적인 페스트 한복판에 있는 그랑 말이다. ‘그런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야.’ 그는 페스트가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놓아두고 특히 건장한 체질의 사람들을 쓰러뜨린다는 기록을 읽은 생각이 났다. 그리하여 그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리유는 그랑에게서 어떤 자그마한 신비의 한 구석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되었다. (까뮈, 『페스트』, 책세상, 2017, 70쪽)

지금 오랑에 퍼지고 있는 병이 페스트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이미 리유가 만나본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페스트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사로서도 속수무책이라 지금까지는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무시무시한 통증에 몸부림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리유는 쓸데없는 두려움에 휩싸일 일이 아니라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각자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랑’이야말로 이보다 훨씬 심각한 페스트 한복판에서도 살아남을 종류의 인간이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코로나19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넉넉잡아 5월쯤이면 어떤 결론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급기야 세계보건기구에서 팬데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도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초기에 대구에서 폭발적인 숫자가 나올 때만 해도, 놀라기는 했지만, 특정 집단 내에서의 발생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인구가 과밀한 서울에서 5월 초와 8월 중순, 두어 번 제법 큰 규모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더니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백신 개발 소식도 그리 신통한 게 없으니, 결국 개인의 면역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 리유가 주목한 ‘그랑’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 페스트도 아니고 “대대적인 페스트” 한복판에서도 살아남을 종류의 인간이라니! 그랑의 어떤 점이 의사 리유에게 그런 느낌을 갖게 한 걸까?

허약 체질의 20년 임시직

후리후리하고 마른 몸매에, 옷은 커야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자기 나름의 생각에서 (…) 아래 잇몸에는 대부분 이가 그대로 있었지만 그 대신 위턱에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보더라도 그는 일당 62프랑 30상팀으로 시청의 임시직 보조서기의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될 직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앞의 책, 70쪽)

그랑은 어깨가 좁고 팔다리가 가느다란, 보기에도 무척 허약한 오십대 남자다. 벌써 윗니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노쇠했다. 하긴 그는 젊은 시절부터 건강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대동맥 협착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가난했기 때문에 의사 리유가 무료로 치료를 해 준 인연이 있는 사람인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코타르라는 남자가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왕진을 부탁하면서 다시 리유를 만나게 되었다. 그날 밤 그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돕고 살아야한다며 코타르를 돌봐준 선량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22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잔이라는 이웃 동네 처녀와 결혼을 했다. 더 공부할 돈도 없었지만 가정을 꾸리자니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시청이었다. 통계과와 호적과에서 보조 서기직을 수행했다. 처음 그를 채용한 국장은 근무 기간이 늘어나면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혼 후에도 정식 발령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몇 해 뒤, 아내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그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되도록 임시직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그 동안 승진 약속을 지키라는 청원을 하는 대신, 자신의 수입에 맞추어 분수껏 지출하는, 거의 고행에 가까운 습관을 들였다. 덕분에 자신이 물질적으로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에 이르렀고, 물질적인 가난에서 오는 근심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랑의 이러한 생활 습관은, 하나같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대다수 오랑 시민들의 욕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거기에는 허약한 체질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주중에는 오로지 돈을 버는 일에,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주중의 스트레스를 푸는 쾌락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러려면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에 수천 마리의 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랑은 아예 “동네 소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37쪽) 오랑 시에 돌아다니는 소문이라고 해봤자, 2020년 지금 우리 사회처럼, 하나같이 자본의 증식 여부나 섹스와 관련된, 허약 체질의 20년 임시직인 그랑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딴 세상 이야기들이었을 테니까.

신성불가침의 저녁 시간

“죄송합니다.” 하고 아름 광장의 한 모퉁이에 이르자 그랑이 말했다. “한데 저는 전차를 타야겠습니다. 제 저녁 시간은 신성불가침이거든요.” (…) “아!” 하고 코타르가 말했다. “정말 그래요. 일단 저녁만 먹었다 하면 아무도 저 사람을 집 밖으로 불러낼 수가 없어요.”(68-69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자가 되기 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 카드놀이나 카페에서 잡담을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저녁 시간, 더군다나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점차 불어가고 있어 그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혼자 있기를 꺼려하는 그 때에, 그랑은 혼자서 어디에 마음을 쏟고 있는 걸까. 스스로가 신성불가침이라고까지 말하는 걸 보면 여간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닌 듯하다.

 

의사 리유는 코타르의 자살 소동 때 그랑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때 가구라고는 없었고, 눈에 띄는 것이라곤 사전 두어 권이 꽂힌 나무 선반과 어떤 맥락에서 쓴 건지는 알 수 없는 ‘오솔길이 어쩌고’ 하는 문장이 적힌 칠판뿐이었다. 그는 매일 저녁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있었다. 리유를 만날 때마다 말하곤 하던 “마음먹은 것을 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였다.(73쪽) 아내가 떠난 이후 그가 줄곧 생각해온 것은 편지나 한 장 써 보내서 그 당시 자신의 심정을 정확하게 전달했으면 하는 거였는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그가 저녁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그가 20년간이나 승진 요구를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약속했던 국장이 죽고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서”이다.(72쪽) 그래서 여태 청원서 한 장 못쓰고, 필요한 운동 한 번 못했다.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자니, 이 ‘권리’라는 말을 이 상황에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고,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려고 해도 ‘약속’이라는 말로 자기 몫을 요구하는 것이 자기가 맡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직책에 어울리는 말인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호의’를 베풀어 달라든가, 그렇게 해 주면 ‘감사’하겠다든가 하는 다소 부드러운 표현으로 써 볼까도 싶지만, 이런 말들은 “자기의 인격적인 자존심을 손상하는 것”(72쪽)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

시청 서기직을 선택한 이유도 딱 맞는 언어 사용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숫자를 주로 다루는 통계과라든가 정보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호적과의 일은 단어 선택의 괴로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니 그가 바라는 “정직한 방법으로”(71쪽) 생계를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에 마음 편히 몰두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결국 그랑에게는, 승진 청원서에 쓸 언어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승진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랑은 자기 존재를 찾는 일을 저녁마다 하고 있는 셈이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랑은 스스로가 그 일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고, 그래서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그 누구도 그를 집 밖으로 불러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그는 자기가 지니고 있던 선의를 가지고, 주저함 없이 자기가 맡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다만, 자질구레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외의 일을 하기에는 그는 너무 늙었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그는 자기 시간을 바칠 수 있었다.(186쪽)

죽은 쥐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에게서 페스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망자 수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갑자기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자 그 동안 페스트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를 꺼려하던 당국에서 급기야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봉쇄한다.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대부분의 오랑 시민들은, 점심시간이면 식당으로 몰려가 고급 술이나 안주로 돈을 흥청망청 경쟁적으로 쓰면서 사치를 과시하는 것으로, 또 선선한 저녁이 되면 향락에 몸을 던짐으로써 페스트를 쫓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가 하면 아무것도 소용없고 페스트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의사 리유와 평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애쓰던 타루의 생각은 달랐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죽음이나 생이별의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페스트와 싸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루가 민간 봉사자들을 모집하자, 그랑은 망설임 없이 여기에 합류했다. 저녁 6시-8시, 두 시간을 그 일에 바치기로 했다. 그가 맡은 일은 여러 가지 활동의 등록과 통계 작업이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리유에게 그랑은,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니고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가 아니냐며 “만사가 이렇게 단순했으면 좋”겠다고 답한다.(186)

그 이후 페스트는 요지부동으로 끝없는 제자리걸음을 이어갔고, 그랑은 문장 연구에 더욱 몰두하느라 점점 더 피로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페스트의 정확한 상황도”(190)를 보여주려고 매일 저녁 카드 정리며 그래프 작성에 정성을 쏟았다. 그 시간만큼은 “오직 필요한 일만을 해내려고” (190) 애를 썼다.

방역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질병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여 유통시키는 것. 그래야 사람들이 근거 없는 낙관으로 방심하지도, 지나친 불안으로 위축되지도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일상을 꾸려갈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외에는 비말로 전파되는 코로나19에 대응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랑은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평생 허약한 체질로 살다 보니 감정이든 행동이든 오버하지 않아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몸이 안다. 수입이 적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무리를 하기보다는 지출을 수입에 맞추며 산다. 그러니 자연히 돈을 벌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과도, 또 그들이 좇는 쾌락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생각 또한 단순하다. 전염병이 생겼으니 막는 건 당연지사, 번뇌가 없다. 괴벽이다 싶을 정도로, 정확한 언어 사용 또한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하다. 전염병의 정체를 더 잘 알아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능력(?)을 가진 그랑, 그는 정말 의사 리유의 느낌대로 페스트를 무사히 통과하게 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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