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효로써 어우러져
차츰 차츰 나아가게 하여
간사한 곳에 이르지 않게 한다’고.
‘고수 또한 믿고 따랐다(瞽亦允若)’는 말은
고수가 이미 감화하여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상은 오히려 공손하지 못하여서
관계를 풀고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옳은 길[선]로 다스려 나아가니
나쁜[악] 것에 이르지 않고
간사함에 나아가지 않으니
틀림없이 선에 진입한 것입니다.
진실로 상은 이미 순에게 감화되었던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자(순)께서 관리를 보내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으니
상이 덧붙여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라고.
이것은 대개 순이 상의 마음속 깊은 곳과
생각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아끼어서
어려움을 도와 두루두루 잘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공의 성인됨이
관숙과 채숙의 반란을 면하지 못했던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상이 이미 순에게 감화되었고,
그런 까닭에 어질고 능력있는 이들을 임명하여 그 지위를 안정시켰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백성들에게 은택을 베풀어서
죽은 후에도 백성들이 그를 마음에 품게되었습니다.
모든 제후들의 경대부들이
천자로부터 그 명을 받는 것은
대개 주나라의 임관 제도인데
이는 거의 순임금이 상을 책봉했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며
천하에 교화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당나라 사람들이 그 사당을 허물어버린 것은
상의 초반 모습에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묘족 사람들이 상을 높이 받드는 것은
상의 최종 교화된 모습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나는 이제 세상에 드러내어
사람이 선하지 못하여
비록 상과 같은 형편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나아가 군자의 수양된 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비록 상과 같은 불인(不仁)함일지라도
오히려 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상의 사당에 부치는 글(象祠記) / 왕수인(王守仁) / 문리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