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러했다. 나 학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문을 등 뒤로 힘껏 닫아버렸던 것이다.
(니체,『차라』,「학자들에 대하여」, 책세상, 212)
니체는 학자였다. 그는 25세에 박사학위도 없이 바젤대학의 교수로 임용될 만큼 촉망받는 학자였다. 한편 니체는 대학에 있을 때부터 기존의 학풍과는 다른 사유와 글쓰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학자 니체’를 있게 한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비극의 탄생』의 경우 당시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고전문헌학계에서 혹평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니체는 ‘아포리즘적 글쓰기’라는 자신만의 문체로 글을 썼다. 당연히 대학에서 인정하는 논문식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저술에서 학자들을 언급하고 있고, 이때마다 학자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다. 당시 유명 저술가였던 슈트라우스는 ‘교양 속물’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대학을 고집한 칸트의 경우 ‘번데기’에 비유해 비판하고 있다.(『반시대적 고찰』) 이렇게 니체는 스스로 학자였지만, 학자에 대해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국 10년 정도 대학교수 생활을 한 후 그 자리를 떠난다. 겉으로는 자신의 질병(심한 두통 & 안통眼痛) 때문이었지만, 이것만으로 니체라는 한 철학자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이후 니체는 죽을 때까지 학자인 듯, 학자가 아닌 듯한 삶을 살아간다. 대학이라는 틀에 갇혀 사유하고 강의하며 글을 쓰는 일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는 학자가 아니었다. 반면 그는 학자들의 세계를 박차고 나왔지만, 자신만의 사유에서 길어 올린 것들로 지금의 ‘니체 철학’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는 위대한 학자이다. 니체는 대학에 안주하는 철학을 비판하면서, 철학이 어떻게 매주 같은 시간에 동일한 양만큼, 예를 들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서 4시까지, 가능한지를 물었다. 대학에서 자신의 철학적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니체는 오랜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낮에는 걸으면서 사유하고 밤에는 그 사유를 글로 옳기는 생활을 이어간다.
니체는 왜 이곳에서 빠져나왔을까? 학자들의 출신 성분을 비판하는 그의 글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학자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앎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는 것’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