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貴州). 귀주는 북쪽으로는 사천, 서쪽으로는 운남, 동쪽으로는 호남성, 남쪽으로는 광서성장족자치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중국 전체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곳입니다. 지형이 험준하다보니 왕래가 적어서 고립지가 많기 때문인데, 정식으로 중국사에 편입된 것도 명나라 때부터이니 실제로 귀주는 오랫동안 중국의 외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게 귀주는, 양명학을 공부하게 된 이래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가 봐야 하는?) 장소였습니다(양명의 연보에서 귀주는 양명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는, 다시 말해 양명학적 사유가 본격화 된 곳이라는 명확하고 특정된 시공간적 좌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2018년 10월, 실현되었습니다. 2005년 봄에 처음 <전습록>을 만났으니 대략 십수년의 시간이 경과된 셈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양명과 양명학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전습록>과 양명 관련된 작은 리라이팅 책을 한 권 썼고, ‘낭송용’ <전습록>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양명을 그리고 양명학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배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양명이 아니었다면 제게 귀주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귀주엘 갔던 그 무렵까지도 저에게 귀주는 그저 상상된 땅이었고 이미지화된 땅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귀주를 ‘책으로’ 배웠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였을 겁니다. 처음 귀주, 그리고 묘족 사람들이 모여사는 ‘서강천호묘채’에서 맞닥뜨린 기묘함과 경이로움은 그간 제가 머릿 속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의 현실화가 주는 감동이었다기보다는 그저 낯설고 이국적인 풍광에 대한 찬탄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양명학의 성지 순례라던 농담반 진담반의 기대와 흥분이 수천년에 걸친 삶의 현장 앞에선 한낱 관념 조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기분 나쁘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비로소 어떤 실감이 드는 듯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