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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을 만나다] 택견 소년, 『주역』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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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1-04 19:20 조회1,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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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소년, 『주역』을 만나다





김지형(감이당 주역스쿨, 토요반)

나는 택견만 12년째 하고 있는 초졸이다. 초졸인 이유는 공부가 싫어서 중,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갔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놀고 싶은 욕망이 강한데 공부는 내 욕망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더 놀고 싶은데 공부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노는 것을 방해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매우 고통스러웠고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나에게 시간이 빨리 흘러 갈 때는 놀고 있을 때랑 택견을 할 때였다.

택견은 작은 호기심에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어떤 영상을 보고 있었다. 꼬맹이 두 명이 대련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택견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택견도 재미있었지만 끝나면 같이 운동을 했던 친구들과 뛰어 놀 수 있었다! 그래서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택견을 그만두게 됐고 점점 멀어졌다. 기숙사 학교여서 외출이 엄격하여 못한 것도 있지만 대안학교라 공부가 빡빡하지도 않았고 남는 시간에 충분히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택견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6살 겨울방학 때였다. 가족여행으로 히말라야를 갔을 때다. 일반인이 최고로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목표였다. 아직은 설산이 보이지 않는 지리산 같은 지점을 통과 하고 있을 때였다. 만화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배경이 검정색으로 바뀌면서 번개가 내리치는 장면처럼 팍! 하고 뭔가가 나에게 왔다. 그건 마치 신의 계시인 것 같았고 그 순간 ‘아, 택견을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학교였다. 그래서 일단 학교에 허락을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배우러 갔다. 하지만 그것으론 성에 차지 않아서 택견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충주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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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 가니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운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 번의 발차기, 산을 뛰어갔다 내려오기, 푸쉬업이나 윗몸일으키기 같은 근력운동들을 하루에 몇 백 개씩 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들 때 기대고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장님은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고 위로도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해주셨다. 선배A는 나랑 성격이 잘 맞았다. 좌우명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다. 선배는 ‘한 번뿐인 인생 느낌 있게’, 나는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였다. 후배B는 진지한 허당이었다. 성격도 되게 싹싹해서 형들한테 매우 잘 대했고 허당끼가 많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입에서 웃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관계들이 택견을 계속 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러던 2018년 말, 우연히 감이당에 사주명리 강의를 들으러 갔다. 공부라면 치를 떨었던 나였지만 사주는 엄마랑 누나가 하도 많이 얘기해서 조금은 관심이 있었다. 사주명리가 끝나고 곰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여기서 택견수업 한 번 해볼래?”라고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네? 제…제가요?” 라고 반문을 해버렸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한 달에 두 번씩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 뒤 몇 달 있다가 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평소에 하던 운동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감이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였던 것 같다. 택견수업을 하러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니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나의 삶은 하루하루가 똑같은 패턴이었다. 아침에 런닝하고 전수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마지막 수업까지 마치면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전부였다. 나에게는 뭔가 신선한 게 필요했다. 감이당은 모든 것이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곳이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등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신선했다. 그래서 결국 충주를 떠나 감이당에 가기로 결정했다. 공부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장(場)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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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이당에 들어오자마자 큰 사고를 쳤다. 감이당에 있는 학인과 연애를 했다가 끝맺음을 제대로 못해서 관계가 어색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마음이 너무 심란해져서 내가 진행하는 택견 수업에 30분이나 지각을 해버렸다. 감이당에서는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은 대형 사고였다. 까딱하면 들어오자마자 쫓겨날 뻔했지만 나는 납작 엎드려 버텼다. 왜냐하면 너무 쪽팔렸기 때문이다. 관장님께 호언장담을 하고 서울에 온 것인데 한 달 만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쪽팔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중에 쌤들이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다. 천자문을 외우고 쓰는 미션이 주어졌다. 천자문을 못 외우면 쫓겨난다고 생각했던 나는 엄청 열심히 외웠다. 처음에는 외우기가 조금 벅찼다. 하지만 계속 외우다 보니 점점 쉬워졌고 내가 한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결국 1,000자를 다 외우고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 이제야 겨우 여기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자 택견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색다른 길을 한번 가보고 싶어져서 감이당에 눌러 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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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이 끝나자 ‘주역외우기’ 미션이 주어졌다. 천자문을 통해 한자가 익숙해졌고 분량도 천자문보다 적어서 외우기는 쉬웠다. 근데 내용이 뭔지는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계속 외운 이유는 담당 쌤이 주역의 첫 걸음은 ‘무조건 외우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감이당에서 2020년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토요주역’이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근데 수업을 들어도 주역이 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필기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 상태로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외웠다. 그렇게 계속 수업을 듣다 보니 주역이 나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그리고 주역 점치는 법을 배우고 나서 내 점도 쳐보고 남의 점도 쳐봤다. 그러자 어렴풋이 ‘주역은 자신의 운명지도에 필요한 나침반이지 않을까?’라고 내 안에서 정리가 됐다.

그러던 중에 주역 관련 글을 써서 연재할 기회가 생겼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주역으로 글을 쓴다니! 괘를 완전히 잘못 해석해서 이상한 글을 쓸 수도 있는데…….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더 깊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택견을 시작했을 때처럼 『주역』도 즐겁고 끈기 있게 공부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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