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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生生) 동의보감] 감정을 싣고 흐르는 경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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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1-11 15:31 조회1,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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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싣고 흐르는 경맥



박정복

어떤 남자가 등과 어깻죽지가 붙은 곳에서부터 한 줄기의 통증이 나타나 어깨로 올라갔다가 앞가슴으로 넘어와 양 옆구리에 와서 멎는데 그 통증이 밤낮으로 그치질 않았다. 그리하여 맥을 짚어보니 현삭(弦數)한데 꾹 누르면 더 크게 뛰고 좌측맥이 우측맥보다 더 컸다. 따라서 나는 생각하기를 등과 어깻죽지는 소장경(小腸經)에 속하고 가슴과 옆구리는 담경(膽經)에 속하니 이것은 반드시 사려가 지나쳐서 심(心)을 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심에는 병이 생기지 않고 소장에 먼저 병이 생긴 것이므로 통증이 등과 어깻죽지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사고하면서 결단하지 못하는 것은 담(膽)과 연관되므로 통증이 가슴과 옆구리까지 미치게 된다. 이것은 소장의 화(火)가 담목(膽木)을 타 누르는 것으로서, 아들이 어머니를 누르는 격인데, 이것은 실사(實邪)이다. 환자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과연 무슨 일을 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해서 병이 되었다고 하였다. (「외형편」, 배(背), 732쪽)

일주일 전에 도서관에서 동의보감 수업을 하다가 질문을 받게 되었다. 40 초반 쯤 되어 보이는 가장 젊은 분이 ‘기(氣)’의 개념을 알기 쉽게 말해 달라고 했다. 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어려워하는 듯 했다. 나도 『동의보감』을 처음 대했을 때 낯설었던 개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글자처럼 많이 쓰이는 어휘도 드물다. 기운, 용기, 열기, 습기, 전기….우리는 온통 기의 세계에 살고 있다. 단지 눈으로만 안 보일 뿐 다른 감각으로는 확실히 느끼고 있으며 일상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몸과 관련해서 『동의보감』엔 우리 몸의 기가 오곡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오곡에서 화생한 정미로운 물질을 전신으로 발산시켜 피부를 따뜻하게 하고 형체를 충실히 하며 모발을 윤택하게 하는데, 이것은 마치 안개와 이슬이 초목을 축여주는 것과 같’(「내경편」, 기, 245쪽)다고 하고 있다. 몸이 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라고 해도 좋다.

그 분에게 우리가 배고프면 아무 일도 못하다가 밥 먹으면 힘이 나서 움직이기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으니 신체 혹은 물질을 작동하게 하는 힘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대체로 긍정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 몸의 기는 원래는 우주 차원의 것이었다. 빅뱅이라 불리는 우주 시작 때부터 생긴 그 엄청난 기운. 그 기운 중에서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의 기운을 이루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와 땅의 기운을 이룬다. 한의학에선 위로 올라간 하늘의 기운을 양이라 하고 땅에 내려온 기운을 음이라 한다. 그리고 이 음양의 기, 천지의 기는 인간의 몸 뿐 아니라 만물에 ‘분유’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가 밥을 먹는 것도 이 곡식에 분유된 우주의 기와 소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운은 우리 몸에서 정연하게 길을 내며 일정한 법칙에 따라 흐르고 있다. 이른바 12경맥이다. 12개의 강물의 흐름처럼 생각해도 좋고 전철의 12개 노선이 서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보아도 좋다.

이는 우리의 오장 육부와 연결되어 오장육부가 담당하는 생리작용 뿐 아니라 감정도 싣고 흐른다. 예를 들어 수태음폐경은 폐와 연결되어 있어서 폐가 주관하는 호흡과 슬픔의 감정을 싣고 흐른다. 경맥은 기의 통로인 동시에 병의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몸의 어디가 아프면 그 아픈 곳을 지나는 경맥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경맥과 연결된 장부를 치료하면 된다.

위의 사례에서는 등과 어깻죽지에서 생긴 통증이 어깨에서 앞가슴으로 내려와 양 옆구리에서 멈춘다고 하니 이 곳을 지나는 경맥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12경맥 중에서 이 곳을 한꺼번에 지나는 경맥은 없다. 그래서 의사는 두 개의 경맥으로 나누어 보았다. 등과 어깻죽지를 지나는 경맥은 ‘수태양소장경’이다. 또한 가슴에서 옆구리로 내려오는 경맥은 ‘족소음담경’이다. 그렇다면 소장과 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오행으로 볼 때 소장은 심장과 함께 화(火)의 장부로 묶이고 경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장은 소화를 담당하는데 심장과 같은 화의 기운으로 음식을 부수기 때문이다. 대개 병은 감정이나 생각을 과도하게 하는데서 생긴다. 환자의 맥을 짚어보니 사려를 지나치게 한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의사는 심장이 상한 것으로 보았다. 심장은 소장과 짝이면서 모든 장부와 모든 감정과 생각을 총괄하는 기관이어서다. 그래서 군주지관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도 심장에는 아직 병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심장과 연결된 수소음심경은 등과 어깻죽지를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병은 밖에서 안으로 진행되는데 장(藏)(간, 심, 비, 폐, 신)이 안에 있고 부(腑)(담, 소장, 위, 대장, 방광)는 밖에 있다. 병이 안에 있는 장에 들어갈수록 증세가 심해지고 치료가 힘들어진다. 심,소장의 경우 심장이 장(臟)이며 소장은 부(腑)이다. 심이 상하긴 했지만 밖에 있는 소장부터 병이 든 걸로 보았다. 심장의 지나친 화기가 소장에 전달되어 소장부터 병이 든 것이다. 이처럼 심장이 상했더라도 밖에 있는 소장부터 병이 들었다고 경맥을 통해 추적해가는 과정이 놀랍다.

그런데 담은 오행 중에서 목(木)의 기관으로 봄기운을 주관한다. 언땅을 뚫고 나오는 봄의 나무처럼 담은 용기를 주관한다. 봄에 어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듯이 용감하게 실천하는 기운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담경락에 통증이 올 수 있다. 가슴과 옆구리로 담경락은 흐른다.

등과 어깻죽지에서 시작하여 가슴과 옆구리까지 통증이 연결된다는 것은 화의 경맥과 목의 경맥이 서로 길이 다른데도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화와 목의 관계는 오행의 상극으로 볼 때 목생화(木生火)이다. 이것이 자연스럽다. 목이 어미라면 화는 아들이다. 그런데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심장의 기운을 너무 쓴 나머지 어떤 일을 용기 있게 실천하지 못했다. 화가 목을 누른 격이다. 그래서 아들이 어미를 누른 격이라고 했다. 이는 자연스럽지 못하니 통증이 세질 수 밖에.

경맥은 일반인 뿐 아니라 서양의학자들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검사나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사례를 보니 감정이 얼마나 정교하게 경맥을 따라 흐르는지 알 수 있다. 감정도 몸과 밀접한 관계를 하는 ‘생리의 발현’이다. 내 몸의 모든 물길들이 내 감정을 싣고 흐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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