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우주 삼라만상은 기본적으로 열여덟 세계로 나눌 수 있다. 보이는가? 그러면 ‘형상’을 ‘보며’ ‘아는’ 세계인 형상의 세계(色界), 형상을 보는 세계(眼界), 형상을 아는 세계(眼識界)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형상’과 ‘봄’ 그리고 ‘아는 마음’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니, 셋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지만 셋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식의 세계’에는 ‘안식’뿐만 아니라 ‘형상’과 ‘봄’이 포함되어 있고, ‘형상의 세계’에는 ‘형상’뿐만 아니라 ‘봄’과 ‘안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들리는가? 그러면 ‘소리’를 ‘듣고’, ‘아는’ 세계인 소리의 세계(聲界), 소리를 듣는 세계(耳界), 소리를 아는 세계(耳識界)에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 그러면 ‘냄새’를 ‘맡고’, ‘아는’ 세계인 냄새의 세계(香界), 냄새를 맡는 세계(鼻界), 냄새를 아는 세계(鼻識界)에 있는 것이다. 맛이 느껴지는가? 그러면 ‘맛’을 ‘맛보며’, ‘아는’ 세계인 맛의 세계(味界), 맛을 보는 세계(舌界), 맛을 아는 세계(舌識界)에 있는 것이다. 감촉이 느껴지는가? 그러면 ‘감촉’을 ‘느끼며’, ‘아는’ 세계인 감촉의 세계(觸界), 감촉을 느끼는 세계(身界), 감촉을 아는 세계(身識界)에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가? 그러면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세계인 의식의 대상인 세계(法界), 분별하는 세계(意界), 분별함을 아는 세계(意識界)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세계 개념은 단순하면서도 어리둥절하다. 부처님은 이 열여덟 개의 세계 말고는 다른 세계가 없다고 한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세계의 개념과는 참 다르지만 이보다 더 명쾌할 순 없다. 우주엔 형상(色)이나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분별의 대상(法) 말고 무엇이 더 있을 수 있나? 모든 것이 이 범위에 포함된다. 지구, 태양계, 은하계, 은하 중심 등등 아무리 멀리멀리 우주 끝까지 거리를 넓혀 살펴봐도 보인다는 건 모두 형상의 세계이다. 깊은 바다, 땅 속 등등 아무리 깊이깊이 살펴봐도 들리는 건 모두 소리의 세계에 속한다. 다만 각 중생의 보고 듣는 능력이 어느 범위냐에 따라 동물, 곤충, 인간 또는 다른 생명들이 보는 형상이나 소리가 다를 뿐.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카페에 앉아있는 걸 상상해보자. 친구의 모습, 카페의 멋진 인테리어, 창밖의 구름 등등이 얼마나 멋지든 보이는 것인 이상 ‘형상의 세계’에 속한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커피 향은 그 향이 어떻든 ‘냄새의 세계’, 친구의 목소리는 ‘소리의 세계’, 혀끝에 닿는 커피 맛은 ‘맛의 세계’, 뜨거운 촉감은 ‘감촉의 세계’, 친구와의 대화 중 떠올리는 수많은 생각은 ‘대상의 세계’인 것이다. 하나의 시공간에 열여덟 세계가 중첩되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컵, 새소리, 구름, 커피 향, 지나가는 개, 차 소리, 햇살, 부처님, 은하계… 무엇이든 떠올려보라. 이 열여덟 세계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열여덟 세계(18界)는 전 우주 삼라만상이 속한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