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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용 설명서] 글은 승리의 기록이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11-21 10:27
조회 : 67  




글은 승리의 기록이다




안 상 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니체의 글은 독특하다. 니체는 사상만이 아니라, 글쓰기의 스타일에서도 현대인들의 사유를 많이 흔들고 있다. 그는 현대인들의 삶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사유했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체로 남겼다. 철학자 니체가 강조한 것은 사유이지만, 그것은 그의 글쓰기와 분리될 수 없다. 이런 니체가 어느 날

 

어리석은 저자여도대체 너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더 훌륭하게 글을 쓰는 것은 동시에 더 훌륭하게 사색한다는 것을 의미(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책세상, 286)하고, 훌륭한 문체는 훌륭한 인간에 상응하는 것(니체, 『위의 책』, 287)이며, 문체를 개선하는 것은사상을 향상시키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니체, 『위의 책』, 309)라고 했다. 니체에게 글쓰기는 곧 사유였고, 그의 사상이자 인격이었다. 하여, 우리가 니체의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나의 사상과 인격을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이렇듯 니체에게 글은 삶이고, 곧 그 기록이다. 하지만 니체가 생각하는 글과 당시 작가들의 글은 그 방향과 내용에서 많이 달랐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승리를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전달되어야만 할 자기 자신에 대한 극복을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을 소화할 수 없을 경우에만나아가 그것이 이미 입에서 걸려버린 경우에만 글을 쓰는 소화불량증을 앓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독자에게조차 무의식중에 노여움을 품은 채 불쾌한 기분을 털어놓고 폭력을 쓰려 한다즉 그들 역시 승리를 원한다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승리를 원한다.(니체위의 책, 98)

‘승리의 기록!?’ 니체 당시의 작가들도, 예전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의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던 나는 늘 내 눈에 보이는 제도의 결함을 찾으려 했다. 그 결함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내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학문의 배경을 ‘사회학’으로 잡았다. 사회학적 안목이 내게 세상에 대한 예리한 눈을 갖게 해줄 것이고, 이 눈으로 세상의 결함을 찾아내려 했다. 세상의 결함이 찾아지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제도와 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하려 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은 기득권층들이 늘 하는 반대려니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관여한 일 중 하나가 ‘선행학습금지법’이다. 당시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니, 우리가 짜낸 가장 극단의 처방이 학교나 학원, 그리고 대학입시에서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의 적용을 엄격히 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고 경제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날 우리는 모두 쾌재를 불렀고, 언론의 관심과 주변에서 많은 칭찬과 후원을 받았다.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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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에도 우리가 기대했던 ‘사교육비 감소와 왜곡된 교육의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찾지 못했고, 그저 세상의 두꺼운 벽을 원망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당시 그 승리는 나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승리’였음을! 어쩌면 이 법은 세상을 시끄럽고 성가시게만 하고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언젠가 무의미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논란이 되는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법을 만들어봐야 미쳐 날뛰는 투기 자본이 가진 힘과 그 유동력을 막을 수 없다. 새롭다는 정책 또한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경험했듯이 세상을 성가시게만 하고 문제는 더 꼬이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하고 때론 승리했다는 증거를 이리저리 끌어모으지만, 지표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승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과 경제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마찬가지이다. 완전히 다른, 니체식으로 말하면 ‘가치의 전환’이 이루어진 접근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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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니체식으로 말하면 ‘가치의 전환’이 이루어진 접근법이 필요하다.

니체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승리의 기록이고, 나아가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니체 당시의 작가들, 그리고 과거의 내가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니체는 글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극복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어떤 글을 또 어떤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니체를 읽고 쓰는 활동을 통해 최근 나에게 ‘욕심’과 ‘욕망’을 다르게 보는 안목이 생겼다. 니체는 ‘욕망’을 긍정한 철학자이다. 하지만 이것은 욕심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는 욕심과 욕망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시대가 만들어낸 충동이라면, ‘욕망’은 인간 본성의 충동으로서 이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니체가 긍정한 것은 욕심이 아니라 욕망이다. 우리는 욕심을 욕망으로 착각하기 쉽고 그렇게 착각하면서 공부하고 살아온 경우들이 많다. 돌아보면 지난 시절 내가 했던 많은 노력들은 욕망과 욕심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활동이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과 직업, 문화 혹은 부동산과 같은 것들을 누구나 차별없이 누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최상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의 인식이 시대에 갇혀있었으니, 그 속에서 어떤 대안이 나오고 실천되어도 그것이 나의 앎과 삶을 근원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속에는 나의 ‘피’가, 나의 ‘혼’이, 나의 ‘넋’이 있을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 이런 것이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냉정한 자료만이 필요한 글이었고 활동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살지 않겠다는 것, 남을 짓밟으면서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 나의 공부와 글은 과거의 것과 다르다. 내가 니체를 읽고 쓴다는 것은 시대에 갇힌 욕심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나의 욕망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욕심과 달리 생명이 느끼는 삶의 의지이다. 욕심이 나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것이라면, 욕망은 나의 생명력을 고양시켜 기분을 좋게 하고 나를 명랑하고 활기차게 한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또 다른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고생스러운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욕망을 보고 그것을 내 일상의 삶으로 끌어내는 활동이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욕심이 나의 욕망이 아님을 알고 하나씩 버려가며, 그 자리를 나의 생생한 일상의 생명력으로 바꾸는 활동이 나의 공부이고 나의 글이다. 이것이 욕심을 채우는 일보다 더 힘들지언정 나는 기꺼이 이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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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꺼이 이 일을 해낸다.

건강한 생명으로 살아가겠다는 욕망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사람에게 ‘사교육’과 ‘본질이 왜곡된 교육’, ‘부동산 투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내 아이에게 선행 혹은 과잉교육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나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살리기는커녕 이들의 생명력을 희생한 대가로 시대가 만들어낸 허상을 좇아가는 꼴이 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대가로 얻는 사회적 욕심이 지금 우리의 교육이다. 반대로 시대에 갇힌 욕심이 아닌 생명이 가진 욕망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세상은 온통 공부거리이고,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찰 것이며, 글감은 넘쳐날 것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한 인간으로서 본연의 생명력을 발현하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자. 우리에게 이러한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의 정책들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이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생명을 얼마나 성가시게 하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생명력의 발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를 희생하여 얻는 대가가 투자의 성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 감이당을 이끌고 계신 곰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수유(너머) 시절,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런 공부와 글쓰기를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답은 간단했다. “본성대로 산 거지~!” 그러나 그 울림은 강렬했다. 선생님은 분명 자기 자신에 대한 극복의 표시로서 글을 쓰고 살아오셨다. 그 승리가 지금의 책과 감이당 공동체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나는 이제 막 그 길을 가고 있다. 이제 나도 내 본성이 이끄는 삶을 위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나로의 귀환’을 위한 공부와 글쓰기의 과정이다. 이제 알겠다. 니체가 왜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피로 써라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63)라고 말했는지를! 나는 이제 승리의 기록으로서의 글을 쓸 것이다. 그 승리는 과거 내가 했었던 논리나 자료에 한정된 작은 이성이 승리한 글이 아니다. 이제 그 승리는 나의 큰 이성(신체, 몸)으로 사유하고 변화하고 소통한 글이 될 것이다. 그래야 글과 함께 내 삶도 달라질 것이다. 이제 나의 글은 본성대로 살아간 삶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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