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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마음의 등불로 밝히는 변혁의 길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11-21 10:30
조회 : 79  




마음의 등불로 밝히는 변혁의 길

김희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택화혁 ䷰

革, 已日乃孚, 元亨, 利貞, 悔亡

혁괘는 날이 지나야 이에 믿게 되니 크게 형통하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로우니 후회가 없다.

初九, 鞏用黃牛之革.

초구효, 황소가죽을 써서 단단히 묶는다.

六二, 已日乃革之, 征吉, 无咎.

육이효, 날이 지나서야 이에 크게 바꿀 수 있으니, 그대로 해나가면 길하여 허물이 없다.

六三, 征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구삼효, 그대로 나아가면 흉하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고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을 품어야 하리라. 개혁해야 한다는 공론이 세 번 이루어지면 믿을 수 있다.

九四, 悔亡, 有孚, 改命吉.

구사효, 후회가 없으니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천명을 바꾸는 것이 길하리라.

九五, 大人虎變, 未占有孚.

구오효, 위대한 사람이 호랑이처럼 변화시키는 것이니, 점을 치지 않아도 믿음이 있다.

上六, 君子豹變, 小人革面, 征凶 居貞吉.

상육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고 소인은 얼굴만 바꾸니, 끝까지 나아가려고 하면 흉하고 올바름을 지키고 있으면 길하다.

 

나는 근래에 공부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감이당>에서 공부한 8년 동안 수시로 받았던 질문이 ‘왜 공부하는가?’이고, 나도 살림하랴 과제하랴 치일 때마다 ‘내가 과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했다. 처음 공부하러 왔을 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혁명적 기개로 열정이 가득했으나, 힘들 때마다 멈칫거리고 그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며 한 걸음씩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질문을 한다. ‘공부의 비전이 무엇이냐’고.

그럼 먼저 내게 공부가 무엇이었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게 공부는 ‘나를 바꾸는 변혁’이었다. 수동적 삶에서 능동적 삶으로, 노예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는 힘이 공부에 있다고 믿었다. 세상을 바꾼답시고 헛짓거리 하지 말고 먼저 나를 바꿔서 일상의 혁명을 이루고 나면 나는 좀 더 단단해지고 어지러운 사회 변화에 부화뇌동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게을렀고 무기력했으며 불만이 많았다.

일상 속에 ‘혁명’이란 단어를 가져오면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나로선 우주가 180도 바뀌는 일이었다. 대학 땐 농동아리활동, 졸업 후엔 생명평화운동을, 결혼 후엔 지역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나의 시선은 온통 밖으로 향해 있었다. ‘세상을 바꾸자!’ 이것이 나의 오랜 구호였다. 하지만 분노 뒤엔 항상 그만큼의 열패감이 따라온다. 모두가 부자 되기를 열망하는 세상에서 무기력한 신체로 표류하다가, 다시 대통령선거가 있던 겨울에 그만 절망했다. 그 때 가장 화가 났던 건, 내가 빠져 있는 어떤 이분법적 환상 속에서 분노와 좌절을 반복하고 있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었다. 이제 나를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못 살 것 같았다. 이렇게 공부의 장과의 접속은 일종의 회피이기도 했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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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가장 화가 났던 건, 내가 빠져 있는 어떤 이분법적 환상 속에서 분노와 좌절을 반복하고 있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었다.

다시금 비전을 묻는 지금, 초심을 되돌아보니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나는 다른 존재가 되었을까? 이번에 주역 글을 쓰면서 ‘택화혁’괘를 고른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혁괘는 변혁과 혁명의 도에 관한 괘이니, 나를 변혁하려는 공부가 지금 어디서 막혀 있는지 알려주지 않을까?

혁(革)은 연못 가운데 불이 있어 물과 불이 서로 다투는 상이다. 두 여자가 함께 살면서 서로 마음도 안 맞고, 누구 하나 자기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유하는데(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 그 다툼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고 해서 그냥 뛰쳐나가면 안 된다. 섣불리 움직이면 혁명이 아니라 반항이 될 뿐으로, 후회만 남기고 만다. 그래서 바꾸려는 뜻이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已日乃革之), 여론을 모아서 해야 하는 것(革言三就)이 변혁을 도모하는 자의 자세다.

그런데, 혁괘의 구사효로 가면 때가 무르익었으니 가차 없이 변혁을 하라고 한다. 상체와 하체가 서로 만나 다투고 있는 형세이니 이 접점이 변혁의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어 치열한 때다. 그 중에서도 4의 자리는 변혁의 임무를 맡은 자로서 이미 때가 되어 후회가 없으니, 믿음을 가지고서 명을 고쳐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悔亡, 有孚, 改命, 吉) 책임을 맡은 자이니 당연히 변혁의 뜻이 가슴 깊이 들어와 있어야 한다. ‘때가 되었다! 더 이상의 후회는 없으니 이제 나가자!’ 뒤돌아보지 않는 당당한 변혁의 주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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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비전에 대해 고민 한 것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공부 햇수가 늘어가면서 점점 뭔가를 맡게 되었다. 글쓰기 튜터를 하고, 강의도 하고, 반을 맡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과연 내가?’라며 스스로를 못미더워했다. 누군가에게 ‘선생님’이 되어 이끄는 것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4효의 자리에선 공부에 설레고 재밌어하며 졸졸 따라가는 게 아니라, 변혁을 실천하며 다른 이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구사효가 가지고 있는 미더움, 부(孚)이다. 바로 밑의 삼효만 해도 변혁의 여론이 분분해야 비로소 믿고 움직인다.(革言三就有孚) 그의 부(孚)는 아직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체로 넘어와서 4효의 자리가 되면 그 믿음(孚)은 그의 마음 한가운데에 쑥~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

상전에서는 ‘명을 바꿔 길함은 뜻을 믿기 때문이다(改命之吉 信志也, 주역 왕필주,p.381)라고 했다. 자신이 세운 뜻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등대처럼 나를 이끈다. 그러나 그 길을 계속 가다보면 그 뜻은 체화되어 바깥의 등대가 아닌 마음의 등불이 되어서 내딛는 걸음을 비춰줄 것이다. 공부하는데 비전을 세우라는 질책은 그 진실한 믿음(孚)이 아직 내 안에 있지 않고, 여전히 바깥의 목표나 바깥의 스승, 바깥의 텍스트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아직 스스로의 마음에 등불을 켜지 못한 사람을 ‘운명을 변혁했다’고(改命) 할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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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운명을 변혁하여 다른 존재가 된다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세상 모두가 그 뜻을 다 알 수가 있다. 5효의 ‘대인호변(大人虎變)’이 말하듯이, 그의 말과 행동, 표정과 음성까지 모든 변화가 호랑이 무늬가 드러나듯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토록 뚜렷이 변화를 보여주기에 점치지 않아도 미래를 알 수 있다(未占有孚)고 한다. 즉, 묻지 않아도 비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하며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게으름도 무기력도 벗어났고, 책을 읽고 글도 쓰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나 내가 정말 내 삶을 변혁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비전을 단순히 미래의 목표라고 생각하거나 성인과 스승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한, 아직 화학적 변화를 이룬 다른 존재는 되지 못한 것이다. 돌아보면 여태까지의 했던 활동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통일과 평화운동에 청춘을 바쳤다고 생각했지만, 혁언삼취(革言三就)에야 믿음이 생겨 앞의 선배들을 뒤따르는 데에서 그쳤다. 누군가의 믿음(孚) 보고 따라가기는 했으나 나는 누구에게도 그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고, 따라가던 대상이 사라지면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꽁무니에 섰다. 세상은 계속 바뀌었고, 활동의 양태도 바뀌었고, 외치던 구호도 바뀌었으나, 나의 한계만은 한 번도 넘어서 본 적이 없는 변혁운동을 했던 것이다.

주역의 혁괘는 천지가 뒤바뀌는 커다란 변혁을 말한다. 하늘의 대리자인 상제가 더 이상 하늘의 명을 받지 못한다고 여겨 그 상제(하늘)를 바꿔낼 정도의 정당성과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명(命)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다. 호랑이 거죽이 바뀌는 것처럼 그 뚜렷하고 아름다운 변화를 쉽게 얻을 순 없을 것이다. 변혁의 뜻이 내 마음에 들어와 스스로의 길을 비추고 있는가. 삶을 바꾸는 공부의 정말 중요한 문턱, 내가 지금 서 있는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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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계속 바뀌었고, 활동의 양태도 바뀌었고, 외치던 구호도 바뀌었으나, 나의 한계만은 한 번도 넘어서 본 적이 없는 변혁운동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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