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배에 관해 한 가지 더 말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배라는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유배라는 시간? 다소 모순 형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통 유배를 절해고도 혹은 깊은 산속 같은 공간의 차원에서 상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유배의 핵심은 오히려 시간 문제를 생각해보는 데에 있습니다.
예컨대 용장에서 지낸 양명의 유배생활은 채 2년이 되지 않습니다. 원인이 되었던 환관 유근의 전횡에 대한 비판 상소문 사건이 정덕 원년(서기 1506년) 일이고, 그로 인해 장형 40대를 맞고 만신창이가된 몸으로 좌천(유배)되어, 막상 용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덕 3년(1508) 초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정덕 4년(1509년)에 환관 유근이 주살되고 양명이 강서성(江西省) 여릉(盧陵) 지현(知縣)으로 임지가 바뀝니다. 이렇게 보면 그의 인생에서 이 시기는 아주 짧은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2년은 짧아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어떤 시간도 결코 짧지 않습니다. 지나기 전까지는 단 2초도 영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배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직 오지 않은(미-래) 시간들의 무대입니다. 이제까지의 일상이 내일도 여전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양명에게 용장은 이민족들의 오래된 부족 공동체에 섞여 살아가야하는 외부인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절, 양명이 석관(石棺)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잠들었다는 기록이 다시 보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관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런 사람에게 ‘내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내일이 아니라 매일. 저는 양명의 용장 생활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즉 유배는 공간의 문제 이전에 시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 있을 뿐입니다. 내일은 없다(알 수 없다)! 말하자면 그런 말이지만, 이 말을 꼭 비장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이 없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운명에 오로지할 뿐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없다 뜻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양명학의 출발 혹은 원점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이 이치(心卽理)다’ 즉 ‘심즉리’라는 양명의 깨달음은 이렇게 용장에서의 삶과 밀착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