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구효는 본래 지위의 소박함에 스스로 편안해하지 못하면 그 나아감이 탐욕스럽고 조급하여 경거망동하게 되고, 빈천함에서 벗어나려고만 할 뿐 세상을 위해서 어떤 일을 도모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에 나아갔더라도 교만하고 오만하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나아가면 허물이 있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4쇄(2020년), 263p)
자신의 본분에 편안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회장이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학생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왕초보 회장이라 학생회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공부를 하고 차근차근 나아가야 했다. 그렇지만 회장의 자리에만 신경을 썼다. 그저 감투에 심취해 있어, 그 자리만 좋았고,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즉 ‘회장이 되면 학생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겠다!’ 이런 게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회장이 되니 제대로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저 회장의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해 일하는 척만 했다. 학생회에 안건이 생기면 안건의 성격에 맞게 각 부서에 맡겼다. 맡기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안건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부서에서 잘 해주겠지~’ 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회장으로서 한 일은 그저 회의만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큰 일이 터져서 학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학생회장 이렇게 특별 위원회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학생들의 대표로 나온 자리였기에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지만 나의 의견은 없이 그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 갔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 학생회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친구들이 없었고 학생들도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일을 너무 못한다.’ ‘저게 무슨 학생회장이냐’ 등 많은 욕을 들었다. 처음에는 학생회장이라는 자리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욕이 끊이질 않으니 화가 났다.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 탓을 해버렸다. 학생들이 나를 믿지 못하고 따라오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나의 허물이었다. 학생들에게 욕먹을 짓을 한 것, 같은 학생회 친구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그리고 가장 큰 허물은 리더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 걷어 차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