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오랑 시에서 매주 700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그해 여름처럼 날씨의 변화에 민감했던 적이 없었다. 날이 더워지면 전염병이 더 기승을 부릴 거라는 생각에 잔뜩 겁을 먹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여름이 와버린 것이다. 불타는 하늘은 매일 쌓이는 100여 구의 시신 못지않게 시민들에게 공포를 자아냈다.
시내 곳곳에 외출을 금지하는 포고문이 나붙었다. 해변 출입도 차단되고 해수욕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더위와 페스트라는 이중고에 숨이 막혔다. 시민들은 혼란과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업무차 잠시 체류 중이던 사람들은 오랑을 탈출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갑자기 자기 집 창문을 열고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느닷없이 박하정제가 약방에서 삽시간에 동이 나기도 했다. 전염병 예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진 때문이다.
날은 점점 더워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공포감을 못 이긴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을 좇아 군중 속으로 몰려갔다. 정오가 되면 식당은 만원을 이루었다. 특히 고급 식당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고급술과 비싼 안주를 경쟁하듯이 주문했다. 저녁이면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끄러운 소리로 잡담을 해댔다.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쌍쌍의 남녀들은 술집에서 호텔에서 서로를 불태웠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이었다. 그 시간을 오래도록 늘여보려고 모두가 기를 썼다.
만약, 우리가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지 않다면? ‘그땐 의료 수준이 형편없어서 저렇게 공포에 떨고 있었구나. 절망감을 감당 못해 사치와 향락에 자신을 던져버렸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 몸부림치고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안도했을 테고.
그러나 현재, 세계는 한 마디로 공포와 광란의 아수라장이다. 3월 말,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 브루클린의 부둣가. 수십 대의 냉동 컨테이너가 줄지어 서 있다. 그 안에는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이 쌓여 있다. 컨테이너에 임시 영안실을 마련한 것이다. 4월 중순, 뉴욕의 사망자는 7천 명을 넘어섰다. 뉴욕 브롱크스의 하트섬, 길게 판 여러 개의 무덤에 2열 종대로 20구씩의 시신을 집단 매장했다. 3월 말,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르가모에서도 사망자가 폭증했다. 깜깜한 거리에 시신을 실은 군용트럭들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줄지어 가고 있는 기괴한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런 장면들은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