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청년들이 강요받고 있는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집’은 니체가 자신의 ‘생철학’을 위해 각을 세운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나, 있지도 않은 ‘이데아를 찾아 헤맨 이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니체는 자신의 사유를 위해 각을 세운 형이상학, 즉 당시 세상을 끌고 간 학문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니체와 같은 질문과 비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간이 찾아 헤맨 저 안락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길, 청년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얻고자 하는 저 세상에 어떤 삶이 있는지를 숙고해보자. 그런 세상이 없기도 하려니와 있다고 한들 이제 얻을 수도 없는 먼 신기루와 같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 이상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아파트 한 채이니, 우리가 꿈꾸는 이 세상은 현실적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없는 것이 맞다. 혹시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다. 그것은 니체 시절, 세상을 주도했던 사제들, 혹은 귀족 신분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사제들이나 귀족들에게조차 그들이 있다고 믿었던 ‘신’도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유일한 진리’도 사실은 없었다.
니체 당시 신에 대한 믿음을 놓으면 모두 망한다고 했다. 절대적인 이성을 믿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 이 믿음을 강요당했다. 훗날 이런 신과 이성을 비판한 사람들조차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대체물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대체물들은 현대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양한 물질과 지위 등, 아주 현실적인 것으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을 찾아 헤매다 지친 사람들은 세상이 허무하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우리 청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