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괴로움(苦)’이다. 부처님은 일체가 괴로움(一切皆苦)이라고 했다. 일체가 괴로움이라니. 세상엔 기쁜 일도 많고, 평안한 일도 많은데 어떻게 일체가 모두 괴로움인가. 인생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무엇을 그렇게 괴롭다고 하는가 하고 들여다보면, 먼저 태어나는 것(生)부터 괴롭단다. 태어남이 괴롭다는 것은 이해된다. 태어남으로 인해 각종 일들이 벌어지니 굳이 따지자면 태어남은 괴로움의 시작이다. 그다음 늙음(老), 병듦(病), 죽음(死)이 모두 괴로움이라 한다. 늙음, 병듦, 죽음이 괴로움이라는 것도 동의 된다.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늘 건강하고 생생한 삶을 살고 싶은데 몸은 늙어가고 병든다. 그리고 이 삶이 전부 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가 이 삶을 놓고 사라져야 한다. 생로병사를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육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육체는 그 자체로는 괴로우니 어쩌니를 알 수 없다. ‘괴롭다’라고 하려면 그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아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로병사가 괴로움이라는 것은 육체의 변화를 분별하여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앞의 네 가지 괴로움은 육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괴로움이라면, 이 육체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여러 행위에서 오는 괴로움도 있다. 먼저, 좋아하는데 헤어져야 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 반대로 싫은데도 만나야 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도 있다. 그리고 얻고자 하는데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 구부득고(求不得苦)도 있다. 인생에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구하고자하나 얻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만하면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행위를 괴로움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라는 괴로움을 얘기한다. 이로써 그 유명한 팔고(八苦)가 완성되는데, 오음성고에서 오음은 오온(五蘊)을 말한다. 오온은 ‘나(我)’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蘊)이다. 육체인 색(色)과, 정신인 수(受), 상(想), 행(行), 식(識). 그러니 오음성고는 인간의 육체 그 자체뿐만 아니라, 뭘 느끼든(受), 뭘 생각하든(想), 뭘 의도하든(行), 뭘 인식하든(識) 모두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헤어짐, 만남, 구함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여기다 오온, 즉 육체로 뭘 하든 정신적으로 뭘 하든 다~ 괴롭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도대체 붓다는 ‘인간은 괴롭다’는 것을 왜 이다지도 철저하게 알게 하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