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서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갑자기 물러나고 오랑 시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화장터의 불꽃은 신나게 타올랐다. 끊임없이 상승곡선을 그리던 페스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면서 좀체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폐장성 페스트가 만연했고, 환자들은 피를 토하며 더 빨리 죽어갔다. 현청을 제외한 공공장소는 모두 격리수용소로 바뀌었다. 기온이 내려가면 전염병이 수그러들 거라는 예측마저 빗나가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팬데믹의 늪에서 무기력해져가던 오랑 시민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 끝이 나기는 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의사회에서는 병이 더 이상 상승세를 보이지 않는 건 좋은 징조라며 낙관했다. 게다가 새로 만든 혈청이 효과를 나타낸 몇 건의 사례도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희망 섞인 전망을 하던 의사회장이 돌연 페스트로 사망하자 당국에서도 당황했고 다시 비관론으로 돌아섰다. 불안해진 시민들은 더 이상 교회에 자신들을 맡길 수가 없었다. 마스코트나 메달, 부적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옛날의 예언들에서 희망을 얻고자 애를 썼다. 인쇄업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옛날의 마술사나 가톨릭 성인들의 여러 가지 예언서들을 대량으로 찍어서 유통시켰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와 성 오딜이었다. 이들의 예언은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어 얼마든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페스트의 종식을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을 통해 멋진 미래를 약속받는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2020년, 세계의 코로나 상황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상승세를 눌러오던 우리나라 역시도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면서 확진자가 연일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병상 부족에 대비해서 야외에 컨테이너 1인 병상을 마련하고 있는 사진이며, 60대 확진자가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중 사망했다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이럴 때 아프거나 코로나에 걸리면 큰일이구나’ 하는 위기감이 순간적으로 스쳐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 모임도 취소하고 심지어는 부모님 제사에도 불참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에 내일(12월 23일)부터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가려는 걸까? 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마스크를 구입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방 속에 잠자고 있는 손소독제를 다시 챙기면서 백신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