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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클래식] 데카당 – 인생 별 거 없어, 즐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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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12-29 11:22 조회1,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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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당 – 인생 별 거 없어, 즐겨 (5)

2부 약자가 살아가는 법 - 3)

근영(남산강학원)

# 퇴폐적 쾌락, 자기파괴적 삶

그런데 여전히 이상하다. 여기까지 왔지만, 데카당스에 담긴 두 모습, 쇠락한 생명력과 퇴폐적 취향의 조합이 영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은가. 기력이 너무나 쇠해서 삶이 무가치할 정도라면, 조용히 쉬는 게 맞다. 그런데 데카당스는? 쉬기는커녕 향락을, 그것도 더 센 자극을 줄 수 있는 퇴폐적인 쾌락을 찾아 헤맨다.

‘인생 별 거 없어’와 ‘즐겨’라는 연결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무가치한 삶인데, 그래서 뭘 해도 허망하기만 한데, 왜 즐기는 것에는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일까. 어째서 감각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일만은 그 허망한 일에 들어가지 않는 걸까.

니체씨는 말한다. 병약한 생명력과 향락은 결코 모순적이지 않다고.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무슨 말일까. 니체에 따르면, 생명력은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생명력이 병약하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에 빠져드는 거다.

퇴폐적 취향은 생명력이 병약한 자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들은 생명력이 퇴화되었기 때문에 자기 생명에 진정 이로운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해로운 것에 끌리고, 해로운 것을 한다.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건강한 생명은 유익한 게 맛있는 반면 병약한 생명에게는 해로운 게 맛있다! 이것이 데카당스가 활력이 아닌 환락을 택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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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당스는 고통에 약하다. 작은 일도 깊은 상처가 된다. 흔히 말하는 유리멘탈, 니체식으로 말하면 약하디 약한 신경체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쓴다. 가뜩이나 약한 신경체계에 강한 자극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다. 상상해보라. 끊어질 듯 가느다란 전선에 강한 전력을 흐르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처럼 피해야 할 것을 도리어 원한다는 것, 자신을 해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이 쇠락했다는 증거다.

결국 병약한 생명력은 감각적 쾌락 속에서 얼마되지 않는 그 생명력을 불태운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자신에게 해로운 것 쪽으로 이끌리고, 그렇게 다시 생명력은 소진되고……쇠락한 생명력과 퇴폐적 취향은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하여 퇴폐적 쾌락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적 문란함이 아니다. 퇴폐적 쾌락은 그 자신을 끊임없이 다치게 하는 일이라는 것, 요컨대 자기파괴적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나는 인간의 타락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 치웠다. 내가 타락이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인간에 대한 도덕적 고발이 담겨 있지 않은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사실을 나는 거듭 강조하고 싶거니와―그 말은 도덕과는 무관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나는 타락을 데카당스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동물이든 종족이든 개체든 그것들이 자신의 본능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선호할 때 나는 그것을 타락했다고 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 크리스트』, 박찬국 역, 아카넷, 23쪽)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하는 퇴폐적 삶. 니체는 이를 결코 도덕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 삶이 타락했는가 아닌가의 여부는, 오직 생명의 차원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선택하고 선호”한다는 면에서, 그렇게 자기 파괴적 삶을 살아간다는 면에서, 퇴폐적 쾌락은 한 생명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죄, 타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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