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루피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기 눈앞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상대를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소리를 지르며 분노하는 것을 유식에서는 ‘분(忿)’이라고 한다. ‘분’은 분노를 의미하는데, 그냥 마음으로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입(口)과 몸(身) 등의 구체적인 신체 행위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분(忿)은 제6 의식의 마음작용(心所) 중 하나이다.
모든 식은 구체적인 마음작용(心所)과 함께 한다. 아뢰야식이든, 말나식이든, 의식이든, 전오식이든 식 자체(心王)만으론 그것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나뭇가지가 흔들리거나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바람이 있음을 아는 것처럼 식도 작용이 있어야 그것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제6 의식은 51가지의 마음작용과 함께한다. 즉, 아뢰야식으로부터 제6 의식이 현현할 땐 51가지 마음작용 중 어느 하나(또는 여럿)도 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오식은 아뢰야식의 분별의 종자에 연(緣)하여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할 수 있는 세계를 현현하고, 제6 의식은 그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象)’인지, ‘무엇’이라는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는 등 여러 마음작용으로 현현하는데, 이 마음작용이 51가지라는 것. 앞 사례의 경우, 루피가 싸놓은 똥오줌의 형상을 보는 것, 그 똥오줌의 냄새를 맡는 것, 똥오줌을 치울 때의 감촉, 개의 소리 등은 내 신체 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것으로 전오식의 작용이다. 전오식은 외부 대상과 만나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으로만 그것을 구분하여 인식한다. 전오식이 인식한 것을 바탕으로 ‘개의 똥오줌’, ‘똥냄새’, ‘더럽다’, ‘또 치워야 하네’, ‘저놈의 자식’, ‘다시는 못 하도록 버릇을 고쳐야지’하는 마음이 현현되는 것은 제6 의식의 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