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은 1472년에 태어나 58세의 일생을 살았는데, 이 기간 동안 명나라는 왕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양명이 관직에 올랐을 때의 황제는 10대 무종이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근이라는 환관의 꼬임에 빠져 사냥과 여색을 탐닉하느라 막상 국가 권력은 유근을 비롯한 환관세력이 휘둘러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다.
양명은 유근의 탄핵을 건의한 두 신하가 유배되자 이를 비판한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 상소문이 어찌나 조목조목 유근의 잘못을 짚었던지, 대노한 유근은 양명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도록 곤장 40대를 내려 친 것으로도 모자라 양명을 오랑캐들이 사는 머나먼 변방으로 유배 보내고 틈틈이 자객을 보내 양명을 죽이려 한다. 나라를 내팽개친 임금, 자신의 욕망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노회한 환관,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오랑캐들, 이치란 이치에는 조금도 닿아있는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공존을 강요받은 양명이 자기의 자리에서 정신줄 부여잡고 살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고민하며 알아낸 해답, 그것이 양명학의 요체이며, 이는 심즉리, 치양지, 격물치지로 요약된다.
양명학 이전은 주자학의 시대였는데, 왜 주자학은 양명에게 구원이 될 수 없었을까? 주자는 “각각의 사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가 있다”고 보아 이치를 먼저 익혀야 이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양명의 유배지였던 용장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이 굴 속에 기거하고, 벌레와 뱀이 우글거리는 데다 독초까지 무성하여 먹을 것도 구하기도 어려운 열악하고 생경한 곳이었다. 주자학에 따라 양명이 용장에서 이치대로 살기 위해서는 낯설기만 한 용장의 모든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다 깨쳐야 하는데, 그걸 언제 다 알게 되겠는가? 그래서 양명은 용장에서의 매 순간 ‘성인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화두로 삼았고, 섬광처럼, ‘나를 성인이게 하는 도리는 내 본성만으로 충분하다, 즉 내 마음이 곧 이치’임을 깨달았다.
양명은 우리 마음이 천리天理이므로 그 누구라도 이미 바른 앎良知을 가지고 본다. 이 양지는 심지어 오랑캐의 마음 속에도 있다. 누구에게나 양지가 있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앎을 실천으로 옮기며知行合一 자신의 양지를 집요하게 추구致良知하는 것이다. 양명이 오랑캐들을 법도가 없다고 천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대하며 이들과 잘 어울려 살아간 것이 지행합일이 바탕이 된 치양지의 좋은 예이다.
양명 사상에서의 실천의 중요성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해석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주자에게 物은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사물이지만, 양명에게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格) 사건들이다. 따라서 양명에게 격물치지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사건을 양지에 비추어 바라보고 바른 실천을 하는 것이며, 그는 본인의 파란만장한 삶 속 수많은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함으로써 격물치지를 시현하였다.
양명은 수백명이 강학을 위해 몰려드는 대학자였으나 엄연히 그의 직업은 공무원이어서, 나라에서 명이 떨어지면 여러 난을 평정해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죽여야만 했다. 이 모순된 상황에서 양명이 할 수 있는 격물치지는 무엇이었을까? 양명은 싸움은 최대한 피하고 모든 난亂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겨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한 후 합당하면 들어주었다. 인명살상은 우두머리 등 핵심인사로 최소화하고 전쟁이 끝나면 학교를 세워 배움이 지속되도록 하였다. 혹자는 양명이 아예 명을 받들지 않고 물러나 살육을 피했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양명이 고요하고 갈등없는 상황을 찾아갈 줄 몰라 안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양지를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격물치지를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