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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 ‘페스트’의 생로병사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1-01-29 12:56
조회 : 350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194x년, 알제리 오랑이라는 도시에 갑자기 원인모를 괴질이 돌았다. 기습적인 사건 앞에 당황한 정부와 의료진들은 병명을 밝히려 애를 썼다. 그 사이에 괴질은 쥐에서 사람으로 갈아탔고 드러나는 증세로 보나 연구 결과로 보나 중세를 초토화시킨 ‘페스트’임이 명백했다.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페스트와 함께 사계절을 겪어야 했다. 2020년을 꼬박 ‘코로나19’와 함께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병원체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이하 ‘사스코로나-2’)라는 게 밝혀졌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그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현재(2021.1.24.)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1억 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200만을 넘었지만, 지금 사태의 어느 국면을 통과하고 있는지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더욱 지루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병도 마찬가지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생로병사의 스텝을 밟는다. 그리고 이들의 생로병사의 리듬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페스트와 코로나19는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질병이다. 그러나 하고 많은 병들 중 ‘전염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니, 이쯤에서 ‘페스트’가 어떻게 시작되고 확산되었으며 정점에 오르고 소멸해갔는지 그 전모를 살펴보는 게 어느 정도는 유용할 듯하다. 거기서 드러난 경향성에 코로나19의 변화를 비추어 본다면 지금의 상황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페스티스’, 경계를 넘다

페스트는 원래 설치류들의 병이다. 페스트의 매개체는 설치류를 자연숙주로 삼아 살아가는 쥐벼룩이고, 이 벼룩이 ‘Y. 페스티스’(이하 ‘페스티스’)라는 세균을 설치류들에게 전파시킨다. 그런데 자연 숙주인 야생 설치류들은 이러한 균이 침범해도 대부분 무증상이거나 증상이 있더라도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다. 감염이 되더라도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서식지는 인간 사회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 페스트는 본래 인간과 무관한 질병이었다.

이러한 페스트가 사람에게 대규모로 발생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개발로 서식지 자체가 파괴되거나, 가뭄이나 홍수 등 환경 재앙이 닥쳐 식량난에 시달리거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감염된 설치류 중 일부가 인간의 정착지로 밀려나고, 이렇게 인간 사회로 흘러들어온 쥐벼룩들이 다시 여행객이나 상인들의 가방, 마차, 배에 올라타 다른 도시나 마을로 널리 퍼져야 한다. 마침 이 쥐벼룩은 숙주 없이도 6주까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쯤은 문제가 없다. 이런 경로로 페스티스균을 보유한 쥐벼룩들이 서식지를 떠나 지중해의 상업 도시 오랑으로 흘러들어 본의 아니게 페스트를 창궐한 것이다.

이런 경로로 페스티스균을 보유한 쥐벼룩들이 서식지를 떠나 지중해의 상업 도시 오랑으로 흘러들어 본의 아니게 페스트를 창궐한 것이다.

코로나19의 병원체인 ‘사스코로나-2’도 본래 박쥐를 자연 숙주로 삼아서 살아가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열대지방에서 서식하는 천산갑으로 옮겨오면서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천산갑은 중국에서 약재와 보양식으로 많이 소비되는 포유동물이다. 그 탓에 멸종위기에 처한 지금도 세계에서 밀매가 가장 성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에 의하면, 이 천산갑이 ‘사스코로나-2’의 중간숙주라고 한다. 실제 천산갑은 중국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었고, 인간과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천산갑에 기생하던 ‘사스코로나-2’가 사람으로 숙주 이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최초 발생지가 우한이었는지 파리였는지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적절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므로.

중요한 것은 페스티스든 사스코로나-2든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환경 변화로 서식지를 떠나 종간 경계를 넘어 인간에게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서식지에서 밀어낸 주범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랑’, 최적의 서식처

4월 28일에 랑스도크 통신이 약 8천 마리의 쥐를 수거했다는 뉴스를 발표하자 시중의 불안은 그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고 (…) 일부 사람들은 벌써부터 (…) 피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통신사는, 그 현상이 돌연 멎었고 (…) 죽은 쥐의 수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정오에 (…) 길의 저쪽 끝에서 수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팔다리를 뻗쳐 벌리고 허수아비처럼 어색한 자세로 힘겨워하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카뮈, 『페스트』, 책세상, 2017, 33쪽)

오랑 시에 흘러온 쥐벼룩은 아주 자연스럽게 오랑에서 이미 서식하고 있던 쥐들을 새 숙주로 삼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야생 쥐들과 달리 페스티스를 처음 접한 도시의 검은 쥐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살아있는 쥐들이 자취를 감추자 벼룩들은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섰다. 원래 이 쥐벼룩은 사람의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체에는 살아서 번식하라는 명령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사람의 몸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미셸 수위가 페스트에 걸려 죽고 이어서 호텔의 하녀를 비롯해 비슷한 증세의 환자들이 몇 나왔는데 대부분 치명적이었다.

오랑 시민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했다. 당국과 의료진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이 벼룩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당국에서는 시민들에게 청결과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 줄 것을 당부하고, 소독, 검사, 격리 등 구체적인 방역조치에 들어갔다. 파리에서 혈청을 공수해오고 새 혈청 제조에 착수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그러나 페스티스의 번식 속도를 따라가진 못했다.

페스트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간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쥐벼룩의 특이한 소화시스템도 그 중 하나다. 감염되지 않은 쥐벼룩의 소화과정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페스티스에 감염된 쥐벼룩은 그 균이 자신의 위장 앞에 진을 치고 있어서 먹은 피가 위장으로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밖에. 그때마다 소화되지 않은 채 위장 앞에 몰려있던 피가 세균과 함께 숙주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숙주를 감염시킨다.

게다가 오랑이라는 고장은 벼룩들이 살기에 꽤 괜찮은 곳이었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유럽과 왕래가 잦은 전형적인 상업도시여서 외곽은 물론 도심 역시 인구밀도가 높았다. 지중해에 면해 있어 화물을 실은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어둠침침한 화물칸은 쥐들이 숨어살기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파리의 신문사에서 특별 취재를 나올 만큼 아랍인들의 주거지는 쥐벼룩의 서식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위생 개념도 없었고 흙벽이 허술해서 쥐들에게 묻어서 언제든지 사람들에게로 옮겨갈 수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쥐들보다 더 바지런히 돌아다녔고, 그 밖의 일에는 무관심했다. 얼떨결에 쥐들과 함께 살던 곳에서 밀려난 쥐벼룩들로서는 뜻하지 않게 최적의 서식지를 얻은 셈이다.

‘코로나19’의 병원체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바이러스는 홀로 증식이 불가능하다. 숙주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야 번식을 할 수 있다. 손쉽게 세포 속으로 들어가려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을 장착하게 되었다. 이걸 이용해 숙주 세포에 찰싹 달라붙은 다음 숙주 세포가 가진 ‘단백질가위’를 활용해서 세포의 빗장을 열고 들어간다. 그때부터는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시스템들을 활용해 복제를 시작한다. 인간이 천지의 모든 걸 끌어다가 자본의 증식을 꾀하는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물론 바이러스의 생존 본능과 인간의 욕망은 차원이 다르지만 말이다).

사실 사스코로나-2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우연히 인간의 몸으로 옮겨 오고 보니, 어디에 이런 신세계가 있었나 싶을 지경이다. 몸이 아파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불원천리하고 달려가는 사람들,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마셔대는, 제어가 불가한 식욕, 그리고 접촉에 대한 갈증. 이것만으로도 비말전파가 생존법인 사스코로나-2에게는 황홀할 지경인데, 지구 반대편을 순식간에 오가는 탈것까지. 지구 구석구석을 이토록 자유롭고 빠르게 오갈 수 있던 때가 있었던가. 오늘날, 페스트가 창궐했던 오랑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오랑’이 바이러스에게 최적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멈출 수 없는 상승세

잠시 주춤하던 사망자 수가 30명으로 늘어나자 당국은 어쩔 수 없이 ‘페스트’를 선언하고 도시를 봉쇄했다. 차량 통행도 선박의 운항도 중지되었다. 그러나 이미 자리를 잡은 쥐벼룩과 페스티스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페스트 발생 3주 만에 302명이 사망했고, 5주차에는 321명, 6주차에는 34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파속도도 빨라지고 사망자도 빠르게 증가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일시적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6월말이 되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습도와 온도도 페스티스가 살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파리에서 보내온 혈청이 처음 것보다 효력이 덜한 듯싶었으며, 통계 숫자가 상승하고 있었다. (…) 멍울들은 대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계절이라도 만났는지 칼을 대도 잘 찢어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환자들은 몹시 견딜 수 없이 아파했다. 그 전날 밤부터, 그 병의 새로운 형을 보여주는 케이스가 둘이나 생겼다. 이제 페스트는 폐장성(肺臟性)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171쪽)

주간 사망자가 900명까지 치솟자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돈을 버는 데는 그렇게도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단시간에 의료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갔다. 물자도 부족했고 인력도 부족했다. 사방에서 구호물자와 인력이 도착했지만 겨우 큰 구멍을 메울 뿐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였다. 병에 대한 일반 상식도 페스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공포에 휩싸여 움츠러든 몸과 마음은 점차 저항력을 떨어뜨렸고 세균의 활동은 더 자유로워졌다. 임파선에서 충분히 세를 불린 페스티스는 온몸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폐에 들어간 페스티스는 기침과 재채기 구토를 이용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리유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서 뜻하지 않게 완치되는 케이스가 둘이나 나왔다. 그러나 그건 재수가 좋았던 경우이고, 아직 페스트는 물러갈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게 유리한 상황에서 이미 상승세에 들어섰기 때문에 멈출 이유도 없었고, 멈추려 한다고 멈추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다 그들의 생존 방식이 있고 그들대로의 리듬을 밟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주변의 변화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생명체들은 모두 다 이 법칙 안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그런데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 똑똑한 사람들만 이걸 모른다. 아이들이 태어나 엄마 젖을 먹고 어느 정도 성장의 토대가 마련되어 성장판이 열리기 시작하면 어떤 인위적인 힘이 그걸 막을 수가 있는가. 청소년들의 성장을, 봄이면 잎이 터지고 여름을 향해 쑥쑥 자라는 산천초목의 성장을 그 어떤 힘이 제압할 수 있을까.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다. 지난 일 년 동안 전 세계인이 목격한 바 그대로다. 전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이, 과학자들이 다 달려들어 바이러스에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도 이미 그들의 생을 시작했고, 주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물론 초반에 기미를 알아채고 강력한 힘을 투여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억제가 가능하겠지만, 그들도 그들의 길이 있다. 그리고 페스트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간들이란, 항시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다양한 욕망과 그로 인한 이해관계가 끼어들기 때문에 매번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의 40년 류머티즘 역사도 이런 무지와 오만의 여정이었다. 돌아보면 그 동안 겪은 불안과 갈등 고통, 특히 초창기 10년간 겪은 고통의 대부분은 이미 내 몸에 자리 잡은 류머티즘 인자도 그 나름대로 삶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랐기에(내가 그 동안 배운 지식의 범주에는 아예 그런 설정 자체가 없었다) 겪어야 했던 것들이다. 이미 승세를 잡은 류머티즘이 스스로 번-아웃될 때까지 관절에 최대한 피해를 덜 입히도록 관리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었겠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코로나19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치료제와 백신이 효과를 나타낼 때까지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대응책이라고 한다. 코로나19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 역시도 환자 스스로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의 도움을 주는 것, 그 이상의 대책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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