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자퇴하고 택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했을 때 그저 밀도가 높아진 운동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상상도 못 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바로 내 생활태도였다! 그중에 기억이 남는 것이 청소다.
어느 날 관장님이 내가 대충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다. 관장님은 평소에 나를 이름으로 부르시는데 그날은 ‘야’ 라고 나를 불렀다. 그것도 낮은 목소리로….! 전수관은 얼어붙고 밖에서 들리던 온갖 소리는 언제 났었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몇 초간의 침묵이 너무나 무겁고 두려웠다. 관장님이 입을 여셨다. ‘옛날에 무예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스승을 찾아가서 청소부터 시작했다. 청소, 빨래, 밥 등 이런 잡일들을 스승이 인정해 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그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제일 기본적인 일들을 열심히 할 수 있어야 다른 것들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관장님이 화내시는 것을 봤다.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은 평소에 운동할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관장님과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주역에 있는 몽괘가 떠오른다. 몽(蒙)은 ‘무지해서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괘의 모습은 멈춤을 뜻하는 산이 위에 있고 위험을 뜻하는 물이 아래에 있다. 위험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렇게만 보면 되게 흉한 괘인 것 같지만 주역에서 몽괘는 형통하다. 어리석은데 형통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어린이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계몽할 수 있는 이치가 잠재되어 있으니, 형통할 수 있는 뜻이 있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2020년, 145쪽) 어린이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세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즉 어린이의 어리석음이란 내 생각에 갇혀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러 공부를 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꼭 내 생각이 다 맞는 것은 아니구나’를 알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형통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스승님이다. 匪我求童蒙, 童蒙求我(내가 어린아이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나를 찾는 것이다.) 몽괘의 괘사 중 일부분이다. 괘사에서 말한 나(我)는 구이효를 말하고 어린아이는 육오효를 말한다. 육오효는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스승님을 찾아오는 자이고 구이효는 강중의 덕으로 어리석은 자들을 포용하고 깨우쳐 주는 자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자가 진심으로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스로 스승님을 찾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