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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지성 금강경을 만나다] 금강경, 어두운 마음에 빛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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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2-26 08:48 조회1,2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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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어두운 마음에 빛을 밝히다

이여민(감이당)

나는 작은 내과를 운영하며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의사다. 나는 평소 딸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영화도 같이 보는 돈독한 관계였다. 친하게 지내던 딸들이 20대에 접어들자 남자 친구가 생기고 전공 공부를 하느라 바빠졌다. 딸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독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인생에 너무나 소중한 딸들이지만 평생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도 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여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인문 의역학을 공부하는 감이당을 만났다.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곳이었다. 이과생인 내가 글을 쓸 수 있나 싶었지만 두 딸이 글쓰기를 도와주겠다며 공부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의사로서 병을 치료하러 오는 환자를 주로 만나면서 살다가 감이당에 와서 책을 매개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

그리고 나는 감이당과 만나기 전 10년 동안은 불교에 관한 책만 읽었었다. 왜냐하면 부처님처럼 깨달아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이당에 다니면서도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더니 감이당에 와서 토론을 하는 시간에 친구들이 나에게 불교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응? 왜 그런 말을 할까 당황스러웠다. 나는 불교가 모든 진리 중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나오는 개념인 ‘약자’와 ‘강자’를 해석할 때도 불교 용어인 깨달은 자, ‘아라한’을 예시로 들었다. 그때도 친구들은 지금 읽는 책에 불교라는 안경을 끼고 모든 것에 끼워 맞췄다고 엄청 타박을 했다. 이 이야기를 딸들에게 전했다. 내 편을 들어주면서 그 친구를 흉볼 줄 알았더니 웬걸, 의외로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평소에 엄마가 하는 불교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그리 말하면 무시하거나 귀담아듣지도 않더니 감이당에 다니면서는 엄마가 그런 말을 마음에 품기 시작하네요.”라면서 놀라워했다. 그 후 감이당에 다니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사실 나는 처음 불교를 만났을 때 학교 공부하듯이 했다. 성실히 공부하고 좋은 선생님까지 만나면 1등도 하고 의사, 박사가 되는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왔기 때문이다. 투자한 만큼 나온 결과물은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이런 습관대로 불교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족집게 과외처럼 나를 즉시 깨닫게 해 줄 스승도 찾아다녔다. 그러나 감이당에서의 공부는 달랐다. 감이당에서는 등수를 매기는 성적도 없고 수료증도 없다. 고전을 등불 삼아 도반들과 절차탁마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 모두가 공부였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께 주로 혼난다. 내가 가진 견고한 고정관념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 때문이다. 끊임없이 혼나지만 그 와중에 생각의 매듭이 조금씩 풀리면 즐거웠다. 친구들과 책 내용에 대해 토론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도반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도 알아야 했다. 나 혼자 좋은 성적을 위해 공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게다가 고전을 읽고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와 연결하여 무조건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진심 어린 혹독한 뭇매를 맞았다. 친구들의 말이 조금씩 더 잘 들리기 시작하고 도반들 또한 내 충고를 받아들여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로운 공부의 재미였다.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스스로 길을 찾아 한 걸음씩 나가면서 느끼는 기쁨을 동력 삼아 10년이나 감이당에 다니고 있다.

토론

과정이 매년 새롭게 변경되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고전을 가지고 1년 동안 꾸준히 공부하여 글을 쓰는 것이 미션이었다. 책 선정의 최종 결정은 담임이신 고미숙 선생님과 면담을 통해서였다. 고미숙 선생님은 내가 불교에 관심이 많고 명상도 꾸준히 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불경하실래요?”하고 물어보셨다. 이 말에 넙죽 “금강경 하겠습니다.” 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읽은 책이라 익숙한 것을 택하면 잘하겠지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힘들 때마다 두고두고 읽었던 책이 바로 금강경이기 때문이다. 고미숙 선생님께 대답하던 그 순간에 금강경과 처음 만났던 그때가 얼핏 스쳐갔다.

나는 금강경을 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인 이혼 과정에서 만났다. 재산을 둘러싼 형사와 민사 재판, 그리고 이혼 재판까지 너무나 답답하고 막막한 시기였다. 39세 이전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았던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놀랍고 두렵기만 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누군가 금강경 28독을 매일 하면 어려운 일도 쉽게 풀린다고 조언해 주었다. ‘금강경 독송회’라는 공부 모임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매일 28독을 하였다. 처음에는 28번을 반복하여 읽기에 급급해서 한자 원문의 글귀 내용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매일 읽다 보니 익숙해지고 속도도 생겨서 이전과 달리 28번을 반복해도 정해진 시간 안에 충분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 동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기에 저리 효험이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자 원문 밑에 한글로 풀이된 것을 보기 시작했다. 이때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한 구절이 번개처럼 내 가슴에 와서 박혔다.

‘선세죄업(先世罪業) 즉위소멸(卽爲消滅)’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더라도 다른 사람이 경멸하고 천시한다면 이 사람이 전생의 죄업으로 다음 세상에 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나 지금 사람들이 경멸하고 천시하는 까닭에 전생의 죄업이 없어지게 되어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금강경』정화스님 법공양 31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아무 생각 없이 새벽마다 읽은 금강경에서 만난 ‘선세죄업(先世罪業) 즉위소멸(卽爲消滅)’. 왜 하필 이 문장이 빛처럼 나에게 다가왔을까? 여섯 번의 재판을 겪으며 나는 억장이 무너졌었다.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친정이나 친구가 당연히 내 편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과 재판이 시작되자 모두가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보살펴야 할 두 아이들까지 있었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옴짝 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두 아이들이 세상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진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내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그리했나?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았던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덮쳐 왔다. 친정과 친구는 당연히 내 편이라 믿고 살았는데 그 믿음이 전복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선세죄업(先世罪業) 즉위소멸(卽爲消滅)’ 이 글귀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하는 질문에 답을 주었다. 나는 재판을 어느 생엔가 저지른 악업의 과보를 받는 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사건을 해석한 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억울함과 슬픔이 녹아들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재판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통과하는데 금강경의 이 구절은 큰 힘이 되었다.

재판

재판을 담담하게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나는 원하는 바가 성취되었다고 생각했고 어느새 금강경을 매일 독송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 감이당 공부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초기 불교 세미나가 열렸다. 이를 계기로 불교 경전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정토회 경전반 공부를 통해 금강경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듣고 일상에서 내가 화나는 이유가 ‘아상(我相)’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니 화가 날 때마다 ‘지금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지?’하고 자신을 조금씩 살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사소한 짜증이나 번뇌가 줄어들었다. 처음 금강경을 읽었을 때는 ‘선세죄업(先世罪業) 즉위소멸(卽爲消滅)’의 글귀를 이해하여 이혼 과정을 건너갈 수 있었고, 지금은 ‘아상(我相)’을 공부하여 성냄이 줄어드니 삶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렇게 금강경의 이치를 조금 알기만 해도 나에게 일어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금강경의 지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금강경(金剛經)은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금강’같은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깨트린다는 뜻이다. 번뇌를 지금 겪는 사람이라면 금강경을 당장 만나야 한다. 그 문제와 대면하여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당장 괴롭지 않은 사람이라도 금강경의 뜻을 마음에 새긴다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금강경 읽기’를.

부처님금강경(金剛經)은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금강’같은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깨트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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