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싯다르타가 선택한 것은 자이나교의 고행주의였다. 당시 자이나교에서는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되어 있는데 육체적 업이 정신을 구속하여 현실적 괴로움을 겪는다고 보았다. 자이나교는 업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업의 유입을 막고자 하는 수행 방법이 고행이었다. 싯다르타는 6년간 씻지도 않고 하루에 쌀 한 톨만 먹으며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지독한 고행을 하였다. ‘경전에 보면 싯다르타는 오랜 고행으로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땅에 꼬꾸라졌다고 한다.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과거 어떤 수행자도 흉내 내지 못할 가장 지독하고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싯다르타는 깨닫지 못했다.
이때 그는 12세 농경제에서 농부, 소, 벌레들의 괴로움을 보고 일체중생을 구제하고자 잠부나무 밑에서 한 명상이 생각났다. 싯다르타는 고행이나 선정이 목적이 되어버린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이때 천신들이 나타나 음식을 공양하고 옷을 드리고자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한다.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중생의 삶과 유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고행으로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고자 수자타라는 여인이 공양한 우유죽을 먹는다. 그리고 분소의(시체를 쌓은 옷)를 입고 길상이라 불리는 풀로 방석을 만들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든다. 이렇게 하여 싯다르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도(中道)와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닫게 된다. 그의 나이 3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