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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내 안의 찌꺼기를 쏟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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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4-01 10:54 조회1,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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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찌꺼기를 쏟아내자
송형진(감이당)

火風 鼎  ䷱

鼎, 元吉, 亨.

정괘는 크게 형통하다.

初六鼎顚趾利出否得妾以其子无咎.

초육효솥의 발이 뒤집어졌으나 나쁜 것을 쏟아내니 이롭다(초육)을 얻어서 그 사람(구사)을 도우니 허물이 없다.

九二, 鼎有實, 我仇 有疾, 不我能卽, 吉.

구이효, 솥에 꽉 찬 음식이 있지만, 나의 상대(초육)에게 병이 있으니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 길하리라.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 虧悔 終吉.

구삼효, 솥귀가 바뀌어서 구삼이 나아가는 것이 막히고 기름진 꿩고기(군주의 은택)을 먹지 못한다. 그러나 비가 내리게 되면 구삼이 부족함을 뉘우친 것이니 결국 길하게 된다.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구사효, 솥의 다리가 부러져서 군주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구사의 얼굴이 붉어지고 흉하다.

六五, 鼎黃耳 金鉉, 利貞.

육오효, 솥의 누런 귀에 쇠로 만든 고리 장식이 달렸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상구효, 솥의 옥으로 된 고리이니, 크게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왜 그럴듯한 남성들조차 번번이 여성을 존중하는 것에 실패하는가?” 어느 젊은 여성 정치인이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나는 이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 그녀가 던진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있었던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평가와 지지를 받던 이들이 벌였던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서 들었던 나의 의문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질문은 상대방을, 특히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누구든지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유사한 일들이 우리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으로,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아는 그럴듯한 남성이라고 자신을 생각한다면 더욱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과정과 그런 과정에서의 각성을 통해 크게 변하지 않고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계속 그럴듯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변혁하는 것은 가마솥만 한 것이 없다[革物者莫若鼎]”고 서괘전에서 말하고 있는데, 마치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처럼 획기적인 인식과 가치의 전환이 필요해 보이는 시절이다.

주역 64괘에서 가마솥을 뜻하는 괘가 있다. 그것은 택화혁(澤火革, ䷰) 다음에 오는 화풍정(火風鼎, ䷱)이다. 정(鼎)은 솥의 모습을 취한 것인데, 그냥 솥이 아니다. 변혁의 가마솥이다. 괘의 상은 나무 위에 불이 있는 모습[木上有火]이다. 이는 나무에 불을 붙이고, 그 불로 가마솥을 펄펄 끓여 삶아서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가마솥의 용도를 “사물을 변혁시키는 데 있으니, 날 것을 변화시켜 익힌 것으로 만들고 딱딱한 것을 변화시켜 부드러운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주역」, 정이천, 990쪽, 글항아리>고 풀고 있다. 가마솥에 날 것을 넣어 푹 삶으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잘 익은 음식이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가마솥의 정괘가 가지는 의미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창조, 이 새로움의 출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잡괘전에서도 “혁(革)은 오래된 것을 버리는 것이고, 정(鼎)은 새것을 취하는 것이다[革去故也, 鼎取新也]”라고 했다. 그러니까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끊어내고, 변화하는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 그리고 그에 걸맞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정괘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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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괘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말로 하면, 가마솥의 음식을 잘 만들어 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튼튼하고 안정된 가마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좋은 땔감, 신선한 재료, 깨끗한 물이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면 불을 잘 지펴서 푹 삶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가마솥에 찌꺼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가마솥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정괘의 초육효이다. “솥의 발이 뒤집혀서[鼎顚趾]” 당장 쓸 수 없는 상태이지만, 솥이 뒤집혔기 때문에 솥 안에 남아있던 “나쁜 것들(찌꺼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 이롭다[利出否]”는 것이다. 솥 안의 찌꺼기들이 있는 상태에서 불을 지펴 푹 삶아낸 음식은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음식이라고 불리기도 어려운 것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마솥을 사용하기 전에 그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수요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깨끗해진 가마솥을 ‘적절한 사람을 얻는다’는 뜻으로 “첩을 얻는 것[得妾]”으로 비유를 했고, 그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것을 “그 집의 자식(혹은 그 집의 주인)을 돕는 것[以其子]”으로 풀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괘의 시절을 “허물없이[无咎]” 살아갈 수 있다고 초육효는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초육효 가르침의 핵심은 새로운 정괘의 시절을 허물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덕지덕지 붙은 과거의 찌꺼기를 쏟아내 버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솥을 뒤집는 것처럼 나를 뒤집는 일부터 해야 할 듯하다.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찌꺼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려는 ‘그래왔잖아’라는 관성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선 그녀의 질문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면,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남녀 차별적인 인식과 가치에서 벗어나려는 일이지 않을까. 그럴듯한 남성들이 번번이 여성 존중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를 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인식과 가치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중년 남성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집안에서 자랐다. 남성인 아버지는 가장이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고, 여성인 어머니는 그 하위주체로서 집안 살림을 맡았다. 집안의 대소사는 주로 아버지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그러한 가부장적인 구조에서는 남녀의 차별은 당연시되었다. 그렇게 당연시되는 차별에 대해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받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랐다. 또한, 그러한 구조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어떠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쩌면 여성은 남성에게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남성의 하위주체로 여기는 생각에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chain-690088_640아무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려는 ‘그래왔잖아’라는 관성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솥을 일부러라도 뒤집어 찌꺼기를 쏟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뒤집어 쏟아내려는 의식과 의지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매 순간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일이 필요할 듯하다. 어떤 질문과 함께 말이다. 그 여성 정치인이 했던 질문처럼 나의 의식과 행동 근저에 깔린 것들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 질문의 힘은 기존 가치와 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신체를,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남성 중심적 문화에 절어있는 감각과 의식을,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을 그런 찌꺼기를 느끼게 하고 그래서 쏟아내 버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변혁의 가마솥인 정괘의 시절을, 남녀 차별 없이 서로 조화롭고 화합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시절을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 아닌 적절한 사람으로 허물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초육효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매순간의 행동에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존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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