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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거친 양(陽)들과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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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4-16 22:52 조회1,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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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양(陽)들과 함께 사는 법  

김희진(감이당)

雷天大壯(뇌천대장)  ䷡

大壯, 利貞.

대장괘는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초구효, 발에서 장성한 것이니 나아가면 흉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九二, 貞吉.

구이효, 올바름을 굳게 지켜 길하다.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 羸其角.

구삼효, 소인이라면 강한 힘을 쓰고 군자라면 상대를 무시한다. 그 상태를 고수하면 위태로우니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아서 그 뿔이 다치는 것이다.

九四, 貞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구사효,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 울타리가 터져 열려서 뿔이 다치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살이 강한 것이다.

六五, 喪羊于易, 无悔.

육오효, 양들을 온화하게 대하여 힘을 잃게 하면 후회가 없다.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상육효,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아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이로운 것이 없으니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

나는 두 아들과 남편과 살고 있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괄괄해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워낙 괄괄했던지라 아이들 때문에 성격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집에선 내 목소리가 제일 크고, 내가 모든 걸 결정하고 통제한다. 밥 먹는 것, 여행, 애들 교육과 집에서의 규칙 정하기까지. 가족들과는 상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론은 항상 내가 내렸다. 화초키우기에 관련된 것 빼고는 남편의 의견도 무시한다. 아이들은 종종 왜 뭐든 엄마 맘대로 하느냐고 불평을 했고, ‘독재자’라고까지 부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내가 나서지 않으면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것이 불만이어서, 걸핏하면 화를 내며 집안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힘이 있다고 아무데서나 힘자랑을 하는 사람은 소인배다. 특히 남들이 안 보는 닫힌 공간에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함부로 대하는건 비겁한 소인배다. 이렇게 뻗치는 힘을 아무렇게나 쓰는 소인이 대장(大壯)괘에 등장한다. 뻗쳐나가는 양(陽)의 힘찬 기세를 상징하는 대장괘에서 삼효의 소인은 숫양(羊)이 울타리를 치받아 뿔이 상해버리는 것처럼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 여기선 군자조차 자기 힘에 도취해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울타리에 머리 박으며 씩씩대고 있는 숫양을 상상하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씁쓸하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의 관계와 역할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이 몸집이 커지고 사춘기에 접어들더니 내게 덤벼들면서 관계가 역전됐다. 어느 날, 새벽까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이에게서 폰을 뺏으려다가 육탄전이 벌어졌다. 이젠 힘으로 될 일도 아닌데 흥분한 나머지 쿵쾅거리며 소란을 피웠더니 남편이 자다 깨서는 밖으로 나가 감나무 가지를 꺾어왔다. 이 올드한 방법이라니…! 남편의 눈빛에선 뭔가 오래 기다려온 ‘올 것이 왔다’의 결의가 느껴졌고 내가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을 부를까? 속절없이 방문 바깥에서 매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집안의 숫양이 아니며 우르르 몰려오는 거친 양기들의 기세 앞에 어쩔 도리 없는, 무력한 음효라는 걸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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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천대장은 밑에서부터 자라난 양효가 이제 괘의 절반을 넘어서서 그 기세를 꺾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강성해진 상황이다. 괘상을 보면 하늘(乾) 위에서 우레(震)가 치고 있는 형상이니 그야말로 강함으로 진동하는 양기들의 분기탱천! 하지만 힘이란 절제되지 않으면 강경하고 사나운 행위만 될 뿐이니, 강한 힘으로 자라날 때, 또는 그런 힘을 마주한 국면에서 어떻게 그 바름을 지켜갈 것인지가 대장괘의 관건이다.

대장괘에서 육오효는 강하게 진동하며 몰려오는 숫양의 무리를 딱 마주한 음효다. 숫양같은 양효들은 이제 울타리조차 터지고 바퀴살은 튼튼해서 멈춤 없이 달릴 일만 있다고 기세 좋게 몰려오는 중이다. 육오는 미약한 음효로서 양(陽)의 무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역은 뭐든 조심하고 신중하라고 하니, 일단 납작 엎드려 이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릴까? 사실 육오는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기세를 그의 지위만으로도 눌러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딜 감히!’같은 말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지위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강성한 힘으로 덮쳐오는 세력을 높은 자리와 권위로 막고자 한다면 강대강의 전선이 형성된다. 저항심만 더욱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고 힘없고 음유한 오효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

육오는 전략적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육오는 맞서 싸우거나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이(和易)의 방법으로 그들의 힘을 빼는 전략을 취한다. ‘양들을 온화하게 대하여 힘을 잃게 하면 후회가 없다(喪羊于易 无悔)’라는 효사가 바로 무탈하게 이 국면을 대처하는 육오의 지혜다. 상(喪)은 양의 힘을 잃게 한다는 뜻이고, 이(易)는 ‘온화하고 평정한 태도’를 말한다. 정이천은 易를 화이(和易)로 풀었다. 거세게 몰려오는 양의 무리를 어떻게 온화하고 평정하게 대한다는 것인가? 음효만이 할 수 있는 화이란 무엇일까?

han-mengqi--ZpViqKssAQ-unsplash양의 힘을 잃게 한다는 뜻이고, 이(易)는 ‘온화하고 평정한 태도’를 말한다.

이(易)는 역(易)으로 ‘바꾸다’라는 의미가 있다. 바꾸는 것만으로 상대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대결의 구도 자체를 무화시키는 것으로,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닌 평화와 공감의 언어다. 그래서 공감이라는 평화의 언어가 가진 힘은 성난 숫양떼의 기세도 능히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화(和) 역시 쌀이 입에 들어간다는 평화의 글자이니, 육오의 전략을 변주하면 화이지도(和易之道)란 도란도란 밥 먹으며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밥상이야말로 각자 빠져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잠시 놔두고 빈 몸으로 모여 앉는 곳이 아닌가. 밥상에 베개나 컴퓨터나 책을 달고 올 수는 없다. 한 번 불러서 오지 않는다고 간신히 밥상 앞에 앉은 애한테 짜증만 냈지, 나는 함께 모인 이 짧은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집에서 차려먹는 밥상에선 종종 내가 빠진다.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3step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먹는 과정을 속성으로 처리하고, 식구들이 한참 먹고 있을 때 벌써 부엌에서 조리도구부터 치우기 시작한다. 밥 주고 용돈 주는 엄마로 관리자의 권위만 내세우다보니 서로 천천히 마음을 나누는 건 어색하다. 밥 먹는 시간을 아낄 정도니 다른 건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양들이 거세게 성장하며 매일매일이 좌충우돌인 상황에서 이젠 남편까지도 한 술 더 떠 반항심 가득한 아이들을 기세등등한 양기로 누르려 하고 있다. 이 양기들의 치솟는 기운에 힘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약한 힘(陰)으로도 이들을 식탁으로 불러내 화이의 식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자 육오만이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나는 밥상에서 끈기있게 대화를 시도하면 되는 것일까?

etienne-boulanger-erCPgyXNlto-unsplash끈기있게 대화를 시도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전략은 흉내낼 수 있어도 그 공감의 마음까지 실천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밥상은 그저 표면적인 형식일 뿐, 누군가를 온화하고 평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몸에 익히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대장괘의 대상전에서는 군자가 이 괘를 본받아 ‘예가 아니면 실천하지 않는다(非禮弗履)’고 하였다. 힘이 왕성한 시기에 군자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태도가 왜 ‘예’일까? 힘은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남을 다치게 하고 자신도 다치는 흉기가 된다. 그래서 정이천은 이 예가 바로 ‘극기복례’이며 대장괘의 국면에서 군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태도는 대장괘의 모든 효에도 적용된다. 양효가 자신의 거친 양기를 다스리는 데에도 극기복례가 필요하지만, 음효가 자신의 강점인 온화함과 공감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도 극기복례가 필요하다. 대장이라는 시대의 분기탱천에 휩쓸리지 않고, 존위라는 위치를 권위로 이용하지 않으려면 자기 안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소인의 습관을 다스려야 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도 권위를 내세우고 맘대로 하려는 내 안의 힘부터 먼저 다스리지 않으면 바깥의 거친 양기를 어찌 상대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온가족이 한 공간에서 복닥거리던 작년 한 해 300배 절 수행을 했었다. 마루에서 들려오는 (게임하며 하는) 욕설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아이는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감사기도를 하며 팍 엎어질 때, 나는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릴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절 수행은 마루로 뛰쳐나가려는 내 몸을 붙잡아주고, 아이를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게 했다. 성질을 죽이고, 끈기를 기르고, 상대를 받아들일 마음의 품을 넓히는 건 체질을 바꾸듯 매일매일 자기수양의 ‘극기(克己)’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럴 때만이 역지사지 하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즐거운 화이의 식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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