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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마음을 쉴 때 알 수 있는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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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6-10 09:06 조회1,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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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쉴 때 알 수 있는 것들 (1)
장현숙(감이당)

명상(冥想)을 시작하다

유식의 이론은 유가사(瑜伽師)들이 명상 중 체험한 깊은 선정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한 것이다. 유가사는 ‘요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요가는 ‘어떤 대상에 마음을 맨다’는 뜻으로, 정신을 한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 작용을 통제하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유식을 얘기할 때 명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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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명상과 인연을 맺은 건 30년 전쯤이다. 길을 길다가 “도를 아십니까?”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가자는 곳으로 아무 의심 없이 저항도 없이 갔다. 서울 군자동의 어느 허름한 주택에 들어서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은 죽은 조상을 위한 제(祭祀)를 지냈다. 주말저녁이라 집에 안가도 된다며 같이 잠을 자고, 다음날엔 그들의 본부라는 곳도 다녀왔다. 그러곤 끝…이 아니라, 거의 석 달 가량을 아침, 저녁으로 집과 직장을 찾아오며 자기네 단체에 오라고 갖은 회유를 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100일이 지나면 상황은 변하는 법. 온갖 회유에도 꼼짝을 안하니 나중엔 그 단체에서 나가떨어졌다.

도를 아는 그 단체(^^;)와의 인연이 끝나면서 나의 명상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만나게 된 ‘000’이라는 단체에서 배운 만트라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 도를 아는 단체에서 들었던 만트라가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만트라는 신비하고 영적인 능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 신성한 말(眞言)을 큰 소리로 또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외우는 명상법이다. 불교에서도 ‘옴 마니 반메 훔’이라든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같은 진언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외우는 명상법이 있다.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는 염불수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내가 간 단체에서는 다른 진언을 외웠다. 뜻 모르는 진언이지만, 소리 내어 외우는 명상법이라서 그런지 처음 하는 명상임에도 지겹지 않았다. 주말이면 철야명상을 하고, 평일에도 매일 조금씩 명상을 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명상 중 이런저런 체험도 많이 했다. 명상 내내 만트라를 같이 따라 외는 높은 음의 소리를 듣는다든가, 입천장으로 단침이 흘러내린다든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향기를 맡는다든가, 몸의 경락을 따라 흐르는 뜨거운 에너지(氣)의 느낌들이라든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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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체와의 인연은 여러 사정으로 끝이 났지만, 나의 명상 생활은 그 후에도 계속 되었다. 만트라 위주로 하던 명상은 호흡과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명상법으로 바뀌었다. 비록 하다 말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마음을 매어놓는 이유

명상이 뭔지 그리고 왜 하는지를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계속 했다. 명상을 하면 생각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진다는데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지. 생각이란 것은 정말이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사라졌다. 방금 봤던 tv 드라마, 내일 계획한 일, 뜬금없는 어릴 적 기억 등 맥락도 질서도 없었다. 소리(만트라)에 마음을 매어놓는다(집중한다)는 단순한 미션을 단 1분, 아니 단 몇 초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마음은 너무나 바빴다. 그런데 마음은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헤매고 있는 것이었을까? “연구에 따르면 우리 마음이 헤매는 곳은 대개 과거 아니면 미래라고 한다. 과거라면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곰곰이 생각하거나 오래 전이지만 기억에 강하게 남은 일을 떠올린다. 미래라면 예정된 사건을 염려하거나 기대에 한껏 부푼 채로 기다린다.”(로버트 라이트, 『불교는 왜 진실인가』 마음친구,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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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되새겨서 미래를 대비하는 뇌의 작용은 현생인류가 다른 수많은 동물들 틈에서 살아남아 최고의 포식자가 되고, 지금의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능력이다. 뇌는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한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우리 마음은 그렇게 과거에서 미래, 미래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마음이 오간다는 건 생각이 오간다는 것이고, 생각은 명언(名言)(언어)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명언을 사용하여 과거에서 미래, 미래에서 과거로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언에는 감정(욕망)이 함께 한다. 명언은, 오온(五蘊)의 정신작용(受想行識)에 있어서, 어떤 대상을 ‘그것’이라고 알아보는 상(想)의 작용과 함께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 보편화하는 행(行)의 작용과 연관이 있다. 그러니 이름 지어진 모든 것(명언)에는 좋고 싫음의 느낌(受)이 담겨 있고, 이 느낌은 명언과 함께 감정(생각)으로 드러난다. 어떤 말이든 말 자체만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엄마’라는 말을 할 때, ‘어떤’ 엄마를 떠올리지 않고도 ‘엄마’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나? 어떤 말을 떠올려도 거기에는 그 말을 떠올리는 사람의 감정도 함께 올라온다. 그러니 명언을 사용하여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때마다 감정도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마음이 아프고 불안한 것은, 명언과 함께 감정도 같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명상 시 만트라든 호흡이든 감각이든 그 무엇에 마음을 집중하는 이유는, 명언에 의해 과거에서 미래, 미래에서 과거로 끊임없이 오가는 생각과 함께하는 감정의 파도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마음의 평안함을 느낀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과거에 대한 기억, 미래에 대한 계획과 함께하던 감정이 멈추어진 그 자리에서 청정한 평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은 원래 이렇게 평안했음을, 원래는 불안하지 않았음을 언뜻 알아차리게 된다.

sean-IhzjEUjw3E0-unsplash명상 시 만트라든 호흡이든 감각이든 그 무엇에 마음을 집중하는 이유는, 명언에 의해 과거에서 미래, 미래에서 과거로 끊임없이 오가는 생각과 함께하는 감정의 파도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집중할 때 생기는 현상들

명상을 하다보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영상(映像)이 보인다든가(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든가(耳), 미묘한 향 내음이 나거나(鼻), 입천장에서 달달한 침이 목구멍을 관통하여 몸으로 흐른다든가(舌), 몸 이곳저곳 또는 몸 전체에서 열감(熱感), 냉감(冷感) 또는 희감(喜感) 등 여러 감각(身)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평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과는 다른 것들이어서 곧잘 마음이 빼앗기기 쉽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왜 생기는 걸까?

과거에 대한 회상, 미래에 대한 계획은 탐(貪)과 진(瞋)의 마음 작용(앞서 ‘감정’이라고 표현했다)을 일으키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의 작용을 ‘유루(有漏)’라고 한다. 새는 것(漏)이 있다(有)는 것. 탐과 진 같은 번뇌가 생기는 것을 ‘새는 것이 있다’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는 평소 우리의 마음은 늘 번뇌가 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번뇌만 새는 것이 아니다. 번뇌가 샐 때 몸의 에너지도 함께 샌다. 번뇌에는 반드시 몸의 에너지 누수현상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를 『동의보감』에서는 ‘칠정(七情)은 우리의 정(精)을 고갈시켜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할 에너지가 감정에 의해 소모되어 결국 병을 일으킨다는 것. 사실 우리는 늘 이 상태로 살아간다. 번뇌도 새고(漏) 몸의 에너지도 새는(漏). 루루의 상태. 그런데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매어놓게(집중) 되면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밖으로 누수 되던 에너지가 더 이상 누수 되지 않고 안으로 모이는 것이다.

hassan-ouajbir-WtlmnZ-mqtk-unsplash탐과 진 같은 번뇌가 생기는 것을 ‘새는 것이 있다’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매어놓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볼 수 있다. 이를 ‘지켜보기’라고 한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생각을 감정과 떨어뜨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과 떨어뜨려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유식에서는 생각은 마음의 변계소집성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변계소집성은 마음의 세 가지 상태(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 중 하나인데, 두루 분별해서 ‘이것이다’라고 붙잡는 마음이다. ‘봄’이라는 둘 아닌 현상을 ‘보는 자’(見分)와 ‘보이는 대상’(相分)으로 이분(二取)하는 것은 변계소집성의 작용이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정신작용은 마음의 변계소집성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매어놓으면 이 이분(二取)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다’기 보다는 이분되기 전(?)의 상태에 ‘초점’이 맞춰진다.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봄 그 자체. ‘봄 그 자체’는 ‘보는 자’를 ‘보는’ 상태이다. 이를 유식에서는 ‘자증분(自證分)’이라고 한다. 마음이 마음을 비추어 스스로(自)를 증명(證)하고 있는 상태. 이럴 때, 생각은 일어나지만 감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감정도 일어나지만 감정조차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볼 수 있다. 이럴 때의 감정은 새는 것(漏)이 아니다. 감정은 일어나나 번뇌는 없다. 즉 무루(無漏)이다.

번뇌가 새지 않으면 몸의 에너지도 새지 않는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외에 몸도 건강해진다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집중의 힘이 더 커지면, 새지 않은 에너지는 몸 안에 있는 미세한 기맥(氣脈)들을 열게 되는데, 앞서 언급한 명상 중 특이한 현상들은 이러한 기맥들이 열릴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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