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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글 고치기의 어려움, 영원한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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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6-13 18:57 조회1,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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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치기의 어려움, 영원한 미완성
김희진(감이당)

火水未濟 (화수미제) ䷿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괘는 형통하다. 어린 여우가 과감하게 강물을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울 것이 없다.

初六, 濡其尾, 吝.

초육효, 꼬리를 적셨으니 부끄럽다.

九二, 曳其輪, 貞吉.

구이효, 수레바퀴를 뒤로 잡아끌 듯이 하면 올바르게 해서 길하다.

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

육삼효, 미제의 때에 나아가면 흉하지만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구사효,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지니, 강한 힘을 써서 귀방을 정벌하면 3년 만에야 큰 나라에서 상을 받는다.

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육오효, 올바르게 행해서 길하여 후회가 없으니, 군자의 빛이 진실한 믿음이 있어 길하다.

上九有孚于飮酒无咎濡其首有孚失是.

상구효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지만머리까지 젖으면 믿음에 있어 마땅함을 잃으리라.

올해 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홍루몽 리라이팅의 출판 때문이었는데, 수정을 좀 거치면 출판할 만 하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황송한 마음에 약속한 기일까지 수정을 마치겠노라 다짐하고 벅찬 마음으로 연구실로 돌아왔다. 예쓰! 이럴수가! 감이당에서 글쓰기를 배운지 9년차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3년 동안이나 홍루몽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혼나고 찔찔 짜며 몇 번이나 포기할 뻔 했던 과정을 지켜본 도반들이다. 그런데 아직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출판이라도 된 양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작년 4학기의 에세이를 마지막 발표로, 계획한 목차대로 글을 다 써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완성된 초고가 있고, 그 초고를 읽은 출판사에서 제안한 것이니 거진 다 된 것이나 다름없게 여겨졌다. 주역의 문법으로 말하자면 큰 강은 건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수정을 하려고 원고를 다시 꺼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 글인데도 남의 글 같고 헤어진 옛날 애인을 만난 듯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지금 내 생각대로 손을 대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그건 완공 불가능의 큰 공사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은 삼 년 동안이나 차곡차곡 쌓여온 글로, 여행기는 2018년에, 남주인공에 대한 글은 2019년에, 여성인물들과 가문에 대한 이야기는 2020년에 쓴 것이다. 그 시간동안 나의 생각도 바뀌었고,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된 글들이 많았다. 이걸 어쩐단 말인가! 나는 큰 강을 건넌 줄 알았는데, 지금 다시 큰 강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멈춰선 꼴이다. 나는 마치 섣불리 건너려다가 꼬리를 적시고 되돌아와서 고민하는 ‘미제(未濟)’괘의 여우 처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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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건곤으로 시작한 상경과 함(咸), 항(恒)으로 시작하는 하경으로 우주의 창조와 순환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원활한 순환 가운데 있게 되는 완성이 63번째의 수화기제(水火旣濟)괘에서 이뤄진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 위치해서 수승화강의 운동성, 즉 음양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여섯 효가 모두 정위(正位)를 이뤘다. 그러나 주역에선 64번째에 ‘아직 끝나지 않음’이라는 괘를 두어 기제괘에서 정위를 이룬 모든 효를 뒤바꿔서 이 효들 전부를 다시 자기 위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물은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밑으로 가라앉았고, 불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마치 63단계를 힘들게 거쳐온 ‘기제’의 완성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든 것처럼 얄밉기 그지없는 주역의 마무리가 아닌가!

그러나 정이천에 따르면 미제괘의 뜻은 ‘살리고 또 살리려는 뜻(生生之義)’(정이천주, 『주역』, 글항아리, p.1227)이라고 한다. 완성된 걸 무너뜨리는 도로아미타불이 아니라, 살리는 거라고? 그럼 완성이란 것이 생명력을 잃었다는 뜻이란 말인가? 사실 기제괘는 조화로운 순환의 완성을 나타내는 상(象)과 달리 괘의 내용(辭)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고, 가리개를 잃어버리거나 배에 물이 새는 둥 대부분의 효들이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괘의 뜻은 ‘끝’을 얘기하고 있으니 뭔가 아직 수습할 일이 많이 남은 ‘끝’인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의 홍루몽 초고도 아름다운 완성은 아니었다.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고 쓰는 걸 게을리 하지도 않았으나, 내 글이 견고한 틀을 깨지 못한다는 지적은 내내 계속됐다. 나는 홍루몽에게 누만 끼칠 뿐인 글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지성의 고전평론가반 1년 과정은 자기만의 텍스트가 있고 자신의 스케줄대로 읽고 쓰는 것이라서 내 텍스트가 없으면 수업이 없어지는 꼴이다. 나는 어쨌든 마무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적받은 걸 고쳐서 다시 발표하는 걸 그만두고, 목차에 남은 나머지 글을 모두 써나가기 시작했다. 4학기엔 내 순서마다 새 글을 써서 발표하고 학기말 과제 땐 마지막 남은 두 편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물론 졸속이었다. 나는 그렇게 홍루몽을 ‘끝’낼 작정으로 달려갔고, 헤어졌던 것이다.

yung-chang-qAShc5SV83M-unsplash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고, 가리개를 잃어버리거나 배에 물이 새는 둥 대부분의 효들이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다.

미제괘의 상전(象傳)은 말한다. 제 자리를 잃은 이 효들, 아니 글들을 ‘신중하게 분별하여 제 위치에 자리하게(愼辨物居方)’ 하라고.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은 제 위치가 아니요, 각 효들 역시도 자리가 바르지 못하다. 나는 바야흐로 3년 동안 조각조각 써서 중복되고 동떨어진 글들을 다시 신중하게 고쳐서 바르게 위치시켜야 한다. 졸속으로 마무리 하고 노트북 속에 영원히 묻힐 뻔한 원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어린 여우가 어떻게 해야 이 어려움을 건너갈 수 있는가이다. 그 때 안 된 것이 지금 쉽게 될 리가 없다. 나는 이미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한 해의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진 상태라서 수정작업은 계획보다 자꾸만 뒤로 밀린다. 무엇보다 원고를 보고 있자면 암담하기 짝이 없어 이 중차대하고 기쁜 기회가 날아가 버릴까봐 불안하다.

이렇게 똥줄 타는 심정으로 미제의 때를 보내며 각 효를 살펴보니, 여섯 효 중 上九의 처신이 단연 눈에 띈다. 그는 이 불안정한 때에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건넜는가?! 아니다. 상구는 미제의 끝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강을 건너지 못했다. 그는 ‘미완성의 극한’이라 이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384효의 맨 끝이건만, ‘극한에 이르렀다고 저절로 해결될 이치는 없다’며 어떤 희망도 비춰주지 않으니, 정말이지 암담한 상황이다. 그래서 상구는 글 고치기를 포기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상구의 ‘머리까지 젖으면 마땅함을 잃는다(濡其首, 有孚失是)’의 의미다. 꼭지가 돌도록 마시는 사람은 분명 이런 술주정을 할 것이다. ‘난 역시 안 돼. 될 대로 되라지’. 미제는 결국 미제로 끝나는 것인가?

abbie-bernet-y8OPPvo_5mU-unsplash‘난 역시 안 돼. 될 대로 되라지’. 미제는 결국 미제로 끝나는 것인가?

상구효가 제시하는 이 시기의 올바른 이치는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게 마시라는 것이다. 취함이 없는 술은 술이 아니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지극한 진실과 정성으로 마땅한 의리와 천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즐거워(정의천 주, 『주역』, p.1239)하는 마음의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강을 못 건너고 있는 처지에 어떻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전제를 바꾸면 문제가 사라진다. 강을 건너지 못한 것이 이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글을 완벽하게 고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 환상을 쫓는 한 나는 계속해서 발만 동동 구르다 분하고 조급하여 자신감을 상실하여 곤궁해질’ 뿐이라는 것을.

글을 고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편의 글이 완성이 된다는 건, 그냥 어느 순간 ‘여기까지만 하자’라며 고치기를 그만 두거나, 발표 날까지 쥐고 있다가 시간의 야속함을 탓하며 출력을 할 뿐, 완전무결하게 완성되어서가 아니다. 자기 글은 언제나 부족하고 보고 또 봐도 고칠 곳은 계속 나온다. 남이 보면 더 많이 나온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나오는 것을 고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영 아닌데도 감히 손대지 못할 때는 머리를 싸쥐고 ‘어떡하지’만 되뇌인다. 하지만 글을 보며 자꾸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족함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 것이다. 그 족함은 어느 정도일까? 언제쯤일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미제괘의 상육효가 마주한 이 대천은 건너겠다고 마음먹으면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이다.

글쓰기로 수련한다는 것은 글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자, ‘진실과 정성으로’ 그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다. 모든 글에는 홍루몽을 읽어가던 당시의 나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글들이 자기의 바로미터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글쓰기를 수행삼아 해나가다 보면 내일의 나는 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갖는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미완성인 글들과 거기 비친 미완성의 내 모습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제야 미제괘의 뜻을 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은 뭔가 미진하고 부족한 것 같지만, 그렇게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낳고 낳으며 살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aziz-acharki-U3C79SeHa7k-unsplash그렇게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낳고 낳으며 살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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