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효를 꼼꼼히 살펴보자 이효와 육사효를 보면 초효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육이효는 음의 자리에 음이 왔고 하괘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있고 초효와 가까운 자리에 있어서 초효의 덕에 감화되어 회복하는 자리이다. 사효는 초효와 호응하는 자리다. 그래서 아래, 위로 음(소인)들에 쌓여 있지만, 초효의 도를 따라 혼자서 회복할 수 있다. 즉 이효와 사효는 초효라는 타인과 접속해 감화되어 회복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삼효는 초효와 멀리 있고, 음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회복의 의지도 없고 그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효와 사효가 회복하니 군중심리(?)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따라서 회복하는 자리인 것이다.
내가 딱 이 꼴이다. 공부는 타인과 접속해야만 꾸준히 할 수 있다. 타인과 같이 공부하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혼자서 하는 공부가 아니기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진다. 나는 지금까지 같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 정도면 같이 공부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마음가짐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한다고 해도 타인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타인의 생각을 ‘내 공부’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접속은커녕 나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지루해진다. 그러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딴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공부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깐 분위기 상 ‘여기에 있으려면 얼른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주변 환경에 맞춰 다시 공부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요즘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것은 혼자서 하는 공부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삼효에게 허물이 없다고 한다. 이런 태도가 허물이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빈복은 아무리 길이 엇나가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려고 애를 쓴다. 의지가 약해서 자꾸 어긋나거나 실수하지만 돌아오려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자리다. 계속 돌아오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조금씩이라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구하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가려 할 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긋났다가 돌아오고, 다른 길로 샜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빈복의 포인트는 포기, 의지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돌아오려고 애쓰면서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꾸준히 밀고 나아가는 힘에 있다!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공부를 해 볼까?’ 했던 그 미약한 초심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빈복의 힘이다. 그래서 빈복은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빈복의 중요한 점은 몇 번이고 돌아올 힘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