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얘기는 얼마 남지 않은 직장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최근에 직장을 다니던 지인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그만두고 있는 상황이고, 직장에서 나이로 치면 서열이 두 번째라고 하면서 “언제 잘려도 이상할 게 없다”라는 그의 얘기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등에 관한 얘기를 더 나누다 헤어졌다. 얼떨결에 시작했던 직장 생활이 어느덧 퇴직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에 상념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적당한 때에 스스로 그만두어야 하나? 그만두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주역 64괘 각각의 괘・효사는 ‘때에 맞춰서 처신을 잘하라’라는 가르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시중(時中)의 도(道)’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時]라는 것과 유독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괘가 있는데, 바로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64괘를 순서와 관계없이 각각의 괘가 가지는 뜻을 함축해서 표현하고 있는 잡괘전(雜卦傳)에서 “대축은 때이다[大畜 時也]”라고 풀고 있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왜 ‘때’가 되는 것일까? 괘상을 보면, 아래에는 하늘[天]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묵직한 산(山)을 상징하고 그친다[止]는 뜻을 가진 간(艮)괘가 위에서 누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축적된 바가 지극히 큰 모습”(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540쪽)이라고 한다. 산이 하늘을 멈추게 했고, 멈춰야 모이고 그래야 쌓을 수 있으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보통 ‘쌓는다’라고 하면 자본의 증식, 부의 축적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잡괘전에서 ‘대축을 때’라 한 것은 그러한 관념과는 결이 다른 것을 느끼게 한다. 이 부분을 왕부지는 “간괘가 때를 기다렸다가 나아가게 하니, 건괘는 시세에 순응하여 역량을 기르고 있다”(왕부지, 『주역내전6』, 학고방, 1962쪽)라고 풀고 있다. 다시 말하면, 크게 쌓는 것은 때를 얻기 위함인 것이고, 쌓은 것 없이 때를 기다리면 때를 얻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괘사를 통해 이 의미를 더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