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신을 실체라고 이해한다. 실체란 존재하는 데 있어서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해에 따르면 신은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말이다. 맞다 우리가 자연(自然)이라고 쓰는 말의 뜻이 스스로 그러함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누가 명령하거나 조정하는 게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은 누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러한 거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그 자체로 그러한 것. 그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고 실체다. 스피노자의 신은 스스로 존재하며 어떤 것에 의존하거나 기대지 않는다. 신과 자연이 구별되지 않는다.
신이 자연이라니 신은 신이고, 자연은 자연 아닌가? 자연 위에 신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연이 신이라니 그럼 나는 그동안 어디에 기도를 한 것일까? 자연이 신이라면 자연과 나는 무슨 관계일까? 스피노자는 자연을 2가지 측면으로 나눈다.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이다. 능산적(能産) 자연이란 생산하는 자연을 말한다. 생산하는 자연이란 스스로 존재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원리 즉 신으로서의 자연이다. 자연을 원인으로 해서 사계절의 순환과 낮과 밤이 생겨난다. 소산적(所産) 자연이란 생산되는 자연이다. 자연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소산적 자연은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자연은 생산하는 측면과 생산되는 측면 이 두 가지가 다 있다. 그래서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은 분리되지 않는다. 신은 만물을 생산하고 생산되는 것들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만물이 없다면 신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신과 분리 불가능하다. 내가 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다. 신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생산해 내는 과정 자체로 늘 존재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끊임없는 생산이라고 하면 쉬지 않고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이나, 공장이 연중무휴로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것, 돈이 계속 불어나는 것처럼 소유가 늘어나는 것이 었다. 자연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연은 단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같은 날, 같은 공기, 같은 태양, 같은 날씨인 적이 없다. 이것이 우주를 무한한 생성으로 이끈다. 이것이 ‘새로움’이다. 매일매일 새롭다는 것은 이런 끊임없는 능산적인 생성을 말한다. 신성함이란 이런 생성의 이치일 것이다. 나는 신과 분리 불가능하니 나에게도 신성함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