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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자기 해체’로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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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9-27 21:13 조회8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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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해체'로서의 사랑
김희진(감이당)

어떤 문화적 차이와 장벽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자, 만고불변의 정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남녀의 사랑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사람이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것처럼 번식본능의 생리적 현상이 아닌가. 하지만 동물적 시각에서 본다면야 암수의 감응일 뿐이지만, 인간은 그 감응에 특유의 상상력과 기억력으로 ‘사랑’이라는 허구의 드라마를 덮어씌운다. 그래서 어떤 사회의 관습과 도덕은 바로 남과 여의 관계에서 가장 첨예한 차이를 드러낸다. 어찌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똑같이 있는 행위인데, 모든 사회마다 각 공동체만의 고유한 정서를 반영하여 각종 사랑의 문법을 만들어내니 말이다. 오늘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여러 재밌는 사랑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왕의 여인의 사랑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는 샤리아 왕은 자기 부인이 자기를 배신했기 때문에 엄청 화가 나서 왕국의 모든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하루하루 처형이 미뤄지는 것일 뿐, 아직 그 복수가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하자. 그런데 세헤라자드는 대담하게도 왕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준다. 그 중 <아불하산 알리 이븐 베카르와 칼리프 하룬알라시드의 총비 솀셀니하르 이야기>와 <사랑의 노예 가넴 이야기>는 모두 칼리프 하룬알라시드의 총비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에 모두 등장하는 하룬알라시드는 실제 압바스 왕조의 다섯 번째 칼리프다. ‘칼리프’라는 직위는 이슬람의 교리 안에서 제국을 다스리는 가장 높은 지위로, 정치와 종교의 통일된 지도자다. 무함마드 사후의 칼리파들은 초기엔 종교적으로 독실하기 이를 데 없는 영적 지도자들이었으나, 나중에는 종교적 독실함이 약하거나 방탕해졌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칼리프가 자신들을 이교도로부터 보호만 해준다면 칼리프의 지위를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하룬 알라시드가 너~무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제국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로서 그다지 흠이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복잡한 문제는 그 여인들이 자기의 운명의 짝을 칼리프가 아닌 남자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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솀셀니하르의 경우는 시장에 갔다가 남자를 만났고, ‘폭풍’이라는 이름의 총비는 본처왕비의 질투를 받아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는데, 한 남자가 우연히 구해주면서 만나게 됐다. 이들은 두 눈으로 여인을 본 순간부터 사랑의 격동이 일어나 상사병을 앓는다. 왕의 여인이라서가 아니라, 천일야화에서는 모든 남자들은 여인을 한 번 보면 그냥 푹 빠진다. 흘낏 보기만 해도 영혼이 털린다. 한 번 보고 상사병 걸리는 건 두 총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들에게 사랑은 마치 ‘병’처럼 와서 삶을 온통 흔들어놓고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든다.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된다.

선생의 눈에도 저 어여쁜 여인이 보이시오? 그녀가 바로 내 모든 병의 근원이라오! 하지만 나는 이 병을 축복할 테요! 이것이 얼마나 혹독하고 또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병을 계속 축복하겠소. 그녀를 보는 순간, 난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음을 느꼈소. 동요하는 내 영혼은 이성을 거스르며 움직이고 있소. 심지어는 나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려 하고 있소! 오, 내 영혼아! 그렇다면 떠나가거라! 내가 이를 허용함은 이 연약한 육체나마 부지하기 위함이다…… 지금 난 여기 와서 완전히 파멸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소.(『천일야화』 3권, 744쪽)

사랑은 병이자 삶의 파괴자로서의 거센 폭풍을 몰고 온다. 그래서 <가넴 이야기>에선 여성의 이름이 폭풍이다. 남자들은 사랑을 통해 파멸을 경험한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치 모험의 통과의례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서 있는 기반이 없어지는 경험이다. 자기 비움!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는 영혼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수반되므로 이들은 상사병 때문에 죽기까지 하니, 자기 파괴에까지 이른다.

여인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 두 이야기에서 여인들은 모두 ‘총비(寵妃)’라 불리는데, 칼리프의 어마어마한 재력과 사랑이 그녀들 신상에 쏟아진다. 화려한 궁전과 정원을 따로 갖고 있고, 몸에는 걷기에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들의 행복이고 자랑이었으나,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제는 그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녀들의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확인시켜주는 굴레가 된다.

camila-quintero-franco-3dsipPp3sq4-unsplash이 모든 것들이 그녀들의 행복이고 자랑이었으나,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제는 그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랑, 종교가 되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천일야화』속의 아랍 민중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혹은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이런 격정적인 사랑을 함께 슬퍼하고 칭송한다는 것이다. <솀셀니하르의 이야기>에서는 지독한 상사병의 아픔 속에서 남녀 모두가 서로를 부르며 죽고 말았는데, 그들을 위해 메신저 역할을 했던 사람들과 백성들은 그들을 함께 묻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둘의 묘당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이 무덤은 바그다드 주민뿐 아니라 이슬람교도가 존재하는 전 세계 모든 지역 이방인들의 숭배를 받고 있으며기도를 드리러 찾아오는 참배객의 발길도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이들이 신격화된 것이다!

<사랑의 노예 가넴 이야기>에서는 가넴이 총비를 보호하여 몇 달간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질투에 사로잡힌 칼리프 때문에, 총비는 탑에 갇히고 가넴은 집이 부숴지고 도망자가 되었다. 다른 도시에 사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형벌을 받고서 맨 몸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자기 뿐 아니라 가족까지도 모든 걸 잃게 만드는 역경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칼리프가 가넴을 용서하고 자신의 총비를 그에게 주어 맺어주는 해피엔딩이다. 음, 그런데 이 정도의 해피엔딩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칼리프는 온갖 고난과 모욕을 견뎌온 가넴의 여동생을 새 왕비로 맞았다. 또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넴의 어머니를 재상에게 엮어주고서야 비로소 이 짝 맺기 이벤트가 끝이 난다. 모두가 짝을 맺는 사랑의 완결로서의 대단원이다.

두 가지 사랑 이야기는 주인공이 칼리프의 여인이기 때문에 그 고난이 더 크게 그려져 있다. 상사병으로 죽고, 모든 재산을 잃고, 추방당하며, 가족이 조리돌림까지 당하니 ‘한 순간’에 그들을 사로잡은 격정의 대가가 너무 크다. 그런데 이야기는 결말에서 그들의 아픔을 모두 보상해준다. 죽은 뒤에나마 결합된 후 신격화 되거나, 어긋났던 사랑이 완벽히 제대로 맺어짐으로써 소원풀이를 하는 것이다. 왤까? 왜 이 사랑들이 온 백성과 이방인들의 성지가 되고 칭송될 정도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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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천일야화』의 모든 사랑이 갖고 있는 ‘자기를 던진다’는 특징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 뿐 아니라 『천일야화』의 다른 수많은 사랑 이야기도 첫 눈에 반하고 상사병의 아픔을 겪는 공식을 따른다. 어떤 경우엔 맥락도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바람에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냥 먼 발치에서 한 번 본다거나 심지어 상대에 대해 듣기만 하고도 사랑의 열병에 몸부림친다. 하지만 ‘사랑’은 본래가 허구의 감정이다.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를 만들어내어 충성과 사랑을 바쳤던 것처럼 말이다. 『천일야화』의 특징은 그 허구의 감정들의 폭풍으로부터 매우 긍정적이며 종교적인 결과를 도출해낸다는 데 있다.

이야기 속에서 사랑의 역할은 우주의 균형과 질서가 무너지고 엄청난 에너지가 응집되는 대 사건이다. 사랑에 빠진 인물들은 마치 번개를 맞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다. 이 불균형은 마치 두 사람의 몸을 통과해서 우주를 교란시키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도 이 위험한 에너지에 함께 쓸려간다. 이때 이야기의 포인트는 이들이 절대 정신을 차리면 안 된다! 자기를 버려야 하고, 잃는 걸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이븐 타헤르 선생! 선생은 이 몸을 그토록 뜨겁게 사랑해주는 솀셀니하르 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녀는 나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데 그래, 선생은 내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작자가 되기를 바라는 거요? 그럴 수는 없소! 어떤 불행이 닥친다 해도 나는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솀셀니하르를 사랑할 것이오.(3권, 781쪽)

칼리프의 진노를 피하고 피폐한 건강도 돌보라며, 이쯤에서 끝내라는 친구의 충고에 사랑에 빠진 남자가 항의한 말이다. 결국 그들에게 사랑이란 불가항력적인 힘에 저항하지 않고 끌려갈 수 있는 힘이자 믿음이다. 끌려가는데도 힘이 필요하다. 복종도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기가 산산이 쪼개진대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신념이자 종교로까지 격상된다. 솀셀니하르 커플의 사랑과 죽음은 위대하고 숭고하다.

무슬림들은 의무와 순종으로 영성에 깊이 다가간다. 종교가 정치와 경제와 일상생활 모두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태도 역시도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연결 되는 것 같다. 혼돈의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다시 질서가 회복된다. 불가능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다. 죽어서라도, 아니면 살아남아서! 우주의 균형이 깨지고 만들어지고 깨지고 또 다시 건설되는 이슬람 세계의 리듬은 바로 이런 ‘사랑’을 통해 진행되고 있음을 천일야화의 사랑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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