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건 거창한 나의 꿈, 혹은 삶의 목표에 관한 말이 아니다. 정말 일상적인 삶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사실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별생각 밥을 먹고, 무기력하게 학교에 가고 그냥 통상적인 사회 모습이 공부하니까 공부를 했다. 내가 그 속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을 좋아했나보다. 엄마, 아빠, 언니, 선배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 호칭들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해 보였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빠는 자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돌봐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고, 언니, 선배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손아랫사람이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호칭과 거리가 멀었다. 가족 내에서 누군가의 손윗사람이 되어본 적 없으며 후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관계가 있어야만 불리는 호칭이 아닌 고유명밖에 없었고 성다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나는 늘 내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 세상에서 대체 왜 존재하나 싶은 생각까지 뻗어나가 우울해지기도 쉬웠던 것 같다. 다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나에게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 등장하는 이름에 관한 서술은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야생의 사고』는 토테미즘, 열대의 원주민들이 관계 맺는 법에 관한 책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관계의 요소는 다양하지만 나는 7장 종으로서의 개체를 통해 ‘명명’,‘고유명’,‘관계명’ 등 원주민들의 이름과 호칭에 관해 이야기 해 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름’이라는 요소가 원주민들과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이 ‘이름’이라는 공통된 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비교, 분석하기 편하고 내 삶에서 예시를 찾기도 쉽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7장의 ‘고유명’과 ‘관계명’을 통해 그들은 어떤 관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명명’을 통해서 그 어떻게 관계를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렇게 원주민들의 방법을 살펴본 후 이를 통해 알게 된 내용으로 내 삶을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