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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방탕한 자에게 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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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10-03 22:06 조회7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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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한 자에게 복을!
김희진(감이당)

오늘 우리가 살펴볼 천일야화의 주제는 ‘돈’이다. 소아시아(터키)와 퍼타일 크레슨트(비옥한 초승달지역)뿐 아니라 동쪽의 ‘00스탄’ 지역들은 실크로드의 길목이었고, 어떤 문명보다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기에 그들에게 ‘돈’은 ‘밥’만큼 가까운 삶의 일부다. 아, 누구에게나 그렇다고? 맞다. 그래서 돈 얘기가 많은 천일야화에 아주 흥미진진하게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돈은 우리에게도 중요한데, 우리의 옛 이야기엔 돈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온다는 점이다. 돈보다 형제간의 우애가 중요하고(볏단 옮기기), 뭇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복도 따라온다.(흥부전) 가난한 사람의 정직한 마음이 재물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있어도(금도끼 은도끼), 돈 많은 사람은 별로 착하게 등장하지를 않는다. 부잣집은 가난한 집에 대비되는 악역으로 나와 그 인색함과 탐욕을 선보이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의 정서에서 ‘돈’은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돈을 좋아하지만 돈이 많이 있는 사람은 탐욕적인 사람이고 ‘부(富)’에는 대가가 따를 거라고 무의식 중에 경계하는 문화를 가졌다.

그래서 『천일야화』 이야기가 참 신기하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신은 그런 기준으로 상과 벌을 주지 않는다. 맹자님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있다고 말씀하신 ‘측은지심’은 그들에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측은지심이 없어도 벌 받지 않는다. 신드바드의 경우 공동묘지 동굴로 순장당해 들어온 여인을 뼈다귀로 때려죽이고서 그녀의 음식물을 빼앗아 목숨을 연명하다 탈출에 성공하더니, 엄청난 부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만약 그가 이 여인을 도와 함께 힘을 합쳐 탈출도 하고 결혼도 했다고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그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 현실은 신드바드처럼 해야 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천일야화는 외설적인 것 뿐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인 잔혹동화라는 점에서도 어린이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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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 그럼 우리는 『천일야화』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재미? 물론 아니다. 『천일야화』에는 우리와는 다른 윤리학이 있다. 약속과 의무, 그리고 자기 비움과 복종이다. 그들은 이런 윤리적 실천을 통해 신에게 좀 더 다가간다. 그들의 이슬람 영성 안에는 나름의 상과 벌의 기준이 있다. 내가 가장 놀란 지점은 ‘인간이라면 당연히~’라고 생각하던 덕목조차 문화적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가 깨질 때, 질문을 하게 되고, 인간에 대해 더욱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돈에 관한 우리의 전제를 쨍강 깨뜨리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살펴보자.

탕진하는 자, 더 많이 얻으리라

발소라에 두 재상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재상은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고, 또 한 재상은 너그러운 성품과 백성을 잘 보살피는 판결로 만인의 칭송을 받았다. 이 훌륭한 재상에게는 누레딘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철없고 방종하여 세상모르고 나대는 놈이었다. 어느 날, 착한 재상은 왕에게 바칠 노예를 구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이 노예는 발소라의 왕이 재상에게 천하절색에 교양과 지식까지 겸비해서 유쾌한 말상대가 가능한 노예를 구해오라며 1만 냥을 주어서 사오게 한 노예였다. 그런데 아뿔싸! 누레딘이 그녀를 취해버렸다. 왕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천인공노할 일이었지만, 재상은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비밀이 부치고 자신의 아들에게 그 노예를 주었다. 재상은 왕에게 완벽한 여자노예를 구해다 바치지 못한 채 얼마 후 죽고 말았다.

재상인 아버지가 죽자 누레딘은 처음엔 슬픔에 빠져 지냈지만, 곧 친구들이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그 정도면 누가 봐도 충분히 예절을 다한 것이다그러니 이제는 다시 세상에 나와 친구들도 보고 신분과 재능에 걸맞은 삶을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천일야화』 4, 1037)는 말에 홀려 매일 친구들을 초대해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늘 연회나 파티를 열어 흥청망청 놀아댔고, 그들이 돌아갈 때면 언제나 선물을 한 보따리씩 들려보냈다.

여자 노예가 타이르고 간청해도 누레딘은 웃어넘겼고, 재무담당자가 아무리 보고를 해도 흐트러진 생활을 고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의 헤픈 성격을 최대한 이용해 그의 재산을 빼내갔다. 누레딘은 어찌 된 일인지 친구들이 뭔가를 칭찬만 했다하면 그 물건을 줘버렸다. 집도, 가구도, 정원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친구들과 잔치판을 벌였고조상들과 선친이 피땀 흘려 모아놓은 큰 재산을 흥정망청 낭비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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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레딘은 파산했다. 재산을 관리하던 집사가 파산을 선고하고 떠나가자 친구들도 모두 매정하게 그를 떠났다. 그는 미녀노예만을 남기고 노예들을 모두 팔고, 가구와 집도 처분했다. 하지만, 다시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게 되자, 미녀노예는 자기를 팔라고 간곡하게 청하고, 그는 미녀노예를 팔기위해 시장에 갔다가 못된 재상의 농간과 모함에 그 미녀노예와 함께 발소라를 탈출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참으로 불효막심하고 못난 망나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그는 자기가 저지른 일의 댓가로 쫄딱 망한 채 타향을 떠돌 터이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에게 벌이 아니라 행운이 찾아온다! 바그다드에서 떠돌며 노숙을 하는 처지의 그들이 만나게 된 집은 바그다드 칼리프의 정원이었고, 칼리프는 그들이 수위와 떠들며 노는 것을 보자, 생선장수로 변장해서 그들과 함께 놀았다. 그 때, 못하는 게 없는 이 미녀노예가 류트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생선장수(칼리프)가 입이 닳도록 칭송하자, 누레딘은 그 자리에서 이 노예를 칼리프에게 줘버렸다. 오! 그가 칼리프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땡전 한 푼 없이 홀홀단신 떠돌이 신세가 되어 객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선장수는 칼리프였고, 누레딘이 발소라에서 당한 일에 대해 개입할 능력이 있었다. 칼리프는 발소라 왕에게 편지를 써서 누레딘을 당장 왕으로 앉히라고 명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왕의 여자를 범했고, 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했고, 여자노예의 사랑을 배신하고 헌신짝 버리듯 줘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는 돌아와서 왕이 되었다. 그토록 아버지 말을 안 듣더니, 재상이었던 아버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신분인 왕이 되다니! 게다가 그는 다른 사람의 신신당부를 모조리 무시한다. 여자 노예를 취할 땐 어머니의 당부를 무시하고, 절대 버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버렸다. 돈이 없어지고 있다는 집사와 노예의 말을 무시하고, 심지어 바그다드의 칼리프의 정원에서는 촛불을 다 켜지 말라는 수위의 당부를 무시하고선 모든 촛불을 밝혔다. 노숙자 주제에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서 류트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고 놀았다.

king-1846807_640이게 무슨 일인가?! 왕의 여자를 범했고, 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했고, 여자노예의 사랑을 배신하고 헌신짝 버리듯 줘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는 돌아와서 왕이 되었다.

이 방탕아! 맨발로 구걸을 하다 객사를 해도 싸다고 여길만한 이 탕아가 어떻게 반성도 없이 왕이 된단 말인가? 왜 상을 받는 단 말인가? 나는 정말로 의아했다.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들으며 자랐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가책을 해왔던 내겐 이 전개가 너무너무 이상했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봤다. 그가 한 행위들을 말이다. 그의 탕진은 혹시 자신에게 남겨진 부(富)를 나누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누레딘이 먹고 마시고 노는 행위에는 꼭 후한 선물이 따라붙는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모두 나눠주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심지어 단 하나 남은 여자 노예, 아버지가 아내로 여기라고 했던 그녀마저도 말이다. 그는 무소유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이슬람 경제의 기반은 우주는 알라에게 속하며, 모든 부도 알라에게 속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인간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 할 뿐, 그것은 알라의 하사품으로서 한시적으로 위탁된 부다. 속세에서 말하는 소유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개념이며모든 부에 대한 알라의 소유나 소유권만이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것이다.”(이슬람 문명정수일, 189누레딘은 자기의 아버지에게 위탁되었던 부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두 아버지를 따라 떠나 보내버렸다. 아버지에게 위탁된 것이지 자기에게 위탁된 것이 아닌 것이니까 말이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가 재산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에게도 신의 가호와 함께 재물이 위탁될 것이다. 순전히 누레딘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는 어떤 왕이 될까? 보나마나 왕국의 부를 결코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왕이 될 것이다. 하렘의 여인들을 모두 떠나보낼 것이다.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왜냐면, 그는 그를 걱정했던 사람들의 당부를 모두 무시한 바람에 오히려 자기에게 부과된 규범과 한계를 모두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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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 최고의 악덕

혹시 누레딘은 천일야화의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참깨장수도 탕진을 하다가 재산을 얻었고, 눈 뜬채 꿈을 꾼 아부하산도 탕진 끝에 복이 찾아왔다. 우주는 부를 소유하지 않고 되돌려주는 자에게 상을 준다. 자, 그럼 어떤 자들이 벌을 받을까?

저는 쓸데없는 지출과 방탕한 생활로 유산을 낭비해 버리는 여느 젊은이들과는 달리 행동했습니다오히려 근면과 노력으로써 가진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했죠결국 저는 여든 마리의 낙타를 소유하게 되었고또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이 제국의 각지를 여행하며 장사하는 대상들에게 낙타들을 대여하여 큰돈을 벌곤 했습니다.(천일야화』 5, 1576)

이 사람은 구걸하는 거지인데, 돈을 적선하는 사람에게 뺨도 함께 때려달라는 부탁을 하는 기이한 사람이다. 그에게 원치 않는 폭력을 가해야 했던 (행인으로 변장한)칼리프는 그를 불러 사연을 들어본 즉슨, 그는 과거에 성실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며 착실히 돈을 모아가던 부지런한 상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한 탁발승이 알려주는 보물창고에서 보물을 꺼내오는 행운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는 보물을 실은 80마리의 낙타를 탁발승과 40마리씩 나누기로 하였으나, 탐욕이 끝이 없던 그는 탁발승에게서 10마리씩 야금야금 빼앗아오더니 80마리 낙타가 실은 보물을 몽땅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다 탁발승의 품에 들어있던 안약까지 빼앗았는데, 그건 한 쪽 눈에만 바르면 온 세상에 묻힌 보물이 다 보이는 것이요, 양쪽 눈에 바르면 장님이 되는 약이었다. 욕심꾸러기 상인은 양쪽 눈에 다 발랐고, 장님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참회하며 적선과 함께 따귀를 맞는 고행을 택했다.

그의 성실한 태도는 얼마나 낯익으며 우리의 공감을 받는가? 근면과 노력으로 한 푼 한 푼 모아가는 모습이 가상하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이익을 취하며 결국 부자가 된 성공모델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들은 노오~력의 결과가 주어지기만 바라며 매일 열심히 일을 하고 한 푼 두 푼 투자를 한다. 하지만, 자기의 부의 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어느 순간 거저 주어지는 부가 나타난다면? 분명 이게 왠 떡이냐며 움켜잡을 것이다. 주머니를 불린다는 태도에는 속도의 제한도 없고, 얼만큼 불리겠다는 한계가 없다. 내 노력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내 것이 아닌 것이 와도 내 행운으로 여긴다. 이것이 우리의 끝없는 소유욕이다.

hand-32833_640내 노력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내 것이 아닌 것이 와도 내 행운으로 여긴다. 이것이 우리의 끝없는 소유욕이다.

절약과 근면의 뒷모습은 자린고비이며, 착실하게 주머니를 불려가는 그의 성실함은 끝모를 탐욕의 레일 위에 서있다. 재물이란 하느님(알라)의 뜻에 의해 사람에게 위탁될 뿐이건만,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간다고 여기는 순간, 그는 철퇴를 맞게 된다. 자기 것이라고 움켜쥐는 자에게서 우주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럼, 누레딘은 왜 자기의 재산을 탕진의 형식으로 없앴을까? 착한 기부를 하면 돈은 줄지만, 명예가 쌓인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면 ‘준 사람’의 뿌듯함이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잃은 것이 없다. 그러니 그의 탕진이야말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가장 깔끔한 증여였던 것이다.

누레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소심한 나는 차마 탕진을 좋게 생각하지는 못하겠다. 돈을 잘 관리하면 좋겠고, 증여를 하더라도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또 기부한 돈이 뜻깊게 쓰이길 바라며 마음으로 내 손을 떠난 돈을 따라다닐 것 같다. 누레딘과 비교하면 자기 주머니를 단단히 꿰차고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천일야화』를 읽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탕진하고 낭비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저 내 소견머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 눈에 나쁘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어떤 하늘의 복이 간다 해도, 하늘의 셈법은 나의 소견머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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