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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알라만이 창조한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1-10-12 21:19
조회 : 227  
김희진(감이당)

두 친구와 밧줄 꼬는 장인

두 친구가 있었다. 사디는 아주 돈이 많았고, 사드는 돈이 적당히 많았다. 두 사람은 모두 자기의 경제적 처지에 꼭 맞는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디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만큼 큰 재산을 갖고 있을 때만 행복할 수 있다”(천일야화』 5, 1612)고 생각했고, 사드는 크게 궁색하지 않고 능력껏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충분한 것이며덕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경제관에 대해서만 의견이 갈릴 뿐, 둘도 없는 우정을 과시하는 사이다.

어느 날, 또 다시 이 사안에서 의견충돌을 보이던 두 사람은 내기를 하기로 했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다가 죽을 때도 가난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큰돈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럼 각자는 무슨 결과를 기대한 걸까? 사디는 큰돈을 주면 그가 성실한 노동을 통해서 자본금을 불려서 부자가 될 거라고 장담했다. 왜냐하면 사디는 가난의 이유가 가난하게 태어났거나 방탕하게 돈을 다 날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는 굴릴 돈이 없기 때문에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사드는 돈을 줘도 그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는데, 사드에게 중요한 건 ‘덕’이고, 덕이 있는 사람은 자본금이 없어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난과 뗄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면, 밧줄을 꼬아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는 ‘하산’이야말로 적임자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해도 그의 가족들은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다. 사디는 200냥 금화를 선뜻 하산에게 주고서는 잘 운용해서 팔자 피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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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럴 수가! 하산은 200냥 중 190냥을 자기의 터번 주름 사이에 잘 끼워 넣고는 10냥으로 장을 봐서 기쁘게 집으로 가던 중, 솔개를 한 마리 만나게 되었다. 솔개는 하산의 손에 들린 고기를 빼앗으려 했으나 하산이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다 터번이 벗겨지자 터번을 냉큼 채서 날아가 버렸다. 하산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6개월 뒤 두 친구가 찾아왔을 때, 하산은 돈을 잃어버렸다고 말을 했고, 사디는 못 믿는 눈치였지만 다시 한 번 금화 200냥을 주었다. 이번에 하산은 정말 잘 보관하리라 마음먹고 집 창고의 밀기울(말사료)항아리 밑에다가 금화를 싼 주머니를 묻어두었다. 하지만,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나! 그가 밧줄 재료를 사러 나간 사이 부인이 그걸 한 떠돌이 행상의 때밀이 흙과 맞바꾸고 말았다. 두 번째로 금화를 잃어버렸지만, 하산은 화내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저 사디와 사드에게 면목 없을 뿐이었다.

사디는 하산이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사드의 차례였다. 사드는 하산에게 작은 납덩이 하나를 주면서, 이 납덩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잘 보자고만 하였다. 납이라니, 대체 그걸 어디에 쓸까 싶었지만, 마침 고기 잡는 이웃집에서 그물을 손질할 때 납 조각이 필요했다. 집집마다 구하러 다니다가, 다행히 하산의 집에서 얻어간다. 그 보답으로 첫 번째 잡은 그물의 물고기를 하산에게 주기로 약속하는데, 하산 부인이 그 물고기를 받아 요리하려고 배를 가르니 거기서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나왔다. 와우~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는 이웃집의 유대인 상인이 호시탐탐 헐값에 빼앗아가려고 했으나 보석에 대해 문외한이던 하산은 처음에 20냥을 부르다가 50냥, 100냥으로 올려 부르는 유대인을 보고서 의심을 하게 된다. 결국 십만냥의 거금에 그 다이아몬드를 팔았다. 하산은 부자가 된 것이다.

하산은 십만냥을 쌓아두고 야금야금 쓰기보다는 돈이 계속 나올 수 있는 원천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가난한 밧줄 꼬는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밧줄도매공장을 만들었다. 그 동네의 밧줄장인들은 밧줄을 열심히 만들어 하삼에게 정확한 가격에 팔았다. 하삼은 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개척한 큰 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언제나 하느님이 주신 선물에 감사하면서 좋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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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십만냥을 쌓아두고 야금야금 쓰기보다는 돈이 계속 나올 수 있는 원천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가난한 밧줄 꼬는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밧줄도매공장을 만들었다.

알라만이 산출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에 읽었을 때는 신심이 두터운 무슬림에게 복이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제관을 살펴보면서 너무나 특이한 지점들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그들의 금융활동에는 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교일치의 사회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이자가 없는 것은 이슬람의 교리에 따른 것이다. 사디와 사드의 논쟁은 이슬람이 영성 충만의 중동에서 경제관을 정립해가는데 첨예한 문제였던 ‘증식’에 관해 다루고 있다.

성경을 보면 ‘이자’를 그냥 이자라고 안 쓰고 고리대라는 말로 아주 나쁘게 표현한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한 지역에 사는 고리대금업자들은 천당에 가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훗날 혁명적인 예수는 고리대업자보다 거짓 성직자가 더 나쁘다고 설파하면서 죄인들의 구원자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를 예언자가 아니라 신의 아들로 여기는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간을 낳았으며, 동일 유전자를 받은 그 아들도 신이기에, 낳는 존재라는 교리를 세운다. 그리고 예수가 강림한 곳에 어떤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데 그것은 개개인 신앙인의 신심을 도탑게 하는 성령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의 아들과 성령 사이엔 위계가 존재하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라는 삼위일체설이 만들어졌다. 꼭 하느님이 나서지 않아도 영성은 충만해지고,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이 인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인간에게도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 어떤 대리자(신부님은 죄를 사해주고, 신부님이 기도를 해주면 더 잘 들어주신다)는 신과 인간을 매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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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건 이론적인 배신이 아닐까? 구약의 하느님의 특징은 다른 어떤 신적인 것도 용납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절대자, 오로지 혼자만 신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이 아닌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내려왔을 때 분노에 차서 금송아지를 깨부순 것도 그들이 금붙이를 녹여서 완전히 다른 존재를 산출해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신교는 신 이외의 존재는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다고 한다. 창조하고 낳는 것은 하느님뿐이고, 창조된 것에겐 복종만을 요구한다. 로고스인 아버지가 자연인 어머니를 질투하는 것처럼, ‘는 변용하는 것생성변화하는 것자기증식하는 것을 질투한다.”(녹색자본론』 그러나 예수의 출현 이후, 기독교는 일신교의 기호보다는 자기증식이 가능한 교리를 정립했다. 모든 존재 사이에서 무엇이든 생성 가능한 체계가 되었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잉여를 생산해내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자가 증식되는 세계! 다신교와 우상숭배의 세계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기독교는 물론 성부성자성령 이외의 다른 신을 인정한 적이 없다고 하겠지만, 이미 일신교의 교리를 저버린 마당에 빈약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이슬람은 예수를 그냥 예언자라고 하고, 무함마드 역시도 예언자일 뿐이다. 그는 신이 아니다. 그래서 이슬람에는 성직자가 따로 없다. ‘이맘’을 성직자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고, 하느님에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꾸란을 외워서 예배를 주재하는 자를 말한다. 교회는 따로 없고 마을 곳곳에 기도하는 공간, 모스크가 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 신에게 복종할 수 있을 뿐, 신의 사랑을 흉내낼 수도 없다. 만물은 하느님(알라)만이 만들 수 있고, 인간의 운명도 신의 손 안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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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느님의 자산을 위탁받아 하산은 매일매일 근면한 노동으로 사회의 부를 창조하고 증식시킨다. 돈으로 돈을 증식키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해서 일용할 양식을 얻어간다.

그래서 하느님(알라)이 주신 재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고 해서 이자가 ‘생기면’ 안 된다. 그것의 주인은 엄연히 하느님이신데, 그걸 가지고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가 늘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자는 ‘시간은 가치’라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한다. 꾸르안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계시가 12번이나 등장하여 이자 행위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정수일이슬람 문명, 203)

그래서 이슬람의 교리에서 보면 사디의 주장은 아주 오만한 생각이다. 사디는 신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하산의 가난을 자기가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산이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자본을 투여하여(최초의 낳는자) 잉여 가치를 생산할테고, 자산의 자가증식 회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드는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다. 단지 값어치가 없는 납덩이 하나에 신의 섭리가 함께 하길 기도할 뿐이다. 그렇게 하여 일어난 일들은 놀라운 우연의 연속이다. 하산에게 ‘부’를 준 것은 사드가 아니라 하느님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산을 위탁받아 하산은 매일매일 근면한 노동으로 사회의 부를 창조하고 증식시킨다. 돈으로 돈을 증식키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해서 일용할 양식을 얻어간다. 이슬람 경제에 이자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신만이 창조하고, 창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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