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고 긴 과정을 따라온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좀 다르게 고민해보고 싶어서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면, 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대로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이치의 논의에 따르면, 물질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마음’의 영역에서 배제해버렸던, 주변에 있는 모든 물질들이 ‘마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앉아있는 의자, 내가 쓰는 책상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갸웃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간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에는 그 마음을 쓰는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주체의 의식과 의도를 곧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신이치에 따르면, 마음계는 물질계의 정보를 전사 받고, 의미를 증식시키는 하나의 층위다. 그 ‘마음’이라는 것에는 주체도 의도도 설정되어있지 않다. 다만 마음계는 서로 다른 것들의 ‘우연한’ 만남이 있는 곳에서 창발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나와 물질 사이에, 우리들 사이에 늘 창발되고 증식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네 마음, 나눌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내가 앉은 이 의자 하나도 어떻게 봐야할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