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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궁금하다!] 마음과 물질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1-11-03 22:50
조회 : 166  
이윤하(남산강학원)
올해, 늘 그렇듯 ‘어쩌다가’ 인류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옆 친구도 늘 어려운, 심지어 인간도 덜 된 제가 ‘인류’학이라니?^^ 인류학 세미나팀과 여러 인류학자 선생님들 덕분에 참 넓은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석기시대, 열대, 아프리카, 동물원 등등. 얼마 전엔 태평양의 작은 섬들에도 다녀왔습니다. 멀고 먼 곳이었지만, 그곳은 제 마음속이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과 닮은 마음을 가진 옆 친구의 마음속이기도 했습니다.
인류학자 선생님들은 개념과 이론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분들입니다. 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인류학자 선생님들을 따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왜 이런(혹은 저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해보려 합니다. 또 그 시도가 저 자신과 옆 친구, 더 많은 존재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첫 단추로 매번 한 권의 책(한 분의 인류학자 선생님)께 하나의 키워드를 배워가보겠습니다.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마음이 안 좋다’, ‘네 마음대로 해라’, ‘마음껏 쉬고 싶다’ 등등, ‘마음’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쓴다. 그런데 막상 마음이 뭐냐고 하면 아리송해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마음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방법은 뇌와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것이다. 시냅스간의 연결, 화학물질과 전류의 전달을 분석하면, 우리가 왜 이런 ‘마음’을 느끼는지 일정 정도 밝혀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만으로는 우리 마음의 온갖 질적 차이들을 설명해낼 수 없다. 시냅스는 시냅스지,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려면 뭔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물질계를 떠나 아예 마음의 ‘마음적인’ 측면을 다루려고 한다. 과학자들이 시냅스를 가지고 마음을 분석한다면, 인문학자들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통해 마음에 접근한다. 인간 언어의 구조가 마음의 구조를 보여주고, 언어가 마음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언어를 분석하는 마음학도 뾰족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은 물질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물질 없이 있을 수는 없다. ‘마음’이 궁금하다면 물질의 역학관계만 분석해선 안 되지만, 물질계를 떠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물질과 마음, 분리되어 보이는 두 영역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한 긴 고민을 보여준다. 신이치는 그 고민의 결론으로 마음과 물질의 ‘동형성’(isomorphism:수학용어라고 하는데, 이해한 만큼만 써보겠다)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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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1. 물질과 마음의 브리콜라주

물질과 마음 사이에 동형성이 존재한다는 말은, 물질계와 마음계가 같은 패턴으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신이치는 그 패턴을 레비-스트로스가 인간 지성의 원리라고 말했던 ‘브리콜라주(bricolage)’로 설명한다.

생명은 유전자 레벨에서 신경조직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브리콜라주를 원리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 끝에 인류의 뇌가 출현한 것입니다.그리고 그 인류의 뇌가 만들어 내는 문화 현상 역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브리콜라주의 원리에 의해 창조적인 일을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뉴런계와 마음계를 잇는 첫 번째 고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뉴런계도 마음계도 모두 이른바 고물의 재이용이라는 방식으로 진화와 창조를 실현해왔습니다. 두 계통 사이에는 작동의 뚜렷한 공통성이 발견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마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강연1 ‘물질’과 ‘마음’의 통일을 향해」, 청어람 미디어, p21)

생명의 진화는 ‘브리콜라주’의 과정이다. ‘브리콜라주’를 한다는 것은 주변에 펼쳐진 ‘우연적인 조건’을 가지고 ‘우발적 필요’에 대처한다는 것. 널려있던 잡동사니를 지금의 필요에 맞춰 유용하게 써먹는 것이다. 생명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며 자기를 뚝딱뚝딱 만들어왔다. 가장 유명한 예는 대나무를 훑어먹기 위해서 손목에 있는 뼈를 길러서(?) 엄지손가락으로 만든 판다가 아닐까. 다음 세대의 신체가 가진 새로운 기능은 어디 밖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자를 변이시켜서 얻은 것이다.

인간의 몸과 뇌도 원시 생명들이 갖고 있던 ‘고물’을 이리저리 붙이고 변이시킨 결과다. 이렇게 진화해온 인간은, 그 마음도 ‘브리콜라주’를 원리로 한다. 주변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집도 짓고, 도구도 만들고, 공동체 안 누군가의 부재를 다른 공동체원의 역할을 바꾸는 것으로 메우고, 등등. 서로 다른 잡다한 것들을 인식-분류하고, 또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연결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활발한 브리콜라주를 통해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자연상태’의) 우리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렇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두 체계가 ‘동형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서로 다른 층위의 집합이라고 할까. 그렇게 되면 물질이 마음의 원인이라거나, 마음이 물질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억지로 인과관계를 설정하지 않고도 둘의 연결을 상정해볼 수 있다. 두 계가 ‘동형’이라면, 물질계(아래 층위)에서 분류한 정보가 마음계의 구조로 ‘전사(轉寫)’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계는 정보를 즉각 전사하고 받음으로써, 하나의 정보를 해석하는 서로 다른 층위로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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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며 자기를 뚝딱뚝딱 만들어왔다. 가장 유명한 예는 대나무를 훑어먹기 위해서 손목에 있는 뼈를 길러서(?) 엄지손가락으로 만든 판다가 아닐까.

2. 0공간에서 발생하는 창조

물질계와 마음계는 브리콜라주를 통해 ‘분류’와 ‘연결’을 하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둘이 ‘동형’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계’를 이루고 있는 이유다. ‘분류’하고 ‘연결’한다는 것은 정보를 카테고리화(분류) 해서 묶는다(연결)는 말이다. 물질계-신경세포들의 경우, 같은 패턴의 자극을 여러 번 받으면 더 감각하기를 중단하고 그것을 하나의 같은 자극이라고 묶어 카테고리화 시킨다. 이를 신이치는 물질계에서 ‘0’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비슷한 자극의 반복이 감각을 0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음계에서는 이 일이 조금 다르게 일어난다.

메타포는 다른 것을 겹쳐서 의미를 압축하는 메커니즘에 따릅니다. 다르지만 공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늘어놓고, 그 가운데 공통되는 부분을 무시합니다, 혹은 정보로서 ‘0’으로 취급합니다. 그렇게 하면 두 개의 의미의 중첩이 생기고, 정보로서는 0으로 다루어지는 부분에서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메타포는 정보를 감축하고 동시에 새로운 의미의 발생을 촉진시킵니다. (같은 책, p32)

‘메타포’라함은 ‘은유’, 인간의 마음이 서로 다른 것을 겹쳐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냅스가 비슷한 자극을 하나로 카테고리화 하듯, 마음의 층위에서는 ‘내 마음’을 ‘호수’와 중첩시켜놓고 둘 사이의 겹치는 정보는 0의 공간에 놓는다. 모든 것을 일일이 다른 것으로 기억하고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적은 뇌 용량으로도 폭발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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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냅스가 비슷한 자극을 하나로 카테고리화 하듯, 마음의 층위에서는 ‘내 마음’을 ‘호수’와 중첩시켜놓고 둘 사이의 겹치는 정보는 0의 공간에 놓는다.

여기 마음계의 ‘0공간’이 물질계와의 차이가 생기는 곳이다. 물질계의 0공간이 정보가 더 이상 감각되지 않는, 있음과 반대되는 ‘없음’이라면, 마음계의 0공간은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내 마음’과 ‘호수’의 공통 정보가 압축된 마음계의 0공간에서는 의미의 증식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내 마음은 호수요’ 다음에 ‘그대 노저어 오오’라는 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 마음’과 ‘호수’의 결합은 새로운 의미의 장을 열게 된다. 서로 다른 것의 연결은 곧 창조! 그리고 이런 일은 시를 쓸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3. 마음은 어디에?

이 길고 긴 과정을 따라온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좀 다르게 고민해보고 싶어서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면, 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대로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이치의 논의에 따르면, 물질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마음’의 영역에서 배제해버렸던, 주변에 있는 모든 물질들이 ‘마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앉아있는 의자, 내가 쓰는 책상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갸웃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간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에는 그 마음을 쓰는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주체의 의식과 의도를 곧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신이치에 따르면, 마음계는 물질계의 정보를 전사 받고, 의미를 증식시키는 하나의 층위다. 그 ‘마음’이라는 것에는 주체도 의도도 설정되어있지 않다. 다만 마음계는 서로 다른 것들의 ‘우연한’ 만남이 있는 곳에서 창발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나와 물질 사이에, 우리들 사이에 늘 창발되고 증식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네 마음, 나눌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내가 앉은 이 의자 하나도 어떻게 봐야할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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