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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궁금하다!] 사피엔스들의 마음, 35억 년을 동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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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11-14 23:02 조회1,0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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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들의 마음, 35억 년을 동행하다
이윤하(남산강학원)

1. 마음을 연구하는 고고학

푸코의 『말과 사물』이라든지,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라든지, 어렵다고 내로라하는 책들을 펴보면 이게 같은 ‘인간’의 뇌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스럽다. 멀리 가지 말고,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만 펴 봐도 이런 걸 생각해낸 인간은 누굴까 싶다. ‘말과 사물’이든 온갖 수학 공식이든, 다 인간의 마음이 만들었다. 인간의 마음은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된 걸까? 철학이며 수학이며,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자동차며 창문 빽빽한 빌딩, 친구가 입고 있는 저 현란한 잠옷까지,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만들어냈을까?

오늘 읽을 책은 스티븐 미슨 선생님의 『마음의 역사』다. 지난주 썼던 글에서 나는 ‘마음’을 연구하는 두 계열의 전문가로 뉴런을 탐색하는 과학자와 인간 언어를 분석하는 인문학자를 이야기했다. 미슨 선생님은 그 이분법을 뒤집으시는 분이다. 바로 마음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이시기 때문! ‘고고학’이라고 하면 모래에 파묻힌 유물을 발굴해내는 탐사대 정도의 그림이 떠오르는데, 이게 ‘마음’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 미슨이 연구하는 ‘인식고고학(Cognitive Archaeology)’ 분야에서는 유물들에서 ‘마음의 역사’를 발굴해낸다. (이야말로 물질에서 마음을 발견하는 일이로다)

미슨은 ‘선사시대의 수렵채집민’, 구체적으로는 250만 년 전 석기가 출현한 때부터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인간을 연구한다. 그의 질문은 단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모습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이 남긴 물질-흔적에서 무려 그들의 정신,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읽어내고자 한다. 왜? 지금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 마음에서부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석기를 만들어내면서부터 자동차를 만들기까지 (미슨에 따르면) 세 단계를 거쳐 ‘이렇게’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마음은 그 역사 속에서 10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인류의 마음 구조를 가지고 살고 있다. (‘이렇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john-bogna-hYbWJvCHVRo-unsplash그렇다, 미슨이 연구하는 ‘인식고고학(Cognitive Archaeology)’ 분야에서는 유물들에서 ‘마음의 역사’를 발굴해낸다.

2. 마음에도 역사가 있어

마음이 ‘진화’해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의 마음이 어느 날 허공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든, 우리 인간 자신이든 간에,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명의 육체와 함께 생명의 마음이 생겨났고, 육체의 변이와 함께 마음도 변이해왔다. 이렇게 마음의 역사는 몸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우리가 ‘인류’라고 부르는 조상 계통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미슨은 우리 인간과 현대 유인원들의 조상이 갈라지는 시점인 약 600만 년 전부터를 연구 기간으로 설정한다. 인류는 약 600만 년 전부터 침팬지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성질, 즉, 다른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도드라지는 차이는 바로 이 600만 년 안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자도 없고, 증인도 없는, 이 어마어마하게 오래 전 과거를 어떻게 복원해낼 것인가?

고고학 조사는 과거를 한 층 한 층 벗겨내는 힘든 작업을 필요로 한다또 시기적으로 어느 것이 앞서고 어느 것이 뒤서는가를 추정하기 위해서 여러 벽을 서로 대조하면서 조사해야 한다그 뒤에는 그 벽 아래쪽의 퇴적물에서 발견된 서로 다른 종류의 도기를 참고해 그 벽의 연대를 추정해야 한다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고고학의 발굴 기록을 하나로 모아 최선을 다해서 그 건물의 건축 단계들을 복원해야 하는 것이다(스티븐 미슨, 『마음의 역사』, 영림카디널, p90)

위 내용은 미슨이 이탈리아의 중세 베네딕트회 수도원 발굴 작업에 대해 쓴 글이다. 미슨-고고학자에게 인간의 마음은 중세 수도원과 같다. 그는 복잡한 구조만 보면 그것이 돌로 지은 수도원이든 인간의 마음이든, 그 진화 단계를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600만 년 전 부터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하기까지의 마음을 발굴하는 과정도, 여러 단계에 걸쳐 지어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복원하는 과정과 닮았다.

우리의 조상님들(이하 호미닌)이 남기신 두개골을 보면, 200만 년 전~150만 년 전에 한 번, 50만 년 전~20만 년 전에 한 번, 뇌 크기가 두 차례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슨은 이 시기에 그들이 남긴 유물들, 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연결시켜본다. 그들이 살았을 지구환경도 물론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이론에 기초해, 아이의 뇌가 발달하는 과정과 인류의 뇌가 진화하는 과정을 오버랩 시켜본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 구조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대략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fatih-kilic-1kPJhqTUWo4-unsplash이렇게 마음의 역사는 몸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3. 우리 마음의 조상들

미슨은 이 호미닌들의 600만년을 하나의 드라마로 보자고 제안한다. 600만년동안 펼쳐지는 즉흥극 무대를 죽 훑어보면 그 배경도 주연배우도 계속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지만 한 번 읊어보겠다. 1막(600만 년 전~450만 년 전)에는 하나의 유인원만이 등장하지만 2막(450만 년 전~180만 년 전)부터는 다채로운 호미닌들을 만날 수 있다. 채식을 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라미두스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이후 두 배우가 퇴장하고 ‘루시’로 대표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등장했다가 그의 후예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조금 다른 계열인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가 등장한다. 그들이 사라지고 호모 계통의 첫 조상으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보다 1.5배 큰 뇌를 가진 (그 유명한) 호모 하빌리스까지가 2막의 주연이다. 하빌리스는 도구를 능숙하게 만들고 육식을 하게 된다. 3막(180만 년 전~10만 년 전)에서는 더 큰 뇌와 신체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가, 이제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국과 자바섬까지를 무대로 등장한다. 이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출연한다. 4막은 1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다른 막들보다 무척 짧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출연과 동시에 가장 다이나믹한 연출이 펼쳐진다. 이들은 배를 만들어 호주, 유럽까지 건너갔고, 도구뿐 아니라 조각상과 목걸이도 소품으로 만들어냈으며, 농사도 짓고, 순식간에 자동차와 노트북도 만들어냈다.

이상 600만 년 호미닌 대하드라마의 주연배우들을 읊어보았다. 각기 다른 이름마다 다른 신체, 동시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의 마음의 조상이다. 이렇게 많은 주연배우들을 보면, 우리 사피엔스의 주연 자리도 다른 종이 꿰찰 것이라는 필연적인 전개를 예상하게 된다. 총 4막의 구성 중, 4막이 무척 특이해보이긴 하지만, 우리 사피엔스의 마음도 이 역사 속에서만 출현 가능한 마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도 다음 막이 되면 다른 ‘마음’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마음이 진화한다는 것은 마음도 자연선택의 압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역사적’ 질문이 가능해진다. 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 계속 살아가게 될까? 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일까?

바로 옆 친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영 다르다, 이해가 안 된다, 싶은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이 전개를 따라오다 보면 우리 마음은 거의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마음은 같은 조상에게서 받은 같은 설계도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하드라마는 600만 년 짜리이지만 우리 조상이신 첫 생명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약 35억 년 전이다. 나와 너의 마음은 심지어 35억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다. 침팬지와는 겨우 600만 년 전에 헤어졌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네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고, 침팬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고, 까마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마음’ 전체를 이해하는 길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만들어냈을까?’하는 처음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질문에 답을 내보겠다. 

alessio-ferretti-upwjVq8cJRY-unsplash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 계속 살아가게 될까? 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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