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슨은 이 호미닌들의 600만년을 하나의 드라마로 보자고 제안한다. 600만년동안 펼쳐지는 즉흥극 무대를 죽 훑어보면 그 배경도 주연배우도 계속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지만 한 번 읊어보겠다. 1막(600만 년 전~450만 년 전)에는 하나의 유인원만이 등장하지만 2막(450만 년 전~180만 년 전)부터는 다채로운 호미닌들을 만날 수 있다. 채식을 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라미두스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이후 두 배우가 퇴장하고 ‘루시’로 대표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등장했다가 그의 후예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조금 다른 계열인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가 등장한다. 그들이 사라지고 호모 계통의 첫 조상으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보다 1.5배 큰 뇌를 가진 (그 유명한) 호모 하빌리스까지가 2막의 주연이다. 하빌리스는 도구를 능숙하게 만들고 육식을 하게 된다. 3막(180만 년 전~10만 년 전)에서는 더 큰 뇌와 신체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가, 이제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국과 자바섬까지를 무대로 등장한다. 이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출연한다. 4막은 1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다른 막들보다 무척 짧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출연과 동시에 가장 다이나믹한 연출이 펼쳐진다. 이들은 배를 만들어 호주, 유럽까지 건너갔고, 도구뿐 아니라 조각상과 목걸이도 소품으로 만들어냈으며, 농사도 짓고, 순식간에 자동차와 노트북도 만들어냈다.
이상 600만 년 호미닌 대하드라마의 주연배우들을 읊어보았다. 각기 다른 이름마다 다른 신체, 동시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의 마음의 조상이다. 이렇게 많은 주연배우들을 보면, 우리 사피엔스의 주연 자리도 다른 종이 꿰찰 것이라는 필연적인 전개를 예상하게 된다. 총 4막의 구성 중, 4막이 무척 특이해보이긴 하지만, 우리 사피엔스의 마음도 이 역사 속에서만 출현 가능한 마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도 다음 막이 되면 다른 ‘마음’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마음이 진화한다는 것은 마음도 자연선택의 압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역사적’ 질문이 가능해진다. 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 계속 살아가게 될까? 어떤 마음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일까?
바로 옆 친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영 다르다, 이해가 안 된다, 싶은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이 전개를 따라오다 보면 우리 마음은 거의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마음은 같은 조상에게서 받은 같은 설계도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하드라마는 600만 년 짜리이지만 우리 조상이신 첫 생명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약 35억 년 전이다. 나와 너의 마음은 심지어 35억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다. 침팬지와는 겨우 600만 년 전에 헤어졌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네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고, 침팬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고, 까마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마음’ 전체를 이해하는 길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만들어냈을까?’하는 처음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질문에 답을 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