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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화성 1학기 에세이 발표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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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진 작성일19-04-17 15:29 조회5,22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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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희진입니다^^

오늘 점심에 남산 산책을 다녀왔는데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요~~~ㅎㅎㅎ

어제는 웃고 울던 화성 1학기 에세이 발표가 있었는데요~!!!

이제 그 현장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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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에 맞추어 두 손에 에세이 발표지를 들고 학인분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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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담임! 장금쌤께서 발표 순서를 적고 계시네요~~~
빨리 발표할수록 좋다죠^^

발표 시작 전에

발표자는 또렷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알맞은 속도로 발표하고,

질문자는 허사를 빼고 단도직입으로 궁금한 점을 물으라는

곰쌤의 당부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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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첫 번째로 발표할 쌤들이 긴장되고도 설레는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웃고 계시네요^^
공통 주제는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였지요~
정순쌤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공부, 상미쌤은 자기를 비우는 공부,
유진쌤은 힘이 되는 공부, 지원쌤은 인정욕망을 내려놓는 공부에 대해 쓰셨어요.

곰쌤의 코멘트를 정리하자면요.

(정순쌤) 영성수련은 거친 습관과 마음의 태도를 세밀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라고 하는 건 습관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칠게 거칠게 가면 글쓰기는 어렵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많지만 마음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지 않음을 글쓰기가 보여준다. 나는 숨기는 게 없다는 말을 하는 건 자기를 안 보고 있고, 자기를 모른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렇게 하면 감이당에서 배울 게 없어진다. 마음을 회전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미쌤) 비우고 비우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비우면 가벼워야 하지 않나.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 좋다고 하는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착하다와 좋다의 차이가 뭔가. 착하다는 건 상식에 부합해서 상대의 호의에 보답하는 거다. 호의는 상대의 탐욕에 보답하는 것이다. 좋은 삶을 원한다면 사유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공부한 것이 가족을 투명한 관계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디서 화가 났는지는 알려주는 게 맞다. 가족은 서로의 삶을 지켜보는 배경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족에게 인연이 깊은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는데, 기본적인 기준은 있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인 이유다. 내 사유가 길을 터야 친구가 생긴다. 정리는 잘하지만 더 치밀하게 공부해서 자기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유진쌤) 향기 없는 꽃이란 말을 듣고 왜 좌절했는지 잘 살펴보라.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부분에서 공부로 어떤 힘이 생긴 변화를 약간 느끼는 것 같은데 선명하게 포착이 안 되어 있다. 작년하고는 내용이 바뀐 것 같은데 앞부분의 초점이 선명하지가 않고 애매하게 지나가는 문장이 많다. 연암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것도 내 일상과 매치가 안 된 채로 설익어서 겉돈다. 힘은 구체적인 거다. 구체적인 것을 내가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 되짚어보라.

(지원쌤) 내용에서 감동을 받았다. 스펙이 화려했는데 굉장한 전환이 일어났다. 자립하고 싶었다는 부분에서 확 건너뛰었는데, 이 전환이 왜 일어났는가가 생략됐다. 활보를 하면서 새로운 삶의 발견을 했다. 노총각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는데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 하는 도반이 있어서 갈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모기 잡다가 일어난 일을 말한 부분에서, 읽어야 될 책이 많아 라는 말은 세계적인 철학자가 했을 법한 말이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부분이 참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런 공부를 할 때 그전에는 공부가 인정욕망이었는데 지금 공부가 재밌다는 걸 잘 연결을 못했다. 생각이 어긋장이 나면 비문이 나온다. 왜 인정욕망을 내려놔야 자립, 공감, 도반, 죽음으로 가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건 아니라 연결은 울퉁불퉁한데 하나하나 깨달은 건 소중한 본인의 언어다. 공부에는 공통의 목표가 없다. 자기가 서 있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해봐야 소용없다. 처음에 서 있던 자리에서 얼만큼 나갔는가가 중요하다. 지원 씨가 처음와서 쓴 글이 생각난다. 그땐 숟가락질을 못하는 갓난아기였다. 굉장히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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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발표하신 쌤들입니당!
현숙쌤은 나를 읽고 세상을 읽는 공부, 저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공부,
보순쌤은 성공을 넘어 몸과 우주에 접속하는 공부, 우경쌤은 소통하는 공부에 대해 썼습니다.

곰쌤 코멘트는요~

(현숙쌤) 활동을 어떻게 했다는 건 정리가 됐는데, 내면의 각성이 비었다. 어떻게 오게 됐고 어떤 증상을 겪었고, 공부가 일상과 분리가 돼서 다시 일치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는 과정을 썼는데 왜 내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가. 증상은 있는데 그 안에 깊은 진단이 빠져 있다. 내부에서 나오는 새로운 리듬이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와서 공부할 때는 힘을 너무 쓰고 돌아가서 앓게 된다. 힘 조절이 핵심이다. 내면의 전제와 표상이 어떻게 바뀌고 생활 패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없이 외부의 행동 패턴만 정리해서 글에 여유가 없다. 성실하게 뭔가를 수행만 하면 더더욱 힘이 든다. 내면의 변화는 없고 이게 좋아 옳아를 설정하면 거기 가서 수행을 잘 해내니까 겉으로만 힘을 쓰는 거다. 내면에서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부처가 된다는 건 몸이 유연해져서 거처가 어디서든 편안해지는 거다. 목소리나 얼굴이 성실해보이는데 편안해보이지는 않는다. 공부 안에서 오는 내적 자각에 집중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하나. 힘들게 안 하면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망상이다. 중독되는 거다. 동양학은 힘을 빼는 거다. 고수들은 힘을 뺀다. 그거를 모르는 게, 몰라서가 아니라 이전의 습관을 고수하기 때문에 모르는 거다.

(저) 제대로 된 일이 없고 계속 옆길로 샜는데 왜 이렇게 힘든가.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성공을 향해 달려간 것도 아닌데 너무 힘이 든다는 건 내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안에 자기를 얽어매는 게 있으면 그게 자기를 조인다. 질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을 해야 한다. 밀어 붙여서 긴장을 시켜서 티도 안 나는데 자기는 쓰러진다. 얼굴에 언짢은 기색도 없으니 남들은 잘 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은 힘이 너무 든다. 완전히 불균형이다. 힘들면 티가 나야 남들이 신경을 써주는데 남들은 짐작을 못하게 한다. 그런데 자신은 힘을 너무 쓰고 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여기로 흘러왔다. 자기를 하루빨리 바꿔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다. 마음이 바뀌면 저절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하루빨리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가. 이것이 망상이다. 이 망상을 제대로 보고 버려야 한다. 매사에 마음에 압박을 준다. 이 패턴의 모순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엄청 모순적으로 작동하는 이상한 기계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이걸 조율을 해야 한다. 힘들 때는 힘든 내색을 해야 학고 보통 때는 필요 이상의 힘을 쓰지 말아야 하고 실수를 하면 실수를 인정하면 된다. 인생 전체는 약간 샛길로 빠진 실수인데 매사 작은 일에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너무 이상한 상황이다. 이것을 조정해야 한다. 생명의 핵심은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어그러졌는데 그걸 계속하는 건 죽음 충동이다. 삶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걸 기준으로 자기를 봐야 한다.

(보순쌤) 자기가 변화하는 과정을 재밌고 깔끔하게 잘 서술했다. 잘 읽힌다. 여기에 보면 가장 결정적인 첫 번째 사건이 씨씨를 하려다 좌절한 거다. 연애를 어장으로 생각했다. 연애는 유일하고 오리지널한 거지 숫자가 많다고 확률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연애가 스펙이 됐다. 자기의 장식용이다. 사랑이 응답받지 못한 실존적 절망 같은 것도 없고 내 자아가 훼손된 것에 대한 열등감만 있다.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거절당한 걸 부끄러워하면 사랑을 체험할 수가 없다. 이후의 상황에 그 여성에 대한 열렬한 동경이 없다. 놀림감이 되는 건 스스로 자초한 거다. 마음이 없이 액션을 취하니까 상대도 느낀거다. 진심을 다해서 좋아할 때는 여성도 안다. 이 글에서 지금 시대 청년들의 성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동의보감 몸과 우주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책을 봤다. 이런 건 자기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니다. 우주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가오는 인연들이 무수히 흘러다닌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누구나 겪지만 누구나 겪는다고 해서 강도가 낮아지지 않는 엄청난 일을 경험했다. 삼사십 대도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기는 아직 어린 거다. 삶의 굉장한 지형의 변화다. 그때 공부하고 주변에 벗이 있다는 사실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다. 그런 것들도 우주에 다 떠돌고 있다. 여기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따로 없다. 물질적인 것만이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것만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재밌게 잘 썼다. 

(우경쌤) 소통을 아주 열망하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는 한 것 같다. 연암이 친구한테 먹을 거를 구하는 거를 편안하게 쓴 대목에서 울먹였다. 열등감을 오랫동안 키워온 것 같다. 사춘기 때부터 그러지 않았나. 그걸 계속 갖고 있으면 열등한 신체의 표정으로 산다. 결혼도 했는데 그 해석이 안 바뀌면 내가 그걸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더 불안하다. 그 지점을 바꿔야 내가 거기서 벗어난다. 나이가 들어도 그걸 계속 키우는데 시기심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여기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나. 내가 정면으로 보고 그걸 넘어서면 된다. 지금 그걸 해야 할 나이다. 그럼 사십 대에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럼 많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 거기에 고정되면 내가 가진 많은 행운과 조커를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피어난다. 글에서 아주 멋진 표현을 썼다. 이야기에 재능이 있다. 열등감만 버리면 눈물이 안 난다. 계속 가지고 있는 건 열등감을 자기가 울궈먹고 사는 거다. 그걸 자아로 만들어서 그걸 방패막이로 삼는 거다. 주변 사람들이 지겨워서 다 피하기 전에 벗어나라. 징징 거리며 살 것이냐 멋진 이야기꾼으로 살 것이냐만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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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발표하신 쌤들~~~!
영주쌤은 공부는 생존이다, 미승쌤은 할 일을 찾고 싶다,
진숙쌤은 해석을 배우다, 정복쌤은 교감과 감응의 신체가 되는 공부에 대해 쓰셨어요.

곰쌤의 코멘트는요~~

(영주쌤) 성실하고 차분하게 문장이 흘러가고 있으나 내용이 구체성이 없고 원칙만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불안이 갑자기 생겼는데 불안이 이유없이 올 수도 있지만, 이유가 없어도 절박함이 있어야 하는데 본인만의 절박함이 드러나 있지 않다. 비속함이라고 했는데 비속함이 뭔지 풀지 않았다. 생존과 연결될 때는 그 현장이 있어야 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걸 취하고 불리한 걸 피하는 게 왜 비속한가. 비속함이 뭔지 알아야 고귀하게 사는 게 뭔지 방향이 나오지 않나. 일반적인 언어에 나의 피와 살을 붙이는 게 글쓰기다. 삶의 근원적인 질문과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나.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다면 이 질문을 풀기 위해 인생을 살아야겠다든지 구도자가 되겠다든지 삶의 방향을 바꾸겠다는지 할텐데 할머니가 되겠다고 한 이유가 있나. 본인이 고집불통, 철벽인 걸 아는가. 굶기지도 굶어죽지도 않는다는 노래가사가 무슨 의미인가. 원론적인 이야기가 내 삶과 결합해야 내 것이 되는데 내 것이 되는 지점이 안 나와 있다. 지금 생존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존이 중요한가. 어떤 결여와 결핍과 위험이 감지되길래 그런가.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른다. 타인의 말을 좀 들어라. 정신적 절박함이 안 드러나 있다. 문장으로만 선언해서는 공부의 동력을 갖기 어렵고 소통이 안 된다. 내용이 드러나 있지가 않다. 원칙을 성실히 정리한 건 알았는데 현장이 드러나지 않아서 본인이 드러나지 않는다. 본인을 숨기는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미승쌤) 생각이 산만하게 풀어져 있다.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밀고가지는 않아서 중심의 언어가 없다. 제목이 할 일을 찾고 싶다인데, 이게 키워드인가. 목표가 있으면 공부가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랑 연결되지 않은 책의 내용이 나열되어 있다. 충만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걸 위해서도 진리가 필요하다. 신이 필요하다. 즐겁게 산다고만 해서 충만해지는 않는다. 내 삶이 저 진리의 지평선과 연결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내가 토굴 안에 있어도 충만해질 수 있다. 결국은 오늘을 잘 사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을 구도를 해서 도달한 거다. 중생은 거기서 오늘을 사는 것만 취해다가 약 먹는 것처럼 사용한다. 글이 산만하다.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식이다. 문제와 질문 하나에 집중해서 그걸 가지고 공부의 근육을 찾도록 해야 한다. 어느 순간에 나를 타이트하게 밀고 가야 근육이 생긴다. 여유있게 하자, 평생 배우자도 맞는데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될 때의 긴장은 피할 수가 없다. 그걸 피하고 뒤에서 누가 잡아주는 걸로만 가면 백 년 가도 똑같다. 이 나이브함이 4년을 안주하게 했다. 토성팀이 정말 재미나게 공부하고 있다. 응집력 있게 서로 힘을 주고받고 공부하려면 마음의 근육이 있어야 한다.


(진숙쌤) 개념들이 불분명하다. 모든 것이 해석에 달렸다는 것을 배운다는 건지 남이 해석해 놓은 걸 배운다는 건지, 해석의 한계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글의 진행도 하나로 관통해야 한다. 각각의 내용 구술은 상상력과 창조력을 배우는 거고, 하나로 꿰는 건 지적 긴장력을 배우는 거다. 내용이 흩어져 있다. 인용문을 떼서 써야 한다. 내용들이 응집이 안 돼 있다. 마음 가는 대로 글이 조직된다. 하나의 키워드를 붙들어야 한다. 어디에 힘을 잘못 줬는지 알아야 한다.


(정복쌤) 역시 이야기꾼이라 이야기를 재미나게 썼다. 근데 공부를 하는 과정이나 공부가 아니라 학문을 그만둔 거잖아요. 예전에는 대학원은 학자가 가는 거였다. 대학을 갔으니 공부는 한 거고 학문을 하고 싶었는데 포기했다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닌가. 에피소드가 재밌으면 여기에 속는다. 배웠다고 구박받는 부분은 재밌게 구성돼 있긴 한데 그게 마음에 남아 있다. 20세기적인 이분법으로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으로 나누는 얘기를 많이 들은 건 스케치가 됐는데 교감, 감응 얘기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가족 도시락 싸고, 딸에게 양말 빨게 하지 않은 얘기는 무슨 맥락인가. 해석은 없고. 뜬금없이 들어가 있다. 학자가 되고 싶었을 때 학문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런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됐는데 허무하다고 느꼈다고 썼다. 그건 지성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거다. 그게 어디서 유래했는가를 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교감, 감응으로 글이 끝났다. 불교, 동의보감 등을 공부했는데 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건 내가 그걸 붙들고 있고 안 할려고 하는 상태라는 거다. 진리에 대한 판타지는 없다는 걸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가 문제다. 논리의 비약이다. 자기안에 풀리지 않는 게 있어서 자기가 자기를 폭로하는 거다. 감췄다고 생각하는데 다 드러난다. 문체, 스타일, 논리 구조 등등 그래서 글쓰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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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발표하신 쌤들~~!!
혜윤쌤은 '나에게 나를 묻다', 정아쌤은 '공부=삶=관계',
진아쌤은 '감이당 찾아 삼만리', 혜정쌤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통로'로써의 공부에 대해 쓰셨어요.

곰쌤의 코멘트는요~~~

(혜윤쌤) 내 삶과 섞여서 새로운 언어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추상적인 스케치로 되어 있다. 혜환이 얘기할 때의 깊이나 절박감을 구성하지 못했다. 편하고 재미있다는 수준에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사유한다는 건 고전과 나와의 케미가 일어나야 한다. 단초는 있지만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아쉽다.

(정아쌤) 공부와 삶과의 관계로 주제를 설정했고 에티카를 통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에 도달했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체득했는가는 안 드러난다. 사람과의 관계를 수동적으로 했었고 사람과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팠다고 했는데, 아픈 것의 원인이 스트레스에만 있지는 않다. 그 사람들이 없었어도 자기가 가다 넘어져서라도 아팠을 거다. 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음주운전 차가 들이박는다면 그 운전자에게 의도가 있었던 거냐. 내가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을 들이박은 거다. 내가 만들어낸 거다. '사람들은 피곤해, 나를 아프게 해' 라는 논리가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면 내 스스로 아플려고 애쓰는 걸 점점 알게 된다. 원인이라고 설정한 게 허무하다. 내 마음도 그렇다. 마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친절한 사람, 잘해주는 사람같은 동일자를 찾는 건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 관계가 삶의 근본이라는 걸 깨닫지 않았을 때다. 이유가 있는 거는 쉽다. 아무 이유가 없는데 허무하고 쓸쓸한 게 더 본질이다. 일상에서 그런 내 모습을 봐야 관계가 모든 삶의 본질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뒷부분 연암 이야기는 오정아씨 얘기가 아니다. 자기 안에서 나오는가 아닌가가 금방 느껴진다. 연암을 보고 내 삶에서 어떤 케미가 일어나서 내 몸이 변하느냐가 중요하다.

(진아쌤) 상황을 과장하는 습관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쓸쓸하고 외로운 거다. 이 사람의 신체와 생리가 그런 마음을 만든 거다. 자신이 사건을 구성하는 패턴에 망상과 판타지가 있다. 절대 팩트로 전달될 수 없다. 그러니까 아픈 거다. 아플 수도 있지만 적응하고 나면 까먹지 이런 식으로 기억 안 된다. 적응한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사건을 구성한다는 건 평소에도 이런 파토스로 살고 있다는 거다. 패턴이 밧데리 나가듯이 번아웃이 된다. 번아웃이 되면 쉬었다 해야지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왜 한번에 그 앞의 삶이 무가치한 것으로 사라지는가. 그 다음에는 강감찬 티비를 보고 감이당으로 다니고 있는데 또 몸이 아프다. 패턴이다. 사건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원인 분석을 하는가가 패턴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똑같이 해석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그런 감정, 그런 기억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고 자아가 좁아지고 불통이 될 수 있다. 그 이전에 몸이 자연스런 리듬을 못타는 건 문제다. 리듬이 과격하다. 어떻게 부드럽게 바꿀까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누가 만사형통하게 살다가 가겠나. 공부를 대하는 기본 태도에서 여기 오면 편하고 잘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으면 한 학기를 못 간다.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누구나 죽는 거다. 여러분은 인과가 너무 숏타임이다. 그러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공부하다 아프면 공부해서 아픈 거라고 생각한다. 아프려면 뭘 해도 아프다. 이 패턴이 걱정된다.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도록 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혜정쌤) 어떤 작은 사건으로 인해 세미나를 조직했는지 친구가 왜 있어야 하는지를 잘 정리했는데, 임팩트가 없다. 그러면 해인네를 왜 나온 건가. 해인네를 나와서 해인네 들어가기 전에 했던 친구와의 책 읽기를 하고 있다. 새로운 버전의 공부를 해야지, 퇴행하면 안 된다. 해인네에서 공부할 때는 혼자 공부하면 안 된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나. 혼자 독서하면, 이번 학기에 여기서 같이 읽은 책을 평생가도 못 읽을 수 있다. 해인네에서 못 어울리고 나온 게 생략이 돼 있다. 몸과 마음의 어울림도 일반적인 서술로 돼 있다. 내용이 주제와 맞는가. 공부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통로라고만 하면 너무 나이브하고 힘을 가질 수 없다. 까페, 지하철도 사람 만나는 통로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대견하지만 해인네도 여기도 몇 년째 되지 않았나. 공부와 관계라는 게 이정도의 힘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여기서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좋은 말을 정리하는 건 귀동냥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 얘기를 하고 자기와 인간 관계를 자기 언어로 말하면 너무 어색하다. 정체되지 않게 하려고 토성을 만들어서 순환시키는 거다. 친구끼리하는 세미나는 힘을 갖기가 어렵고 금방 흐지부지되기 쉽다. 한 걸음도 진전이 안 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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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다섯 번째로 발표하신 쌤들~~!!!
병은쌤은 '늙는 게 뭐라고', 은옥쌤은 '삶은 곧 관계의 지도',
희숙쌤은 '재미를 창조하는 공부', 내영쌤은 '현 위치 파악하기'에 대해 쓰셨고요~~~

곰쌤 코멘트는요~~~

(병은쌤)  인생을 '나'로 산다고 할 때 그건 아무도 개입이 안 된 '나'를 설정하고 있는 거다. 내가 산다는 건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여성들이 애를 기를 땐 자기가 아니라고 설정하고 자기를 소외시킨다. 과도기나 나의 삶이 아닌 삶으로 치부한다. 세상을 산다는 건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게 자연스런 거다. 누구의 딸로 산 건 나의 삶이 아닌가? 이런 식의 분리소외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다. 노동하지 않는 건 사람취급 안 하는 것처럼. 애 기르는 것도 월급을 안 주니까. 가족들도 엄마가 돈버느라 야근한다면 받아들이지만 친구 만나서 얘기한다고 하면 안 받아들인다. 돈을 안 주니까. 아이를 기른다는 게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 그걸 모르면 허접하게 취급하게 된다. 인문학을 배운다는 건 삶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기르는 걸 잘 하기 위해서 우선 순위를 둔 것을 가지고 양보했다고 보는 건 좋은 해석이 아니다. 애가 연약하니 애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건 내 인생인가. 독거노인은 내 인생인가. 이게 여성의 존중감에 도움이 안 된다. 명상을 오래했는데 송사가 걸렸다. 이런 게 인생이다. 그것이 사람의 경계다. 우리 법사님은 아닐 거야 라는 건 얼마나 순진한가. 세상 공부를 너무 안 한 거다. 뒤의 내용은 본인 얘기가 아니라 일반론이다. 실제로 번뇌의 소용돌이, 명상센터와의 관계에서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참 다이나믹하고 욕망이 뒤죽박죽이라는 걸,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전제하지 않아야 한다. 전제를 가지면 상처를 받는다.

 

(은옥쌤) 전체 서술이 수박 겉핥기다. 공부가 사유와 접속이 안 됐다. 감이당 공부가 재밌고 지성과 우정이 좋고 한데 자기의 삶을 정리한 걸 보면 갑자기 회사생활, 장사하면서 사는 게 아니다 라고 전환하게 된 계기가 뭔지 안 드러난다. 특별한 자기만의 인연이 있을 거 아닌가. 보통 사람들이 다 느끼는 거 말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다가 감이당에 오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사건이 있는 거다. 마음에서 있었던 전환 말이다.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보면서 재구성할 수 있어야 그때가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 또 인간관계의 빈곤에 대한 탐구도 어떤 깊이 이상으로 안 내려갔다. 내 경험과 따로 노는 말로 정리됐다. 뚫고 들어가서 합쳐져야 한다. 설익은 밥알이 되면 안 된다. 근원을 알아야 여기에 안 끌려 간다. 나는 왜 이렇게 돈을 추구했지 라는 내 욕망의 생리를 알아야 한다. 

(희숙쌤) 유쾌하게 쓴 거는 좋은데 띄어쓰기를 왜 두 칸 이상 띄었나. 제목이 좀 그렇긴 한데 전체적으로 재미, 창조, 지성으로 쓰고 즐겁게 쓴 건 감이 온다. 전체적으로 듬성듬성하고 느슨하다. 뭘 말하려는지는 알겠으나 ‘나의 명랑만화’가 왜 소제목인가. 겉돌고 연결이 안 되고 나열이 된다. 짜임새가 헐렁했는데 띄어쓰기 때문에 더 헐렁해졌다. 공부로 유쾌한 반전을 만들겠다는 건 좋은 착상이나 세밀하게 써야 한다. 약간 들떠서 쓴 느낌이다.

(내영쌤) 홈페이지에 안 올리고 가져왔는데 왜 그런가. 불혹의 나이가 됐는데 그 나이면 질풍노도의 나이도 아니고 시간 맞출 수 있을 텐데. 불규칙 바운딩이 누구에게 이로운가. 인정욕망이 많은데, 그게 가득 차 있다면 백수 상태를 견딜 수 없을 것 아닌가. 감이당에서 인정욕망을 느끼고 여기서 시기, 질투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 자의식에 빠져 있다. 니체 텍스트를 읽고 즐거운 습이 되고 있나. 그런데 인정욕망이 극복이 안 되나. 바쁘지 않은데 마음이 치달리는 거다. 자기와 송유근을 왜 비교하나. 아무런 자각을 주지 않는 예를 왜 가져오나. 마음이 자기를 엄청나게 지치게 하고 있고 그걸 보는 모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시간은 많고 신체는 건강하고 별이유가 없는데 널뛰기를 하고 있다. 아무 이유 없는데. 널뛰는 마음이 향하는 데를 일단 가보라. 돈 아니면 성이다. 감이당은 영업하는 데가 아니다. 수행하는 데다. 돌아다니면서 숨고 자기습관을 반복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건 자기에게도 이롭지 않다. 더 깊이 파라. 그래야 내년에 새롭게 변주가 된다. 생성은 변주되는 리듬이고 새롭게 갱신되는 것이지만, 반복은 퇴행되는 거다. 공부는 당연히 평생하는 거지만 늘 새로운 리듬을 탈 수 있냐가 포인트다. 그게 안 되면 진부하게 동어반복 된다. 그거는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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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중인 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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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터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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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도 먹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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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부터 시작된 에세이 발표가 드디어 모두 끝났네요~~~
아 후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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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카메라 앞에서의 반응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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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곰쌤은

"글을 보면서 여러분을 이해할 수도 있었고 참 힘들게들 사시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애를 썼는데 공허함이 찾아오면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면 수행을 한 거다. 견딜 수 없어 하면 번뇌고 망상인 거다. 못 견디니까 도피와 망각을 하는 거다.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이 힘들었을 건데 그걸 몰라서 야단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한 걸음씩 가야 한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처음에 방향을 안 정하면 피상적이다. 자기 삶의 현장은 안 드러나고 좋은 말들을 엮어버리면 공감, 감응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었지만 이런 방향 설정이 부족하다. 나는 어디쯤에 서서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가, 그럼 내가 어떤 문제에 부딪쳤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 경계를 깨야 나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지요~~~^^


그리고 장원과 우수 에세이 상을 받은 학인이 있었는데요~~

바로!!!


가장 큰 변화를 보여 준 지원쌤, 자기의 삶을 재미있게 드러낸 보순쌤이십니다!!!

모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상으로 화성 1학기 에세이 발표 현장 스케치를 마칩니다~~~

한 걸음씩 더 간 모습으로 2학기에 만나요~~^^



댓글목록

한수리님의 댓글

한수리 작성일

우와~ 정성 어린 후기 잘 읽었어요~!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됐어요~^^

정감님의 댓글

정감 작성일

힘들어도 얼굴에 티가 안 난다는 희진쌤, 에세이 현장 스케치 코멘트를 정리하시기 꽤 힘들었을텐데 역시 쌤은 글쓰시는 것도 안 힘들어 보입니다. 팔자신듯. ㅎㅎ 글 잘 보았습니다. 프린트 해서 두고두고 읽어봐야 될것 같습니다. 희진쌤 멋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