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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글쓴이 : spinolza | 작성일 : 22-04-25 16:07
조회 : 2,215  

안녕하세요 화성에서 공부하는 동연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2022. 04.19)에 에세이 발표가 있었는데요 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 현장에서곰샘의 목소리와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가보시죠.

 

 

 

1조 김현, 은미, 박미경, 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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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똥과 자기혐오 >

김현쌤은 똥에 대하여 쓰셨습니다. 곰샘은 미추에 대한 이분법이 드러나는 곳이 똥과 오줌을 보는 태도라고 하셨는데요 똥오줌에 아주 집중해서 거기서 확실하게 미추 이분법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지배해서 인식을 어떻게 만들고 그것이 다시 다른 종류의 이분법을 낳는지 인식을 선명하고 명료하게 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똥이 더럽다고 하는 인식도 문명의 프레임 안에서 구성된 것이고 미추를 모르는 꼬마 아이들은 똥을 싸면 엄마 아빠가 다 좋아하니까 그래서 엄마한테 선물한다고 합니다. 어른들도 똥 한번 잘 누면 거기에 달라붙어 있던 열들이 빠져나가서 피로가 싹 사라지기도 하는 똥은 참 보배로운 것이라는 것이죠. “선물할 때가 없어서 그렇지...“

 

최은미 <깨지러 나가는 길 >

은미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에 대하여 쓰셨습니다. ”마지막 줄에 나를 직면하자고 쓰셨는데 곰샘은 그렇다면 나를 직면하는 글이 나왔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자기를 약간 거리를 두고 논평하는 느낌인데 지금은 그런 지적 냉소보다 시급한 것은 나를 치유하는 것이 먼저인 것이지요. 내가 왜 친구들과, 가족과 이렇게 됐는지, 그 안에 어떤 공포, 어떤 자만, 나만이 옳다고 하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작동된 것인지. 거기를 주시하면 금방 치유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글에서 어디 나올까를 보고 있었는데 처음에 보면 섞여 있는 감정들을 하나씩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응어리가 지면 덩어리가 돼요. 에너지도 덩어리가 되죠. 그 에너지 덩어리 그런 걸 양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자아는 의식이 가장 강력한 에너지에요. 거기에 부정적인 것들 다 뭉쳐있죠. 그래서 이것이 너무 강해서 하나씩 공략을 해서 때어내고 흩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거기서 벗어나게 돼요. (저는 이 부분에서 치유가 의사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분석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자기 분석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다음 글로 가보시죠)

 

박미경 < 자기만에 방에 갇힌 나, 방문을 열어라 >

미경샘은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 사이에서의 글을 쓰셨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방에 머무셨는데 이걸 시소게임처럼 곰샘은 보셨어요. ”그러나 사람 사는 데는 안과 밖이 있을 수 없는 것이죠.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린 외부의 어떤 것 하고도 만나지 않고도 살아가며 자족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이죠. 단 한 순간도요. 호흡도 해야 하고, 먹어야 하니까요. 외부도 마찬가지죠. 삶의 안팎이 따로 있지 않고 타인을 위해서 배려하고 일하는 것도 아니죠. 부처님과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한 게 아니라 본인의 일을 하신거죠. ?

그분들은 자기를 위해서 뭔가 챙겨야 할 것이 없었으니까요. 완벽하게 진리를 터득했는데 뭘 챙기겠어요. 그래서 이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자기의 일인 것이죠. 근데 우리는 자꾸 선택을 하는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타인에게도 이롭기를 찾아야 돼요.

자기 안에 갇히면 병들어요. 자기 안을 성찰하는 게 아니라 이건 삐진거죠. 내가 하는 일이 즐거운데 다른 사람도 즐거웠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의 기준이 어렵습니까?”

 

...선생님..저희는 쬐금 어려워요 ^^; 그러나 계속 시도하겠습니다.

 

 

 

최숙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

숙자샘은 책을 많이 읽기로 화성에서 유명하세요. 곰샘도 숙자샘의 일년에 100권 읽기에 놀라셨죠. 그것도 초과 달성하시고요. 언제나 책과 함께 하시죠. 아이도 셋이나 낳으시는 대단한 경험도 하셨어요. 그런데 곰샘은 이런 기쁨이 왜 삶의 지혜로 이어지지 않는지 반문하셨어요.

책을 100권 읽으면 100권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100권을 읽으면서 무한한 진리에 대한 열정과 기쁨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질문이 생기면 100권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한 권만 읽어도 돼요. 저절로 읽게 되는데 뭘 정해서 읽겠어요. 그런데 여전히 불안하죠. 마치 책 안에 답이 있어서 내가 그걸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아니라 내 안에 있거든요. 책을 통해서 내 안에 그것이 생성이 되어야 해요. 책을 읽어서 읽을 때 알아가는 굉장한 기쁨 자체는 보답이 필요 없고 거기는 성취와 실패가 나누어질 수 없거등요. 근데 여전히 나누어 놓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본인 생각은 어떠세요?

숙자샘: ......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곰샘: 왜케 무겁고 진지해요? 화성은 너무 무겁고 진지해 표정들이 모두 진지, 성실, 열정

아 우리 경아 담임이 그런 스타일이죠 열정과 진지와 성취! 다른 일은 잘 되는데 공부는 잘 안 되고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암튼 가벼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똥도 잘 나오고 책도 즐겁고요 내 안에 응어리도 풀어지고 그리고 삐져서 혼자 있겠다는 생각 안 합니다. 제발~~”

 

 

2조 향원, 혜진, 미선


 

이향원< 지금, 여기에서 하는유목적 사랑 >

향원쌤은 자신의 욕망과 패턴을 솔직하게 쓰셨다는 평을 받으셨는데요 섹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곰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공공의 장소에서는 표현을 잘 못 하는데 과감히 향원샘은 표현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향원샘은 전 글에서 남친과의 관계에서 성적 관계가 이제 많이 힘들어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샘은 이제 공부하는 즐거움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 그런 샘의 몸에 대해 곰샘은 그렇게 되었다면 참 다행이라고 하셨죠. 상대의 욕구도 존중하면서 남친과의 관계의 변화가 우정이 되든 결별이 되든 그렇게 해서 서로를 더 괴롭히지 않는 그 방향으로 나가야 나도 자유롭고 상대도 자유로워 진다고요. “ 상대의 욕망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럴러면 굉장히 지혜가 필요해요. 깊은 인식론적 힘이 있어야 그 주도권을 가질 수 있어요. 아시겠죠? 경험치가 많으셔서 향원샘은 공부가 잘 될겁니다. 우리 감이당에 복희씨가 결혼을 안 했거등요. 그래서 항상 글을 쓰려고 하면 남녀 관계에 대해서 너무 미미해서 제가 많이 놀려먹죠. 도대체 아는 게 없다고. 인간에 대해서 이렇게 욕망을 모르면서 무슨 몸에 대한 글을 쓰냐고. 거기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요. 하하 그러니까 향원샘의 그런 경험들이 굉장히 소중한 거에요

 

이혜진< 익숙한 쾌감 & 낯선 기쁨 >

혜진샘은 연애나 공부를 할 때 항상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또는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살았고 불행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았는데 그럴 때마다 쾌감이 작동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기쁨이 생긴 것 같다고 하셨어요. 순간이지만요.

곰샘은 그런 쾌감과 기쁨을 정의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탐구하라고 주문하셨어요. 쾌락 뒤에 있는 무상함과 불안을 정확히 알아야 기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갈 수 있다고 하셨어요. 왜 교회에 가서 예수님의 진리가 아니라 그런 편안함, 천국이 보장될 것 같은 것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래서 교회에 가는 그런 감정이 뭘까 이걸 잘 분석하라고 하셨는데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안 갔지만 이런 분석이 없이 그냥 뭔가 답답해서 안 간 것 같아요. 저도 기회가 되면 그런 인식을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혜진샘이 위에서 말씀하신 기쁨이 생겼다고 했을 때 그것을 향하여 갔다면 그 기쁨의 내용이 지금 막연한데 이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곰샘은 오더 때리셨습니다.

 

안미선< ‘자기만의 방에서 벗어나기 >

미선샘은 자신이 불편하면 사람을 떠나는 식으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 안에서 다른 관계방식을 만들어야 하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손주를 봐주는 것도, 남편하고도 적당한 선에서 이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풀어나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곰샘은 미선샘의 글을 보시고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는 안 나오고 이론적인 문제만 나왔는데 이러면 글이 거칠어진다고 하셨어요. 이론과 내 현장이 맞아야 딱 나오는데 따로 논다는 느낌이라고요. 내가 배운 이론하고 내 현장하고 섞여야 되고 케미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도 배움과 일상의 간극이 일치시키는 일이 어렵게 느껴져요. 차라리 때론 많이 알지 않으면, 조금만 알면 조금만 실천해도 되니까 책도 조금만 보면 되지 않을까 이런 워처구니가 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3조 문숙, 수빈, 선옥, 로화


 

문숙< 비움이 양생이다 >

문숙샘은 위장과 시어머니의 갈등을 쓰셨어요. 그러나 글에서는 그 핵심 즉 시어머니가 나의 위장이 파업할 정도로 뭔가를 준 것인데 그것이 명확하게 들어나지 않으셨다고 하셨어요. 확실한 건 위장이 멈추었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고 또한 거기에는 남편하고의 관계도 있어서 복잡한데 이것들을 명료하게 알아야 무엇을 비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양생의 요체는 비움에 있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에요. 이거하고 내가 시어머니 때문에 병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어요 이걸 명료히 분석해서 이해하면 그 다음에 덜어지는 거에요. 서로의 찌거기가 없는 거죠. 그건 감이당이나 화성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니죠. ” 저도 감이당의 공부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해주는 말씀이었어요. 공부를 오래하면 할수록 축적되서 점점 삶의 문제들을 잘 풀어내서 결국 잘 살게 될 거야라고 하는 목표지향적인 사고방식 같은 거요. 그러나 아무리 오래 다닌다고 해도 자기를 명료하게 분석할 힘이 없고 타인들에게도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다닌다고 하여도 시간이 그 힘을 저절로 만들어 주지는 못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수빈< 어디에도 없는, 지금 그리고 여기 >

수빈샘은 생동감 있게 글을 잘 쓰세요. 몰입도가 뛰어나죠. 이번 주제는 자신의 서랍 속 목록에 남자들에 대하여 쓰셨어요. 그런 목록도 중요한데 곰샘은 이것을 분석하라고 같은 주문을 넣으셨어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분석하는 거에요. 저 인간들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야 이러고 끝내면 그냥 괴로움만 남지 어떻게 이 사람들의 괴로움이 형성되는지 잘 몰라요. 여기서도 그냥 서랍속에 목록에 있을 뿐이지 왜 저렇게 사는가가 탐구가 되어 있지 않아요. 나는 왜 이러고 사는가? 나를 분석 안 하고 타인도 분석 안 한다는 거에요. 그러면 남는 것은 욕망과 괴로움만 남아요. 왜 공부해야 하는가? 바로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기 위해서 힘을 가져야 해요. 수빈샘은 글을 유머러스하게 쓰고 흐름도 경쾌하고 겪은 것을 스케치는 잘 하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기를 비판하는 건가? 이래가지고 자기가 분석이 되나요?” 수빈샘은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안 하니까 모르죠 동어반복이에요. 이런 이미지적인 글은 뚫고 나오지를 못해요. 자신을 드러내면 다 똑같아요. 어떤 흉악범에게 일어나는 일도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과 같고요 부처님에게 일어나는 일도 내 마음에 똑같아요. 모든 대문호들이 하는 말이 자기해부로서의 글쓰기죠! 그래야 자기가 바로 서죠.”

 

김선옥< 24절기 느껴보기 >

선옥샘은 마음의 화병에 대해 쓰셨어요 곰샘왈: “도대체 왜 13년의 관계를 5분짜리 대화로 끝내는가? 이 사람은 어떤 맥락으로 이렇게 하는가? 이것을 물고 늘어졌어야 해요. 괜찮아, 괜찮아 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집요함! 그러면 그 사람도 다시 그런 짓을 안 할 수 있어요. 근데 이걸 선생님이 무마를 해주었단 말이에요. 그럼 결국 그 잉여가 어디로 가요? 내 몸 안으로 들어오죠. 그분은 이 일이 부끄럽기 때문에 절대 분석을 안 하죠. 그게 뭉쳐서 무의식에 들어가죠. 그게 까르마죠. 그런 사람은 어디선가 똑같이 당해요. 왜냐면 자기 안에 이런 식으로 인과를 만들어 놨기 때문이에요. 카르마가 다른 것이 아니라 심리의 변비라고 할 수 있죠.” 이번 코멘트에서 제가 느낀 점은 심리와 생리가 신기하게도 함께 간다는 것이었어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분석하면 몸에서 일어나는 일도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을요. 그 반대도요

 

감로화< 초라함, 손님처럼 환대할 것 >

감로화샘은 초라함에 대하여 쓰셨습니다. “ 중년 이후 인생 후반에 초라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데 왜 초라한지 분석을 나름대로 세밀하게 잘 하셨어요. 근데 그 안에 결국 화폐가 들어 있구나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갔으면 좋을 것 같아요. 주변에 화폐를 넉넉하게 가진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초라함을 안 느낄까요? 내가 초라하다고 느낄 때 그런 허상을 알면 최소한 화폐적인 방식으로 초라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초라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늙는다는 것은 나의 생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누가 허무하지 않고 누가 초라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인간은 젊어서도 늙어서도 항상 초라해요. 항상 자기의 조건에 연루되어서요. 돈 많은 대기업 회장님들 보세요. 자료가 그렇게 많은데 그런 걸 보고 깨달아야 해요 여러분. 그런데 왜 화폐를 가지고 내 결핍을 만듭니까? 그래서 그걸 벗어나면 그런데 왜 실존적으로 허무가 치고 들어올까? 이쪽으로 나가야죠. 꼭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화폐적인 방식으로 초라하지 않으려면 화폐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고, 실존적으로도 허무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면 그것 또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분석을 해야겠군요.

 

 

4조 영희, 보경, 권미경, 나현 


 

박영희< 자기 속도로 유목하기 >

영희샘은 자기의 속도에 대하여 쓰셨어요. “이 분도 아까 책 백 권 읽는 분이랑 비슷하신 것 같은데요. 뭘 해도 속도 조절이 안 되고 과속으로 달려가는 거죠. 그럼 당연히 과속을 하면 열이 발생하고 그건 몸에서 염증수치를 올리게 되죠. 그래서 자기 속도를 조율해야 하는데 독서를 이렇게 과속으로 하는 경우는 참 드문데요. 책을 뭘로 생각하고 읽으시는지 궁금하네요. 특히 고전은 이렇게 맹렬히 읽을 수 없거든요. 고전 자체가 속도를 조절하게 해줘요. 과속으로 달리는 생리 메커니즘 자체가 결핍이 있으니까 계속 달리는 거거든요. 이러면 염증이 종양으로 파고들어서 암이 되요. 여기서 핵심이 빠졌는데 왜 도대체 이렇게 과속으로 사는가 이 질문이에요. 지금은 아프니까 욕심을 내려놓는 게 아니고 잠깐 보류하는 거죠. 그래서 조금 나아지면 다시 달려가고.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 리듬이 다 조율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수행이라고 해요. 요즘도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화성 공부도 그렇게 불타게 하는거에요? 그럼 내년엔 화성을 없애야겠다. 월성이나 수성으로 해야지. 이 화성 자체가 문제네. 너무 불타는 분들이 많이 계셔 여기 지금. 그 열정은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로 바구어 쓰는 거에요저는 어차피 내년엔 화성을 폭파하신다고 하시니 더욱 가열차게 달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공!

 

염보경< 아모르 파티 >

보경샘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쓰셨는데요 결국 열등감이 아니라 욕심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알고 봤더니 결혼은 두 번이나 했고, 남들은 한 번도 못 하는데 말이죠. 다른 사람이 부족하고 이런 건 안중에도 없어요. 그래서 되게 나약한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이 욕심이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얼마나 이기적이에요. 헛헛하고 불안하다 이것도 공평한게 중년 이후 다 겪어요. 근데 요새는 청년도 이래. 헛헛하대. 어렸을 때 콤플렉스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저는 나이가 들어서 알았어요. 모두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다 똑같이 콤플렉스를 느낀다는 걸요. 이걸 아는 순간 거기서 딱 벗어나게 돼요. 근데 그걸 자신이 알려고 탐구를 해야죠. 뭔가 변화를 해야겠다는 것이 있으니까 인문 고전을 하러 오신 게 아니겠어요? 그런 자신을 잘 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보경샘과 작년에 화성을 1년 함께 공부 했는데요. 다른 선생님들의 피드백에 조금씩 변화하신(예를 들어 암송의 길이, 발음, 공부에 대한 태도) 선생님을 보면서 공부가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권미경 < 질병, 고통, 몸에 대한 예의 >

미경샘은 고모님의 병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을 쓰셨습니다. “ 중요한 건 노년에 다가올 질병,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예요. 내가 고모에게 얼마나 정성껏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노년, 어떤 질병, 어떤 죽음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중요해요. 고모 옆에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문제도 아니구요.

병원이 죽음을 커버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들도 자기 살기 바쁘거든요. 그래서 관찰을 자세히 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찾는 건 나왔는데 과연 어떻게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탐구는 보이지가 않고 그러니까 나는 나중에 저항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면서 살까? 이 말은 너무 추상적인 거죠.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떻게 내가 노년에 병을 맞이해서 죽음에 이를까 지금 연습하기 시작을 해야 되는 거죠. 죽음을 지켜본 것이 큰 공부거리가 되는 거죠. 기준이 분명해야 해요. 그렇게 하시면 아주 좋은 테마가 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데요 그렇다면 이것을 인식적으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요? 공부 거리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김나현< 함께 사는 걱정 >

나현샘은 걱정하는 자신과 함께 살겠다는 글을 쓰셨는데요 나중에 보면 내가 뭐 때문에 걱장을 하는지 모르는데 계속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뚜렷한 이유가 없고 그냥 하나의 습관 패턴이에요. 아까 영희샘도 뭘 해도 과속으로 달리는 것이 습관이듯이 매사를 걱정하는 것도 그냥 습관이에요. 원인이 별로 없어요. 이걸 알면 (그렇기 때문에 ) 걱정에서 벗어나게 돼요. 내가 과속을 하고 있구나. 왜하지? 모르겠는데? 그냥 하네? 이러면 거리두기가 되듯이 왜 걱정을 없으면 사서 하지? 이러면 정체를 알았잖아요. 그래 그럼 걱정을 즐겨볼까? 이러면 그 걱정이 그냥 재미 없어서 스르르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나현샘은 지금에 집중하자, 오늘만 살자 오늘만 집중하자이렇게 결심한다고 돼요?

나현: 영화 아저씨를 좋아해서요

곰샘: ‘아저씨가 언제 나온 영환데? 나는 아재 개그를 하는 줄 알았네. 공부를 하세요. 공부를 하면 공부가 즐겁건 아니면 이거 때문에 힘들건 간에 다른 걱정은 사라져요. ”

 

 

나현샘의 걱정은 계속 걱정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차라리 공부 걱정을 하면 이게 너무 빡세니까 다른 걱정을 할 틈이 없을 거라는 곰샘의 명쾌한 논리에 임꺽정도 도망갈 것 같았습니다.

 

 

5조 동주, 지현, 숙현,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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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어떻게 살 것인가 >

“동주샘의 문장은 하나하나 되게 좋은 내용인데 이렇게 뭉쳐놓으면 소화가 안 돼요. 공부를 너무 많이 하신 게 부작용 같습니다. 인공지능도 나오고, 조르바도 나오고, 윤동주도 나오고 뒤죽박죽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연결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연결을 해야 생각을 더 깊이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언어, 문장을 정확히 하고, 단락 나누기를 해서 이어짐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제목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핵심 키워드 찾기가 어렵죠. 명확한 키워드를 가지고 논리정연하게 펼치는 그런 훈련을 여기서 글을 쓰며 하는 거예요. 글을 쓸 때 재밌고 놓치기 싫어 이런 마음이 누구나 있어요. 다 담아서 전달하고 싶고. 그럴 때 바로 버리는 연습을 하면 돼요”

저도 글을 쓸 때 논리의 연결 부분이 어색해서 막힐 때가 많고 또 분량을 항상 맞추려면 줄이고 줄이는 연습을 하는데요 글을 쓸 때 이런 훈련은 일상에서도 제 욕심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 또한 논리적 사고를 일상적으로 하는 것에도 도움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지현< 멋진 어른이 될 것인가 진화한 꼰대가 될 것인가 >

“ 읽을 때 왜 그렇게 빨리 읽어요? 힘과 속도가 그 에너지가 너무 넘치시는 것 같아요. 에너지 조절이 안 돼서 이렇게 화를 내며 산 게 아닐까. 에너지가 넘치는 건 잘못은 아닌데 에너지를 거칠게 쓰면 나를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요. 그래서 조율을 해야 하는 거죠. 누르는 것이 아니고요. 

 글의 제목을 보면 꼰대라는 문제설정 자체가 좀...이게 중년에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는 거에요. 내가 꼰대냐, 멋진 어른이냐가 왜 중요하죠? 내가 욕하는 그런 어른을 닮아 갈 것 같아서? 문제가 잘 설정된 느낌이 아니에요. 그거는 자기가 어른들에 대해서 한 짓이 있으니까 내가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까 캥긴다. 그리고 뭘 다시 시작을 해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전제들이 진짜 깨졌다면 다른 삶으로 자연스럽게 가는거죠. 여전히 내가 이걸 가지고 다시 시작할려는 거는 하나도 깨진 것이 아닌거죠. 아직 더 깨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고요.”

지현샘의 글을 보고 저도 사실은 제 안에는 꼰대가 되면 어떻하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꼰대가 되면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생각해 봤는데 꼰대 그 자체의 문제보다는 주위와의 관계에서 ‘꼰대’라는 딱지 때문에 내가 맺고 잊는 관계들이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보인 것 같습니다. 


윤숙현< 나와의 화해, 그 자유로움으로 >

“숙현샘 글은 자기 상념에 이미지들을 툭툭 던져서 읽는 사람들은 다 미스테리에요. 글은 소통이거든요. 나의 깨우침을 많은 사람들하고 공감을 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깨우침이 일어나야 되는데 독백을 풀어 놓으면 확 막혀버려요. 거기다 짐작을 잘못하면 오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논리적으로 선명하고 진솔하게 써야 곡해와 왜곡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덩어리로 쓰지 말고 내 사랑이 왜 가족에게 폭력이었나 그런 상황을 먼저 제시하고, 어떤 것을 느끼고, 그래서 생각이 바뀌고 이런 방식이죠. 그럼 관계도 바뀌게 되겠죠? 이런 것이 자신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해서 삶이 바뀌는 과정인 거예요.” 

책을 읽으면 어떻게 삶이 바뀌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한 10년 전쯤에 유명 프로그램에서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엔터테인트먼트 회사 사장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인상 깊게 느낀 점은 그 사장은 책을 평소에 한 권도 안 읽는 다는 거에요. 난독증이 있어서. 그럼에도 자신은 사장이 됐고, 대주주가 됐고, 성공했고, 많은 연습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어떻게 책을 안 읽으면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게 참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10년쯤 지나니까 그 소속사 유명 연애인들의 마약과 도박과 성문제 등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몇몇 아이돌은 구속되고 결국 그 사장도 지금 재판을 받고 있더라고요. 이제야 저는 그 의문이 풀리고 교훈을 얻었어요. 책을 읽지 않으면 구속된다


김동연< 본성적인 기쁨 찾기 >

“우리는 왜 시간당 얼마짜리로 계산을 할까? 이게 너무 낭만적인 거라고 느껴지는게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마음을 그렇게 안 보면 돼지. 내가 그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는 건 정말 쉽다고. 얼마든지 사장님을 천을귀인으로 볼 수 있고요. 마음을 쓸 때 너무 한정적으로 쓰고 있어요. 글에 논리에서는 결국 시간하고 숫자에 의해서 지배되는 그래서 내면도 수량화가 되어서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잘 살고 싶은 거라면’ 여기 논지가 명료하지 않는데 부자라는 명칭을 딱 정해놓고 숫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부자가 아니라 좋은 삶이란 설정을 해놓으면 꼭 숫자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되네 이렇게 될 수 있지 않냐는거죠. 부분부분이 취약해서 아쉽다.” 

 

총평

글쓰기를 하는 기준은 머릿속에 막 흘러다니는 생각과 사유와 상념을 차서에 맞게 전개하는 것입니다. 이게 논리죠 차서에 맞게 배치를 하는 것. 그렇게 훈련을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머릿속에서 계속 섞여 있어요 책을 수백 권 읽어도 저절로 되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의 뇌는 계속 흘러야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산만하고 잡다해서 이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논리적 차서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로 꿰어져야 하고, 내가 질문을 뭐라고 던지느냐가 중요합니다. 2쪽이면 거기에 맞게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이걸 꿰어 내겠죠.

순서배열을 하고 책이나 이번 학기에 배운 원리나 이치를 가지고 거기서 내가 하나 배운 것을 가지고 내 현장하고 딱 매치를 해서 이게 얼마나 케미가 일어나느냐!

정리 하면 두 가지죠

하나는 문제하고 논리설정이 딱 꽤어지는 일이관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원리와 현장의 화학적 결합

그러면 우리가 글의 리듬을 타서 서로 이해를 한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의 앎과 삶의 과정을 훌륭한 텍스트로 향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이 발표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많은 글을 보게 되죠. 저 사람도 이런 고민과 마음의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디가서 이렇게 다른 사람의 내면의 스토리를 겪겠어요

자기가 꼴랑 하나 글쓰고. 완전 남는 장사죠

그래서 세상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이게 아주 함께 공부하는 보람입니다. “

 

(장원은 두 분이 받으셨는데요 한 분은 향원샘과 다른 한 분은 기억이 잘 안 나요 )

 

다음은 여러 선생님들의 짧은 소감으로 에세이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최숙자: ”독서는 성취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좀 가벼워지라는 말씀도요. 독서가 기쁨이 되기도 했지만, 과제삼아, 도전으로 했던 거 같습니다. 앞으로 독서 또는 앎의 기쁨을 느끼고, 누리는 사람이 되려합니다. 가뿐하게! 명랑하게!

 

 

이향원: 내 욕망의 흐름이 갖는 패턴을 분석해 큰 지혜에 도달할 것. 깊은 인식론적인 힘이 있어야 나도 자유롭고 상대도 자유로운 관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곰샘의 말씀 새기겠습니다.

 

안미선: 나의 욕망과 상대의 욕망을 '관찰'하라는 말씀이 와 닿았어요. 지금까지 내 상식을 기준으로 상대를 봐 왔었구나 싶었구요.

 

권미경: 4주간에 걸쳐서 고민하고 쓴 만큼 도반들의 글이 처음에 비해 단단하고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에 놀랐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나만의 고민이라는 생각에 갇혀있지 않고 드러내고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가 주는 매력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곰샘의 유쾌한 표현들을 들으면서 저 또한 진지함을 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들 방학 즐겁게 보내시고 5월에 만나요!

 

장수빈: 말씀들 듣고 저기 올려주신 것도 읽어보고 든 생각이..아버지도 남편도 ! 이렇게 빠르게 단정짓지 말고 다르게 한번 관찰해보라는 거죠? .. 그럼 이제부터 관찰에 올인입니다.

 

박미경 각자의 고민을 안고, 다같이 읽고 듣고 말하고 글쓰면서 마음을 뚫는 소통의 현장!

 

최은미: 소감: 아쉽지만 여기까지

 

문숙: 저는 화가 난 지점을 좀 더 디테일하게 분석해야 비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 코멘트 듣는 것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총평에서 문제 제기와 논리 설정의 일관, 원리와 현장이 잘 섞이는 것이 좋은 글쓰기라고 하신 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작성하니 흩어지지 않고 뭔가 남는 느낌이 드네요. ㅎ

 

선옥: 글쓰기가 하니까 되기는 하네요. 몇 주 머리가 너무 지끈 거렸는데..제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일단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오늘은 한 잔 해야겠어요.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며 다같이 여기까지 온거라 생각하니 역시 너무나 좋습니다.

 

이혜진: “깊은 인식론적 힘이 있어야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곰샘의 말씀이 특히 기억이 납니다. 무겁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통찰을 접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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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파랑소   2022-04-26 14:24:15
 
오랜만에 화성 샘들 얼굴을 보니 넘나 반갑네요ㅎㅎㅎ
장원의 한 분은 동연샘이라고 들었는데...ㅋ
그나저나 마지막에 곰샘 총평 적어주셔서
"그래그래" "맞아맞아" "2쪽이니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는 거구나" "일이관지" "끄덕끄덕"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글라스 낀 곰샘께서 등장하셔서 웃음이 터졌네요.
곰샘은 사진으로 뵈어도 유머러스하시다니~

후기 잘 읽었어요 샘! 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ㅎㅎ!
     
spinolza   2022-04-26 22:27:20
 
앗 ,소민쌤이다 반가워요 쌤
너무 오랜만이예요. 목성공부는 재밌게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목성에서 화성까지 5억 5000만km를 날아오셔서 댓글도 남겨주시고
마음 써주셔서 감사해요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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